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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크 Oct 08. 2024

[막간 ‘발품’ 팁(4)]

외국에 가면 누구나 '외교사절단'이 되는 방법

2012년 3주간의 일정으로 스페인 곳곳을 여행 다니던 때의 일입니다. 바르셀로나에 왔으니 인근 몬세라트(Montserrat)를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카탈루냐어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뜻의 이 산은 분홍색 역암으로 이뤄져 있는데도 독특한 경관을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아서 왕의 성배 전설에 등장하는 베네딕트의 산타 마리아 몬세라트 수도원이 있어 성지 중 하나로 꼽힙니다. 역사적 종교적 의미도 있지만, 몬세라트를 찾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을 지을 때 영감을 얻은 곳이 몬세라트 산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만큼 놓칠 수 없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다시 산악 열차로 갈아탄 뒤 수도원 앞에 도착했습니다. 방문의 이유가 있으니 수도원은 일단 지나쳤습니다. 풍광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한 번의 여정이 더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푸니쿨라를 타고 산 정상까지 오르는 여정이었습니다.


시간에 맞춰 대기 중이던 푸니쿨라 운전사와 잠깐 대화를 나눴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봐야 할 곳을 꼽아달라고 했습니다. 역무원은 대부분 사람들은 왼쪽으로 가지만, 자연을 좋아한다면 오른쪽 길로 가라고 안내했습니다.

주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우디 때문에 왔으니 가우디의 시선으로 몬세라토를 보려면 오른쪽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탑승한 푸니쿨라 안 관광객들 사이로 눈길을 끄는 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저처럼 홀로 온 아시안계 여성이었습니다. 


푸니쿨라에서 내리니 양 방향으로 길이 나뉘는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이정표 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는 저에게 그 여성이 다가왔습니다. '일본에서 왔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게 좋냐'고 물었습니다. 현지인도 아닌 저로선 역무원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명을 들은 일본인 여성이 다시 물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갈 건가요."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가는 쪽으로 가겠다는 질문. 저는 "오른쪽"이라고 답했고 그녀도 주저 없이 저의 길에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몬세라트 산 중에서 해발고도 1236m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산트 제로니(Sant Jeroni) 방향 하이킹 코스로 접어들었습니다. 자연 풍광을 보며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사진도 찍어줬습니다. 한 시간 여가 지나자 그녀가 작별 인사를 고합니다. 일정이 여유롭지 않아 바르셀로나로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연락처를 물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해외에서 연락처는 전화번호가 아닙니다. 예전엔 이메일 주소였고 지금은 SNS입니다. 당시 사용하던 SNS는 지금의 인스타그램이 아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현재 엑스)였습니다.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는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화려한 문양과 색채를 자랑하는 메모지에 ID를 적은 그녀의 센스 때문이었습니다.


"무슨 종이냐"는 질문에 성실한 답이 돌아옵니다. "일본의 전통 종이와 문양이다. 해외에 나가면 일본을 알리기 위해 이 메모지를 늘 가지고 다닌다"고. 


그저 몬세라트 길만 알려주던 저에게 그녀는 새로운 길을 보여준 듯했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되고 외교사절단이 된다'는 당연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말을 그녀는 실천하고 있었으니까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저에겐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해외에 나갈 때면 외교사절단의 사명감을 갖고 한국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했습니다. 전주 한지가 떠올라 한지로 만든 메모지를 찾았는데, 왠지 일본인 여성을 따라 하는 듯 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인사동 길에서 재미난 걸 발견했습니다. '복주머니' 이미지로 만든 스티커였습니다. 어느 종이건 이 스티커 하나만 붙이면 되니 부피도, 가격도 부담되지 않았습니다. 설명하기엔 또 얼마나 좋을까요. 복을 가져다주는 주머니 'lucky bag' 'lucky pocket'이니 말이죠.


2015년 커피와는 다른 컨셉으로 프랑스 여행을 갔을 때 이 복주머니 스티커를 유용하게 써먹었습니다. 연락처를 주고받을 때 종이에 붙여주는 데서 나아가 큰 도움을 준 사람에겐 선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이후 외교사절단이 되기 위한 아이템은 하나 더 추가됐습니다. 공교롭게도 아이템 첫 번째 후보였던 한지 메모지를 전주에 계신 분이 선물로 주시면서요. 


이번 커피여행에선 신박한 아이템을 또 하나 더했습니다. 연락처와 SNS ID 등이 담긴 QR코드 스티커였습니다. QR코드를 만들어 출력소에 가서 스티커 형태로 출력했더니 그럴듯했습니다. 


덕분에 커피여행을 떠난 여행지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쉽게 장벽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밀라노 일정을 마치고 프랑스 파리로 이동하기 위해 공항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은 짐에 쩔쩔매던 저를 도와준 중국인 청년이었습니다. 

파리에서 모델일을 하고 있다는 청년은 쇼 때문에 밀라노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샤를드골 공항에서 숙소와 가까운 지하철 역까지 쭉 동행했습니다.


헤어질 때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전주 한지에 복주머니 스티커를 붙이며 의미를 설명해 줬습니다. 거기에 QR코드 스티커도 붙였습니다.


청년과의 만남은 이제 1년 전이 될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SNS를 통해 메시지로 소통하고 근황을 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외교사절단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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