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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크 Mar 13. 2024

커피를 주문하면 에스프레소가 나오는 곳, 이탈리아

커피부록(16)

“이탈리아 밀라노 비아오르소 13번지에 거주하는 제조업자 루이지 베제라(Luigi Bezzera)가 새롭고 유용한 ‘무언가’를 발명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립니다. 개선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이 증기로 변환되는 가열 부분의 구성, 배출 코크의 위치와 코크의 구조. 이에 대한 설명은 첨부된 도면을 참조하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02년 5월 이탈리아의 기술자 루이지 베제라가 미국의 저작권위원회에 제출한 특허 신청 서류는 이렇게 시작한다. 서류엔 두 장의 도면이 제시되고 도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보일러와 유사한 원통형 챔버(통), 가스버너나 기타 열원을 수용하도록 구성한 통, 코크의 규모와 플러그의 위치 등이 표시돼 있다. 1년 뒤 이 발명품은 미국에서 특허가 등록됐다.


베제라의 에스프레소 머신(왼쪽)과 미국 저작권위원회에 제출한 서류. 출처 : il cafe 홈페이지

‘무언가’는 에스프레소가 대중화되는 계기를 마련한 베제라의 에스프레소 머신(espresso machine)이다.



“터키 커피에서 시작된 에스프레소”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 모차르트 메뉴판엔 어떤 커피를 고를지 고민하는 손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가질 것인가. 에스프레소, 필터링, 터키(튀르티예) 또는 프랑스…”


 물론 답은 정해져 있다. 빈의 커피하우스에선 비엔나커피.

 

 이탈리아 커피를 얘기하다가 느닷없이 오스트리아 커피하우스 얘기를 꺼낸 이유는 메뉴판 속 질문에 있다. 그 나라의 커피 문화가 커피 추출 방식의 이름이 된 곳, 터키(튀르키예)식 커피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제즈베로 추출하는 터키식 커피. 출처 : 픽사베이

튀르크 커피(Türk kahvesi) 또는 터키시 커피(Turkish coffee)라 불리는 이 커피는 튀르키예에서 유래한 달임식 커피(decoction coffee)를 총칭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돼 있는 터키식 커피 하면 떠오르는 건 제즈베(Cezve) 커피'다. 뚜껑이 없는 주전자, 제즈베란 도구로 커피를 추출하다 보니 붙여진 이름인데 이 역시 터키식 커피의 일종이다. 뚜껑이 있는 ‘이브리크(İbrik)'도 제즈베와 함께 달임커피의 대표적 도구다.

 

 달임커피의 방식은 간단하다.

 물에 가루를 넣고 끓이면서 커피를 추출한다. 그래서 장비도 간단하다. 분쇄된 커피와 물을 끓일 냄비만 있으면 된다. 이때 유의할 건 커피를 분쇄하는 정도다. 커피 가루들이 그대로 컵에 남기 때문에 밀가루에 가까울 정도로 미세하게 분쇄하는 게 좋다.


 터키, 엄밀히 말해 오스만튀르크 제국에서 시작된 터키식 커피는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전역의 커피하우스에 가면 지금도 메뉴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유럽에 커피 문화를 알린 게 오스만 제국이기 때문이다.


터키식으로 추출한 커피. 출처 : 픽사베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무역상을 통해 커피가 들어온 것도 오스만 제국을 통해서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커피하우스도 처음엔 터키식으로 추출한 커피를 마셨다. 가열된 냄비에 향신료와 커피, 설탕을 넣고 끓여 손님에게 내놨다.


 그러다 커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터키식 커피의 추출 방식에 한계를 느꼈고 효율적인 커피 시스템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커피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커피 추출 방식을 두고 고민도 높아졌다.


 높은 압력으로 농축된 형태의 커피를 빠르게 추출하는 에스프레소는 그렇게 시작됐다.



“커피 맛, 기술과 결합하다”


에스프레소 또는 카페 에스프레소(caffè espresso)는 ‘표현하다’‘누르다’라는 뜻의 이탈리아 동사 이스프레메레(esprimere)에서 유래했다. 이름 그대로 에스프레소 커피는 미세하게 분쇄한 커피 가루에 고압·고온의 물을 통과시켜 빠르게 추출한 고농축 커피다.


 에스프레소라는 명칭은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했지만,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기계를 처음 개발한 건 프랑스라는 게 정설이다.

 글로벌 커피 잡지인 커피매거진(Coffee Magazine)에 따르면 1822년 프랑스인 루이 베르나르 라보(Louis Bernard Rabaut)는 증기를 사용해 분쇄된 커피에 끓는 물을 공급하는 장치를 선보였다.

산타이스가 압력 추출, 여과기 등이 있는 커피 머신을 1855년 파리 세계박람회 출품한 모습. 출처 : alamy 홈페이지

 뒤를 이어 프랑스인인 에두아르 로이젤 드 산타이스(Edward Loysel de Santais)가 1843년에 최초의 스팀 커피 머신을 출시해 상업용으로 생산하기도 했다.


 그의 커피 머신은 1855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서 1시간에 최대 2000잔의 커피를 만들면서 방문객을 놀라게 했다.


 에스프레소 머신 개발의 ‘최초’라는 수식어는 프랑스에 뺏겼지만, 이탈리아로선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증기압식 피스톤식 펌프식 등 에스프레소 머신의 기술과 형식이 다양하게 분화하며 발전을 일궈낸 건 이탈리아라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1884년 5월 모리온도의 에스프레소 머신에 대한 첫 번째 특허. 출처 : 위키피디아

 이탈리아에선 토리노에서 대를 이어 주조회사를 경영하던 발명가 안젤로 모리온도(Angelo Moriondo)가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들었다.

 

 모리온도의 에스프레소 머신엔 두 개의 보일러가 있다. 대기압(1바)보다 높은 1.5바 압력의 증기가 커피 가루가 있는 베드(또는 그릇)로 물을 밀어 넣는 대형 보일러, 커피 그릇에서 커피를 추출하는 증기를 생성하는 보일러다.

 이 머신의 시제품은 1884년 토리노 엑스포에서 소개됐고 그해 정식으로 특허 출원됐다.

 

 모리온도와 그가 개발한 에스프레소 머신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 게 거의 없음에도 커피 전문가들은 그의 발명품이 에스프레소 머신에 영감을 줬음에는 틀림없다고 보고 있다.


 본격적으로 에스프레소 머신 개발에 나선 건 20세기가 시작된 1901년 12월이다. 밀라노의 기계공이던 루이지 베제라를 통해서다. 베제라는 기존에 나온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량, 개발해 특허를 등록했다.


 특허 제목 ‘커피 음료를 준비하고 즉시 제공하는 기계의 혁신’은 그가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하게 된 이유가 오롯이 담겨 있다. 베제라는 커피를 내리는 직원들의 육체적 노동을 줄이는 동시에 단시간에 커피를 추출할 수 있도록 에스프레소 머신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제라가 내놓은 버티컬(VERTICALE ) 모델은 1901년 루이지 베제라가 개발한 커피머신을 복원한 제품이다. 출처 : 베제라 홈페이지

 베제라가 특허를 취득한 에스프레소 머신은 1.2∼1.5바 정도의 증기를 사용해 분쇄된 커피에 물을 통과시키는 기계다. 


 여기에 지금의 에스프레소 머신에서도 볼 수 있는 그룹 헤드와 포터필터가 있는 기계로 등록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룹 헤드는 분쇄된 원두에  압력이 올라간 섭씨 90.5~96°C의 뜨거운 물을 분사하는 곳이고, 포터필터는 분쇄된 원두를 담는 손잡이 달린 필터 바스켓이다.


 베제라가 에스프레소 머신의 첫 상용화를 시도하게 된 건 1903년 라 파보니(La Pavoni) 회사를 설립하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산업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데시데리오 파보니(Desiderio Pavoni)와의 만남에서 비롯했다. 


 파보니는 1905년 베제라의 특허권을 매입하고 두 사람이 함께 기계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힘을 모았다. 압력 방출 밸브를 추가해 바리스타가 안전하고 빠르게 커피를 만들 수 있게 됐고 스팀 막대를 추가해 우유 거품 제조도 가능해졌다.


 완성도를 높인 에스프레소 머신은 ‘이데알레(Ideale)’라는 이름으로 출시됐고 1906년 밀라노 세계박람회에 소개되면서 전 세계에 선을 보였다. ‘에스프레소’라는 용어가 붙여진 것도 이때부터다.

1906년 밀라노 세계엑스포에 나선 베제라와 카페 에스프레소. 출처 : 베체라 홈페이지

 미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위치한 ‘커피리뷰(Coffee Review)'가 베제라의 에스프레소 머신에 의미를 부여한 건 따로 있다. 커피를 담는 여과기의 크기를 줄였지만 밸브 수를 늘려 여러 잔의 커피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베제라도 미국에 저작권 등록을 위한 서류를 제출할 때 이 점을 강조했다.


 그는 “(기존 기기는) 음료의 양을 한 번에 준비한다는 점이다. 컵에 부은 커피는 신선하지 않고 완전한 향을 느낄 수 없다”며 “반면 내 기기를 사용하면 한 잔에 필요한 양의 커피만 준비돼 항상 신선한 커피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커피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이안 번스타인(Ian Bernsten)이 모리온도와 베제라 에스프레소 머신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데서도 이 부분이 강조돼 있다.


 그는 “모리온도의 장치는 ‘스팀과 물을 별도로 공급해 커피를 만드는 조절 장치로는 최초의 이탈리안 바 기계’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 모리온도”라면서도 “하지만 개인 고객에게 커피를 빨리 만들어주는 현대의 진짜 에스프레소 머신과 달리, 그의 발명품은 대량 제조 기계에 가깝다”고 했다.


 어찌됐건 베제라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포함해 이전에 만들어진 커피 머신 방식은 수증기나 수증기의 압력으로만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증기압식이었다. 현재 저가형 장치에서 사용되는 이 방식은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증기압을 만들려면 끓는 물이 필요했고, 높은 온도의 물은 커피 성분을 과도하게 끌어내면서 커피의 쓴 맛만 극대화시켰다.  

프란체스코 일리가 개발한 ‘일레타’  출처 : 일리 홈페이지

 증기압식의 단점을 경험한 이탈리아의 발명가들과 커피 전문가들은 이를 보완할 다양한 형태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1933년 헝가리-이탈리아인인 프란체스코 일리(Francesco Illy)가 개발한 ‘일레타(Illetta)’는 작동을 단순화하면서도 고온으로 인해 커피가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증기 대신 가압수를 대체한 최초의 자동 커피 머신이었다.


 그리고 피스톤식 기계가 발명되면서 에스프레소 머신은 획기적인 방식으로 전환하게 됐다.


 밀라노 출신 아킬레 가지아(Achille Gaggia)가 1938년 특허를 신청한 피스톤식 에스프레소 머신은 미국 군용 차량의 유압시스템에서 착안했다. 보일러의 증기 압력과 함께 지렛대 원리를 적용한 장치로 압력을 더 끌어올려 뜨거운 물을 커피 가루 사이로 통과시키는 방식이었다.


 바리스타가 지렛대 형태의 레버를 잡아당겨 압력을 끌어올리는 게 수동 피스톤(Hand lever) 방식이라면, 스프링 피스톤(Spring lever)은 바리스타가 레버를 당기면 피스톤이 올라가 압축된 스프링이 압력을 전달해 에스프레소를 만들도록 했다.


 피스톤 방식은 말 그대로 에스프레소 머신과 에스프레소의 혁신을 가져왔다. 머신의 형태는 수직형 원통에서 수평형으로 바뀌었고 대규모 보일러는 필요치 않게 됐다. 수압은 지금의 에스프레소 머신과 동일한 8~10바로 높아졌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8~10바 압력으로 추출하는 에스프레소엔 연갈색 거품층, 크레마가 형성된다. 출처 : 픽사베이

 수압이 높아지면서, 에스프레소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커피의 맛과 향을 보존해 주는 크레마(crema)라는 거품층을 만들어 냈다.


 크레마는 커피의 지방 성분과 이산화탄소, 휘발성 향기 성분이 결합돼 만들어지는 것으로 기존 커피에선 맛보지 못한 맛과 향,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레버 그룹에 담을 수 있는 물 1온스는 에스프레소의 크기를 표준화했다.


 피스톤식이 개선된 게 펌프식이다. 현재 카페나 바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이 바로 이 펌프식이다. 개발자는 페마(Faema)를 이끌던 에르제스토 발렌테(Ernesto Valente)다.

 발렌테는 1948년 가지아의 발명품인 피스톤 방식 에스프레소 머신의 특허권을 매입해 가지아와 에스프레소 머신 공동 개발에 나섰다.

3개의 배출구가 있는 가지아의 에스프레소 머신 클래식 버전(왼쪽)과 에스프레소 머신의 원형이 된 페마 E61. 출처 : ilcaffe 홈페이지

 그러나 마케팅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은 달랐다. 가지아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고급 시설에 들어가야 할 사치품이라 여긴데 반해, 발렌테는 저렴한 기계를 생산해 대중화에 나서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의견차로 결별한 발렌테는 1961년 ‘페마 E61’을 출시했다. 이 기기는 피스톤 레버 없이도 전동식 펌프에서 에스프레소 추출에 필요한 9바의 일정하고 정확한 압력을 제공했다.


 최초의 반자동 기계인 이 모델은 현대 에스프레소의 아버지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됐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또 있다. 이탈리아 가정에 하나씩은 갖고 있을 정도로 필수품으로 여겨지는 이 기계, 모카포트(Moka pot) 또는 스토브탑커피(stovetop coffee)다.


 원리만 보자면, 에스프레소 머신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열원 위에 올린 모카포트의 보일러 속 물이 끓으며 생기는 증기가 2바의 압력으로 보일러의 물을 밀어 올리면서 원두를 통과해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원두를 물에 끓여 추출하는 건 터키식 커피, 짧은 시간 고압으로 물을 투과시킨다는 점은 에스프레소와 유사하다.

가열된 모카포트에서 커피를 추출하는 모습. 출처 : 픽사베이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모카포트 하단 보일러에 물을 붓고 커피 원두를 담은 필터 그릇을 걸치면 그 위에 추출밸브가 있는 주전자를 아래쪽 보일러에 나사 끼우듯 돌려 고정시킨다.


 결합된 모카포트를 가열하면 하단 보일러에서 나오는 증기압으로 물이 커피 필터를 지나 상단 밸브를 통해 커피가 추출된다.  

 

 커피콩의 종류, 가루의 굵기에 따라 크레마가 있는 에스프레소도 만들 수 있다.


 이밖에 손잡이가 딸린 조그마한 고압 에스프레소 머신인 핸드프레소도 있다. 2006년 닐센 이노베이션에서 발명해 2007년 상용화됐다.


"100년 에스프레소 맛을 지키고 기술을 이어가는 곳"


 루이지 베제라가 1901년 현대적인 에스프레소 머신을 발명한 뒤 베제라 가문은 세계적인 에스프레소 머신 제조업체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회사를 소개하는 홈페이지에도 그 자부심이 짧은 문장에 함축돼 있다.

 “에스프레소 맛을 지키고 기술을 이어가는 곳.”

주세페 베제라와 설명이 적힌 에스프레소 머신. 출처 : 베제라 홈페이지

 베제라가 내놓은 ‘두 개의 수도꼭지가 달린 거대한 장치(tipo gigante con doppio rubinetto)’는 당시 기술의 ‘보석’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그 보석 같은 기술을 아들인 주세페 베제라(Giuseppe Bezzera)가 이어받았다. 


 두 부자가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영국이 커피 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커피 수요가 줄어들었고 곧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어려움 가운데도 사업을 이어가면서 베제라 가문은 1930년대 초 ‘릴리푸트(Lilliput)’라는 모델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탄생시켰다. 이 기계는 지금도 베제라 가문의 전통을 지키는 모델이 됐다.

지금도 세계 최고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생산하는 베제라. 출처 : 베제라 홈페이지

 현재 베제라는 4대째 가업을 이어가면서 에스프레소 머신의 기술 혁신과 전통을 지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제조 공장은 원자재 선택부터 강철 및 구리 보일러 가공, 조립, 품질 관리까지 전체 생산 과정을 진행하면서 전문가용과 준전문가용 에스프레소 머신을 생산해 약 5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그 결과 최초로 2001년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들었고, 2020년엔 스페셜티 전용 머신도 개발했다.


 이런 에스프레소 머신을 출시하는 회사도 있다.

빅토리아 아르두이노의 E1 시리즈. 출처 : 빅토리아 아르두이노 홈페이지

 "카메리노 대학의 수학과와 공동 개발한 디지털 알고리즘은 커피의 뜸 들이기부터 추출까지 커피의 저항과 분쇄물 내의 일반적인 유체 잔류량을 고려해 유량계의 부피 측정값을 무게 예측값으로 변환합니다."


 지난해 7월 지능형 가상 저울(VIS)을 탑재한 이글원(E1) 모델에 대한 설명이다. 이 모델을 내놓은 회사는 1905년 피에르 테레시오 아르두이노(Pier Teresio Arduino)가 세운 빅토리아 아르두이노(Victoria  Arduino)다.

 

  테레시오 아르두이노는 커피 시장과 바가 새롭게 변화되는 걸 목격한 뒤 회사를 세웠다. 이후 커피를 빠르고 쉬우면서 안전하게 공급할 수 있는 장치에 관심을 갖게 됐고 군 시절 경험한 기관차에 학교에서 배운 기술적 경험을 결합해 자신만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들었다. 그렇게 세상에 알린 에스프레소 머신의 이름은 ‘비토리아(Vittoria)’다. 이후 기술과 전통, 디자인을 결합한 다양한 기계를 내놓고 있다.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이탈리아에서 베스트셀러를 차지한 브랜드도 빼놓을 수 없다. 에스프레소 하면 두 말할 필요 없는 브랜드, 라심발리(La Cimbali)다. 

 창업자인 주세페 심발리(Giuseppe Cimbali)는 1912년 밀라노 중심부에서 구리 가공 공장으로 시작했다.  

라심발리는 ‘그란루스(Granluce)’를 출시했다. 출처 :  라심발리 홈페이지

 1930년 수직 형태의 보일러를 기반으로 한 에스프레소 머신 ‘라피다(Rapida)’를 제작했고 1945년 2개의 독립적인 수직 보일러를 갖춘 ‘알바도로(Albadoro)’를 시장에 내놨다.

 알바도로는 커피 배출출구를 머신 전면에 배치해 바리스타의 동선을 최소화했고 컵 워머도 설치했다. 


 그리고 1955년 바리스타의 작업량을 획기적으로 줄인 유압식 ‘그란루스(Granluce)’ 출시하며 에스프레소 머신 특허를 냈다.


 라심발리는 1995년 펌프식 에르프레소 머신인 페마 E61을 개발한 페마사를 인수 합병하면서 규모를 키웠고 현재 100여개가 넘는 국가에서 시장의 70% 이상의 장악력을 보이며 세계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모카포트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도 있다. 1933년 이탈리아 비알레띠사에서 내놓은 모카 익스프레스다. 모카포트라는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알폰소 비알레띠가 개발해 그의 아들인 레나토 비알레띠가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들었다.  

1933년 비알레띠가 내놓은 모카포트(왼쪽)와 레나토 비알레띠의 장례미사에서 그의 유해가 담긴 모카포트. 출처 : 비알레띠 홈페이지, AP

  모카포트 사랑이 남달랐던 레나토는 유언장에 자신의 유해를 비알레띠 모카포트에 담아달라는 내용을 남겼다. 그리고 2016년 이탈리아 북부 까살레 꼬르테 쎄로 교구에서 열린 그의 장례 미사는 화장한 유해가 담긴 모카포트를 앞에 두고 열렸다.


 1993년 론디네(Rondine)와 합병된 뒤로 비알레띠는 다양한 디자인의 모카포트를 개발하고 에스프레소 캡슐 머신도 만들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제작하는 기업들은 다양한 콘텐츠와의 결합을 통해 외연을 확장하기도 했다.

라심발리가 이탈리아 비나스코에 세운 커피 박물관 MUMAC. 출처 :  MUMAC홈페이지

 라심발리가 회사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12년 밀라노에서 남서쪽으로 15km 떨어진 비나스코에 세운 커피박물관 ‘MUMAC’은 단순히 에스프레소 머신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가 에스프레소 머신을 경험하면서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을 설명하고 진화할 에스프레소 머신의 미래도 설계한다. 


 전문가들이 만든 커피를 마시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심발리 그룹 회장인 마우리치오 심발리는 “MUMAC은 에스프레소 머신뿐 아니라 커피의 전체 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고급 솔루션을 시장에 제공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담고 있다”고 홈페이지에 설명했다.


 1922년 빅토리아 아르두이노는 20세기에 시작된 매니페스토(manifesto)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매니페스토란 유럽 각지에서 일어난 새로운 예술 운동이나 그 운동의 정신과 의도를 밝히는 글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당시 빅토리아 아르두이노는 레오네토 카피엘로(Leonetto Cappiello)에게 상업 광고를 의뢰했다. 

레오네토 카피엘로가 1922년 제작한 빅토리아 아르두이노의 상업용 포스터. 출처 : 빅토리아 아르두이노 홈페이지

 이탈리아 리보르노 출신의 카피엘로는 파리에서 거주하며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포스터 아트 디자이너이자 화가로 활동했다. 포스터 디자인의 혁신을 이루면서 그는 ‘현대 광고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바로 빅토리아 아르두이노의 포스터였다. 포스터는 에스프레소를 준비하는 과정을 달리는 기차에 기대 있는 우아한 여행자로 표현했다.

 

 미래학자 레오네토 카피엘로(Leonetto Cappiello)는 포스터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했다.


 “당시의 문화적, 산업적 열정을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다. 예술가는 에스프레소 커피 머신과 기차의 연관성, 즉 증기 생산을 통한 동일한 작동 원리와 전달 속도의 동일한 점을 미래주의적 시각에서 설명하며 기차와 커피 머신 모두 큰 변화의 시기에 있었음을 알려줬다.” 


 비알레띠는 브랜드 이미지를 상업광고와 결합해 명성을 구축했다. 1958년 TV에 등장한 ‘콧수염이 난 남자’다.

1955년 TV광고에 등장한 비알레띠의 광고 '콧수염 난 남자'는 회사의 로고가 됐다. 출처 : 비알레띠 홈페이지

  비알레띠 광고가 전파를 탔을 시기는 이탈리아 방송사들이 수신료 수입만으로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다양한 수익 모델을 고민할 때였다. 


 라이(RAI) 방송사는 TV편성표에 대놓고 광고 전용 시간을 도입하기로 했다.


 그 시간에 실사부터 애니메이션 인형극가지 다양한 광고 형태가 방송됐다. 이를 이탈리아어로 회전목마를 뜻하는 카로셀로(Carosello)라 불렀다.

 

 카로셀로 시간에 비알레띠는 만화가 폴 캄파니 (Paul Campani)가 연필로 그린 콧수염 난 남자를 등장시켰다. 이후 이 남자는 비알레띠의 모든 제품에 로고로 표시됐다.




*참고 자료 : 이안 번스타인, 'Coffee Floats Tea Sinks: Through History and Technology to a Complete Understanding)'(1993), 커피매거진(Coffee Magazine), 각사 홈페이지

** 메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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