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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크 Jul 04. 2024

[걷다 보니 ‘발품 컨셉’]커피부록(22)

#이탈리아 ‘일부’ 카페… 디저트, 밀라노대성당과 페어링 하다

“…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걸은 길을 택했다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일부다. 이 시는 어쩌면 발품 컨셉이라는 여행을 설명하는 가장 문학적 표현이 아닐까 싶다. 


가을날 숲 속을 걷다 두 갈래 길을 마주한 뒤 사람이 적게 지나간 길을 택했을 때 모든 게 달라졌음을 말하는 시처럼 ‘발품 컨셉’으로 떠난 여행은 이동 수단을 이용할 때보다 ‘가지 않은 길’을 갈 변수가 많다. 


이 과정에서 뜻밖의 행운도 만난다. 방향을 잃어 길을 헤매기도 하지만 의외의 풍경을, 상황을, 사람을 마주하는 행운.

출처 : 픽사베이

밀라노에서도 ‘가지 않은 길’을 걷다가 매력적인 장소를 만났다. 그저 아침을 해결하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방향을 틀었을 뿐인데, 그곳엔 모로코가죽색 커피에 코코아 가루가 너저분하게 흩뿌려진 커피가 있었다.


“마돈니나를 만나러 가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성당이 북부 롬바르디아주 밀라노에 있다는 건 다소 의외였다. 가장 큰 건 늘 수도에 있다는 고정관념, 그래서 이탈리아 수도인 로마에 가장 큰 성당이 있을 거라는 오해가 던져준 의외성이었다.


아무리 여행 컨셉이 ‘커피’고, 나머지 숙제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이라지만 밀라노에 왔다면 방문 리스트에 이 성당을 넣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두오모 광장에 서 있는 밀라노 대성당.

밀라노 대성당(Duomo di Milano) 얘기다.


밀라노의 가장 번화한 곳, 두오모 광장(Piazza del Duomo)에 자리한 밀라노 대성당은 축구 경기장 1.5배 크기로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중 하나로 꼽힌다.


성당의 진짜 명칭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 탄생 대성전(Cattedrale Metropolitana della Natività della Beata Vergine Maria)’이다. 이탈리아에선 도시마다 대성당을 두오모로 부르는 만큼 밀라노에선 진짜 이름보다 두오모 디 밀라노(Duomo di Milano), 밀라노 대성당이라고 부른다. 


밀라노 대성당은 1386년 안토니오 다 살루초 대주교의 명령으로 후기 고딕 양식인 ‘라요낭(rayonnant)’ 형태로 짓기 시작했다. 라요낭은 프랑스의 루이 9세 통치 기간 시작된 건축양식으로 대표적인 특징이 장미창이다. 프랑스 파리 생트 샤펠 성당이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살루초 대주교와 함께 밀라노 권력자인 대주교의 사촌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가 건축을 주도했다. 비스콘티는 성당 건축 기금을 마련하는 동시에 시모네 다 오르세니고를 수석 건축가로 세웠다. 오르세니고는 300명가량을 고용해 두오모 건축공방(Veneranda Fabbrica del Duomo)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성당은 엔지니어 리더를 바꿔가며 건축을 이어가던 중 변화의 순간을 맞았다. 1571년 펠레그리노 티발디가 수석 엔지니어로 임명되면 서다.

밤이면 밀라노 대성당 가장 높은 곳 마돈니나는 조명을 받아 빛이 난다. 대성당 옆 박물관 속 산고타르드 교회 앞엔 실물 크기 복제품 마돈니나 동상을 가깝게 볼 수 있다.

티발디는 고딕 양식으로 지어지던 밀라노 대성당에 르네상스 양식을 덧입히기 시작했다. 로마와 이탈리아적 특징을 강조하면서 외국에서 온 고딕 양식을 소멸시키려는 전략이었다.


17세기 들어 밀라노 대성당은 다시 한번 새로운 외관을 입기 시작했다. 1649년 카를로 부치가 새로운 수석 건축가로 들어오면서 고딕 양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762년 대성당의 주요 부분 중 하나인 첨탑이 세워지고 그 위엔 주세페 페레고가 대성당 구조에 맞게 설계한 마돈니나(Madonnina) 조각상이 올려졌다. 


대성당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마돈니나는 6750개 순금으로 이뤄진 동상이다.


처음엔 내부 구조를 철로 만들면서 무게만 700kg을 넘었다고 한다. 그러다 비바람에 녹이 슬면서 철 구조물은 두오모 박물관에서 보관하기로 했다. 


현재 첨탑 위 마돈니나 안엔 스테인리스 스틸이 들어가 있다. 


참고로 마돈니나의 금박30, 40년에 한 번씩 새로 도금한다. 마지막 도금은 2012년 12월이라고 한다.


첨탑 꼭대기에 세워진 황금빛 마돈니나는 말 그대로 밀라노의 상징이 됐다. 습기 많고 흐린 기후로 유명한 밀라노에서 마돈니나 동상이 보이면 밀라노 사람들은 날이 좋다는 걸 알았다. 


길을 잃어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밀라노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돈니나를 보며 길을 찾으면 됐다.

동판화 'Milano, Il Duomo' 1856년 5월 18일자 출처 : 경매사이트 www.bassenge.com

한때 밀라노 시내에서 마돈니나는 고도 제한의 역할도 했다. 밀라노에 건물을 지을 때 마돈니나 높이를 넘어서면 안 됐다. 


지금은 높이 제한이 풀렸지만, 여전히 전제는 있다. 제일 높은 곳에 성모상을 세우는 조건. 


1800년으로 접어들면서 밀라노 대성당은 건축에 속도가 붙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탈리아를 침공하면 서다. 보나파르트는 이탈리아 왕에 즉위하기 전 밀라노 대성당의 외관 건축을 완성하라고 지시했고 1805년 5월 이곳에서 이탈리아 국왕에 즉위하는 대관식을 치렀다. 첨탑 중 한 곳에 나폴레옹 조각상도 세웠다. 


대성당의 마지막 세부 장식은 20세기에 완성됐다. 1965년 1월 출입구가 완성되면서 건축의 역사는 마침표를 찍게 됐다.

예수가 십자가 형벌을 받을 때 사용된 못 중 하나가 보관돼 있는 닫집을 45m 높이 천장의 붉은빛(위 왼쪽 사진)이 가리킨다. 

그리고 마돈니나와 뾰족하게 솟아오른 135개의 첨탑, 건물 외벽에서 마치 사람들을 내려다보듯 서 있는 2000여 개의 조각상 등은 사람들이 밀라노 대성당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건축물’의 하나로 꼽는 이유가 됐다.


600년 건축 역사를 보기 위해 입장권을 보여주고 들어섰다. 대성당에 들어서니 1년, 52주를 상징하는 52개 기둥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저 멀리 중앙 복도 끝 제단 뒤 거대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보이고 그 앞에 둥근 지붕 형태의 닫집도 시선을 끈다. 


사원을 축소한 듯 만든 이 닫집의 지붕은 도금된 8개 청동 기둥이 떠 받치고 있고 그 위엔 예수상이 장식하고 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달리 보인다. 


성물이 보관돼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형벌을 받을 때 사용된 못 중 하나다. 


산타 테클라(Santa Tecla) 대성당에 있던 이 못은 1461년부터 계속 이곳에 있었다.

못을 볼 수 있는 건 1년에 한 번이다. 매년 9월 14일 직전 제단 뒤 대제단 옆으로 옮겨져 40시간 동안 전시된다. 


고개를 들어 닫집 위를 올려다봤다. 45m 높이 천장의 붉은 점처럼 보이는 빛이 닫집을 가리킨다는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닫집을 가리키는지는 시각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있기는' 있었다. 


닫집 양 옆의 1만5800개 파이프로 구성된 오르간도 스쳐 지나가서는 안 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오르간 중 하나로 지금도 매주 토, 일요일과 성당 주요 행사 때 연주되고 있다.

52개 기둥과 붉은 아르조 대리석, 코모 호수 검은 대리석으로 조개와 꽃 등을 그려 넣은 대성당 바닥.

성당 바닥은 미학적이다. 


1585년 제작되기 시작한 대성당 바닥의 타일은 예술가 펠레그리노 티발디(Pellegrino Tibaldi)가 디자인했다. 


칸돌리아(Candoglia) 대리석판에 고딕과 바로크 양식의 장식을 넣었다. 붉은 아르조 대리석과 코모 호수의 검은 대리석으로 조개와 꽃 등을 그렸다.


밀라노 대성당은 내부도 내부지만, 외관도 놓칠 수 없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거나 250여개 계단을 오르면 ‘두오모 테라스’라 불리는 대성당 지붕 위에서 특별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19세기 대중에 공개된 두오모 테라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테라스 중 하나라고 한다. 총면적은 8000로 칸돌리아 대리석판이 덮고 있다. 135개 첨탑, 수많은 동상과 밀라노 상징인 마돈니나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맑은 날에는 멀리 알프스산도 볼 수 있다고 한다.

테라스엔 쭉 뻗은 첨탑과 조각상, 건축물의 하중을 버티는 삼각형의 측면 아치, 지붕 주위를 장식하는 팔코나투라와 배수관 역할을 가고일 석상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테라스에 오르니 가장 먼저 만나는 건 하얀색 편백나무 마냥 우뚝 솟은 첨탑들이다. 


이곳에서도 독특한 고딕 양식의 구성 요소를 만나볼 수 있다. 일단 모양이 제각각인 첨탑과 첨탑 끝에 우뚝 선 조각상은 멋스럽다. 고딕 양식의 건축물에서나 볼 수 있는 가고일 석상도 놓칠 수 없다. 

밀라노 대성당 옆 박물관에서 본 실물의 가고일 석상을 테라스에서도 만날 수 있다. 테라스엔 첨탑 위 석상, 아칸서스 잎으로 장식한 삼각형 팔코나투라도 있다.

기괴한 형상의 가고일은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난 공포영화, 판타지 영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 다소 익숙한 상상 속 형상이다. 악마를 방어하기 위한 종교적 요소를 담은 조각상이면서 테라스에 떨어지는 빗물을 처리하는 배수관의 역할도 한다. 


여기에 지붕 주위를 장식하는 삼각형 모양의 팔코나투라도 눈길을 끈다. 


끝 부분은 명예와 신성함, 영원함을 상징하는 지중해 식물 아칸서스 잎으로 장식했다. 


팔코나투라 역시 미학적 요소와 함께 벽 측면을 지지하면서 빗물 침투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대성당 측면에 늘어서듯 만들어진 삼각형 모양의 아치는 자못 웅장하다. 그런데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맡은 임무가 있다. 건축물의 하중을 버틴다.


가고일, 측면 아치, 팔코나투라를 보며 걷다 보면 어느새 테라스 중앙에 도착한다. 

지상에서 17m 높이에 있는 면적 1500㎡의 테라스 중앙 공간은 조각상이 우뚝 선 첨탑이 2열 종대로 서 있다. 그중 가장 높은 곳에 마돈니나가 있다.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엔 황동 구리선이 깔려있고 그 위로 별자리 타일이 있다. 구리선 시작점 위 '격언의 구멍'(위쪽 사진)으로 나오는 햇빛이 별자리를 가리킨다.

참고로 밀라노 대성당은 건축적,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이지만 재미난 요소들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위트가 있고 미학이 있는가 하면 과학이 담겨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성당 바닥에선 천문학을 만날 수 있다. 입구 쪽 바닥에 새겨진 황동 선이다. 


선을 따라 12개 별자리 상징이 그려져 있는데 남쪽 천장의 첫 번째 아치(valut)의 24m 높이 움푹 들어간 구간에 만들어 놓은 구멍 은 색다른 장면을 연출한다. 


날이 좋은 정오엔 ‘격언의 구멍’이라 불리는 이곳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그리고 황동 줄을 따라 그날의 별자리를 비춘다. 해시계다. 


이 시계는 1786년 브레라(Brera) 천문대 천문학자인 안젤로 데 체사리스(Angelo De Cesaris)와 루제로 보스코비츠(Ruggero Boscovich)가 제작했다. 


나름 화창한 날씨라 기대감을 갖고 오후 12시를 기다렸지만, 아쉽게도 빛이 강하게 들어와 바닥을 비추는 걸 경험하지는 못했다.

중앙 테라스로 올라가는 계단 옆은 단테와 함께 권투 글러브, 농구공 등의 장식을 찾는 재미가 있다. 

성당 바닥의 별자리와 달리 두오모 테라스에선 건축가들의 재치와 익살을 만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20세기 초 건설된 중앙 테라스로 올라가는 계단에 만들어진 디테일한 장식이다. 


위대한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의 얼굴은 그렇다 쳐도 테니스 라켓, 권투 글러브, 농구 공도 만날 수 있다. 20세기 초 석공들의 자유로운 주제 선택 덕이라고 한다.


세월의 흐름만큼 대성당은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었다. 글로 다 담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에게 알려진 내용을 걸러낸 뒤 그닥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정도였다.


이처럼 600년의 시간을 담고 있는 성당은 지금도 파브리체리아로 불리는 건축공방에서 보존과 복원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대성당을 둘러보며 나올 때도 곳곳에 설치된 비계와 가림막을 보는 게 어렵지 않았다.

결코 끝나지 않은 무언가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관용어, ‘두오모 건축만큼 길다’는 그 말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두오모 테라스에 오르면 복원과 재건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지 않을 방향으로 향했다”


두오모 광장에서 곧바로 밀라노 대성당으로 향한 건 아니다. 머릿 속을 가득 메운 '금강산도 식후경'을 실천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인 데다 하루를 커피로 시작하는 일상 속 루틴을 충족시키려면 대성당보다 카페를 찾는 게 더 급했다.


대성당을 바라보고 두오모 광장 좌측에 자리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에 가면 카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밀라노를 찾는 여행객이라면 무조건 들러야 할 곳이니 만큼 명품숍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카페가 즐비한 곳이었다. 

그래서 과감히 다른 방향,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두오모 광장의 오른쪽 방향의 길이었다. 어차피 갤러리아는 갈 테니 ‘아껴두자’는 마음도 있었다.


방향을 틀자마자 깔끔한 외관을 자랑하는 카페가 보였다. 커피와 간단한 조식을 즐길 수 있도록 야외에 설치한 테이블이 매력적이었다.


11월 추위를 고려한 듯 사방을 유리로 막은 부스형태의 좌석이었다.


자리로 들어섰고 직원이 다가왔다. 커피와 디저트 추천을 부탁했다. ‘마로키노(Marocchino)’라는 커피를 추천하며 “밀라노에 왔다면 꼭 마셔야 할 커피”라고 설명했다. 디저트는 자신들의 시그니처라며 ‘파네토네(Panettone)’를 제안했다.


잠시 후 직원이 가져다준 커피는 우유 거품 위에 고운 입자의 코코아 가루가 내려앉아 있었다. 좋은 말로 내려앉은 것이고, 솔직히 표현하면 코코아 가루의 입자가 워낙 곱다 보니 커피 잔 곳곳에도 가루가 묻어 있어 무성의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하트 모양의 초콜릿을 토핑처럼 우유 거품에 올린 센스가 날린 가루를 처리하지 않은 불친절을 덮었다. 


커피는 달콤 쌉싸름했다. 마로키노라는 커피가 궁금해졌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아차 싶었다. 밀라노 대표 커피라는 설명을 보는 순간이었다. 

코코아 가루가 뿌려진 마로키노. 

이 커피는 풍성한 거품 위로 코코아 파우더를 얹어 입술 끝에 느껴지는 달콤한 부드러움이 매력 포인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마로키노는 이탈리아 알레산드리아(Alessandria) 마을에서 시작됐다. 


17세기 음료 바바레이사(Bavareisa)가 그 시초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바레이사를 기반으로 18세기 만들어진 토리노 음료 비세린(bicerin)과도 유사한 형태다.


유리컵에 코코아 가루를 뿌린 다음 에스프레소에 우유거품을 얹고 그 위에 또다시 코코아 가루를 뿌리는 방식으로 만든다. 지저분한 게 이 커피의 특징이라는 설명을 보는 순간, '무성의'와 '불친절'을 떠올린 게 괜스레 미안해졌다.


커피의 명칭은 모로코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마로키노에서 가져왔다. 

알레산드리아 마을은 모자의 일종인 맞춤형 페도라로 유명한 곳인데 모자 내부 둘레엔 모로코의 가죽 조각을 덧댔다. 음료 속 코코아 가루층 색상이 이 가죽과 유사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영국의 커피 전문업체인 홈그라운드는 에스프레소 기계만 있다면 만드는 건 쉽다며 레시피를 알려줬다.


일단 두 잔의 마로키노를 만들려면 18g의 커피 원두와 코코아 가루 2티스푼, 우유 88~118ml가 필요하다. 커피 그라인더, 에스프레소 머신도 있어야 한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우유 거품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이때 라떼에 사용되는 밀도 높은 우유 거품 보다 카푸치노에 쓰이는 가벼운 거품이 좋다. 

출처 : 홈그라운드

빈 잔에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그 위에 입자 고운 코코아 가루를 뿌린다. 다음은 에스프레소 양에 맞춰 우유 거품을 올린다. 이때 우유거품은 붓는 개념보다 숟가락으로 떠내는 게 좋다. 숟가락으로 얹은 우유 거품 위로 다시 남은 코코아 가루를 뿌려주면 된다. 이제 마시는 시간이다. 우유와 커피, 코코아 가루 층을 감상했다면 세 가지가 고루 섞이도록 저어준다. 


변형도 가능하다. 단맛을 원한다면 코코아 가루 대신 초콜릿 파우더를 쓰면 된다. 농축된 커피 맛을 원한다면 에스프레소 대신 리스트레토를 선택해도 된다. 실제 누텔라의 탄생지인 피에몬테주 알바에서는 코코아 가루 대신 유명한 초콜릿 헤이즐넛 스프레드인 누텔라를 한 스푼 넣어주기도 한다. 


또 다른 조리법은 유리잔 안쪽을 초콜릿 시럽으로 코팅한다.  북부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선 커피에 핫코코아를 추가하기도 한다. 


마로키노와 마키아토는 비슷한 듯 다르다. 그 차이점을 알고 마셔 보는 것도 좋다. 차이점의 키는 우유의 양과 초콜릿을 사용하느냐의 여부다. 


마로키노에는 코코아 가루가 겹겹이 쌓이고 에스프레소 양만큼 풍성하게 우유 거품을 올린 뒤 다시 코코아 가루를 뿌린다. 이에 비해 마키아토의 우유 거품은 적고 초콜릿 가루를 올린다.

파네토네는 연유와 함께 제공된다. 

마로키노와 함께 주문한 디저트 ‘파네토네’는 커피와 절묘한 맛의 조화를 이뤘다. 


카페는 자신들이 내놓는 파네토네를 ‘고급 파티세리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라고 소개할 정도로 자긍심을 드러냈다.


그럴 만한 게 만드는 방법부터 정성이 느껴진다.

반죽은 조절된 온도에서 네 번의 발효를 거쳐 부드러움을 배가시킨다. 


두 번의 반죽을 거쳐 총 62시간 동안 발효시키는 복잡한 과정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이 있어야 빵 내부에 완벽한 벌집 모양의 구멍이 생기고 버터와 바닐라 향기가 자리한다.


카페에선 거대한 파네토네 덩어리를 조각으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여기에 커스터드 크림을 제공한다. 파네토네에 뿌려 먹는 커스터드 크림이 부드러움을 배가시킨다.

기니모 마사리(가운데)가 시그니처 빵인 파네토네를 소개하는 모습. 출처 : 

빵을 만들고 커피를 내리는 이곳이 궁금해졌다. 카페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이기니오 마사리는 1942년 브레시아에서 요리사인 어머니, 식당 책임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16살이던 때 제과점에서 일하면서 제과 제빵에 대한 열정을 깨닫게 됐고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제과 제빵 분야를 공부했다. 


훈련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의 능력은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업계에서 알려졌다. 유명한 식품 산업가인 바제티는 그를 영입하기 위해 말 그대로 삼고초려했다.


바제티 밑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자신만의 제과점, 디저트 가게를 자신의 고향인 브레시아에 열었다. 이후 세상에 그의 디저트 가게가 알려졌다. 


1964년부터 300개 이상의 국내 및 국제 대회에서 수상했고 이탈리아의 디저트를 세상에 알리는 데 적극 나섰다.

1985년 최초의 이탈리아 페이스트리 챔피언십을 열었고 1987년 세계 최고 페이스트리 셰프들의 모임인 국제협회 릴레디저트(Relais Dessert)의 최초이자 유일한 이탈리아 회원이 됐다. 현재 릴레 디저트엔 16개국, 91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2000년엔 ‘1999~2000년 올해의 이탈리아 페이스트리 셰프’ 금메달을 수상했고 2013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초콜릿 선수권 대회인 ‘월드 초콜릿 마스터스(World Chocolate Masters)’에서 코치로 출전해 금메달 우승자를 배출했다. 그해 그는 이탈리아 공화국 훈장(Commendatore)을 받았다. 


이탈리아에서 카페 이기니오마사리의 문을 연 이기니오 마사리를 마에스트로라 부른다. 출처 : 이기니오 마사리 홈페이지

고향인 브레시아에 식품 전문학교인 카스탈리멘티(CAST ALIMENTI)를 세워 후진 양성에도 힘 쏟고 있다. 


세계적인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마스터셰프 이탈리아편에 2012년부터 심사위원단으로도 출연하고 있다. 


1987년부터 와인으로 시작된 이탈리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이드 감베로로쏘(Gambero Rosso)에 2011년부터 현재까지 ‘이탈리아 최고의 페이스트리 가게’로 선정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탈리에선 그를 마에스트로 마사리(Maestro Massari)라 부른다. 


그의 고향인 브레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밀라노 갤러리를 이렇게 우연히 만났으니 ‘가지 않은 길’이 선사한 선물 같은 행운이라 할 만했다.

카페 이기니오 마사리엔 다양한 종류의 디저트를 맛보기 위한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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