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부록(24)#이탈리아 ‘일부’ 카페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연극, 영화 등 문화 영역까지 침범한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자본이 투입된 영화나 연극의 감독과 연출가에게 간섭하기 시작했다. 자본가들의 횡포는 창작할동을 저해하는 요소가 됐고 '예술의 도시'라 불리는 파리를 중심으로 자본에 대항하는 세력이 생겨났다.
이때부터 연출자와 감독은 자신의 의도를 작품 속에 감춰 표현했다. 바로 '미장센'의 시작이었다.
감독은 배경, 인물, 조명, 의상, 분장, 카메라 워크 등 요소요소에 미장센을 배치했다.
2020년 OTT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한 다큐멘터리 '소품과 문화(Prop Culture)'는 소품이 영화 속 미장센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가 된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역사가이자 소품 수집가인 댄 래니건이 디즈니 영화 속 소품을 찾고 이를 만든 제작자, 사용한 배우들을 만나 뒷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과정에서 영화 속 소품의 가치를 알게 한다.
첫 번째 시리즈에 등장하는 영화는 쟁쟁하다. '캐리비언의 해적 : 블랙펄의 저주', '메리 포핀스' '누가 로저래빗을 모함했는가' 등등.
그런 의미에서 이탈리아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소품 하나가 있다.
장소와 시대, 상황을 구분하지 않고 나오는 이 소품은 이탈리아의 정서와 문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가령 1983년 이탈리아에 사는 17살 소년 엘리오와 24살 청년 올리버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 퀴어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2018년)'에도 나온다.
그리고 로마의 한 교도소 안에서 살인, 마약 등으로 복역 중인 재소자들이 교화 프로그램의 하나인 연극 '줄리어스 시저'의 오디션에 참여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Ceaser Must Die, 2012년)'에도 뜬금없이 등장한다.
뜬금포 같지만, 이탈리아이기에 당연한 '모카포트'였다.
모카포트의 역사를 시작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엔지니어이자 알루미늄 금속 세공업자인 알폰소 비알레띠였다. 1930년대 초에도 커피는 여전히 커피하우스 또는 카페를 찾아야 마실 수 있었다. 알포에겐 그 부분이 늘 아쉬웠다.
"커피를 집에서 쉽고 저렴하게 만들어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늘 고민하던 그는 직접 그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아이디어는 일상에서 찾았다.
세탁기의 전형이 된 당시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사용한 리쉬부즈(lisciveuse)였다.
속이 비고 뚫린 관이 달린 큰 냄비 형태의 리쉬부즈엔 세탁할 옷, 무거운 옷감, 알칼리성 세제인 잿물을 함께 담는다.
냄비 아래쪽에서 끓는 물이 뚫린 관으로 올라와 냄비 안으로 분출되면 그 물이 세제를 녹이면서 옷 사이로 들어가도록 했다. 알폰소는 잿물을 커피 가루로 대체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기술력을 앞세워 알루미늄으로 커피 기계를 만들었다. 아르데코 건축과 아내의 플리츠스커트에서 영감을 받아 팔각형 각진 바닥, 깔때기 모양의 여과기, 경첩에 뚜껑이 달린 팔각형 주전자로 디자인했다.
한 손으로 들 정도로 자그마하면서도 예쁘장한 이 커피 기계에 이름도 붙였다. 커피 생산지로 유명한 예멘의 '모카'에서 가져온 '모카포트' 또는 '모카익스프레스'였다.
비알레띠 인더스트리즈의 수출 관리자인 크리스티나 레포라티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수년에 걸쳐 모양이 약간만 변경됐을 뿐 처음 그 모양 그대로"라고 말했다.
잘 나갈 것만 같던 모카포트도 위기의 순간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알루미늄 부족으로 회사 경영조차 어려울 정도가 됐다.
회사를 기사회생시킨 건 알폰소에 이어 사업을 이어받은 그의 아들 레나토였다. 가족 회사에서 모카포트를 보고 성장한 는 1946년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이어받았다.
일단 모카포트가 만든 커피의 유일한 단점을 극복하는 일부터 했다. 사실 모카포트는 기술적으로만 봤을 때 에스프레소가 아니다. 대기압인 1바 보다 약간 높은 1.5~2바의 압력으로 커피를 만드는 '가압식 추출 방식'이다 보니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완벽한 압력인 8~10바엔 그 맛이 턱없이 모자란 듯 느껴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모카포트에서 만든 커피를 에스프레소라 생각하는 건 레나토의 천재적인 마케팅 덕이다.
블루바틀커피의 작가인 제시 워시번도 "모카포트의 물은 가장 낮은 챔버에서 끓고 증기의 형태로 필터를 통해 통해 위로 올라온다"며 "(여기서 추출되는 커피는) 점성이 있고 강하다(viscous and strong)"고 뉴욕타임스에 말한다.
그는 '에스프레소를 바에서 마시는 경험을 집에서도(in casa un Espresso Come al Bar)'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마케팅을 진행했다.
모카포트를, 그리고 비알레띠(Bialetti)를 세계적 브랜드로 만든 건 또 있었다.
레나토의 친구이자 만화가인 폴 캄파니는 레나토의 모습을 투영해 '콧수염을 기른 작은 남자(l'Omino con i baffi)'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모든 모카포트 측면에 인쇄된 이 콧수염 남자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마음과 가정에 여전히 남아 있는 아이콘이 됐고 이후 알폰소의 발명품만큼이나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덕분에 콧수염 사나이는 비알레띠라를 상징하며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2016년 이탈리아 북부 까살레 꼬르테 쎄로 교구에선 레나토의 장례 미사가 열렸다.
장례 미사엔 거대한 모카포트가 관을 대신했다.
피에트로 세가토 신부는 레나토의 유해가 담긴 모카포트를 앞에 두고 미사를 치렀다.
모카포트 사랑이 남달랐던 레나토는 자신의 유언장에 이런 내용을 남겼다.
"자신의 유해는 비알레띠 모카포트에 담아달라"는(커피부록(16) 참조).
그렇게 커피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모카포트는 레나토와 함께 이탈리아 사람들의 정서가 됐고 문화가 됐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 모카포트로 내린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비알레띠 매장에 들어가면 된다.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주요 관광명소에 가면 늘 만날 수 있다.
밀라노 두오모 광장, 피렌체 레푸블리카 광장과 시에나 캄포 광장을 가는 길에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영업시간만 지킨다면.
매장에선 다양한 종류, 다양한 크기, 다양한 디자인의 모카포트를 만날 수 있고 모카포트 사용법도 알려준다.
모카포트 시연과 함께 공짜커피까지 마실 수 있다. 바로 내린 커피를 마실 수 있으니 얼마나 멋진 일인지.
밀라도 두오모 광장의 비알레띠 매장에서도 직원이 한참 스토브 위에 다양한 크기의 모카포트를 올리고 커피를 추출하고 있었다. 다가가자 "어려울 건 없다"며 사용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일단 하단 팔각형 챔버에 물을 붓는다. 이때 물은 스팀 밸브 아래까지만 부어줘야 한다. 찬물도 좋지만 이왕이면 끓인 물을 넣는 게 좋다. 그다음 여과 필터를 얹은 뒤 분쇄된 커피를 넣는다.
직원은 "에스프레소 기계처럼 탬핑할 필요 없이 숟가락으로 툭툭 원두를 담아주면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팔각 냄비 형태의 상단 바스킷을 고정시킨 뒤 불 위에 올려주면 된다.
잠시 후 증기는 하단 챔버의 물을 커피 가루를 지나쳐 튜브를 타고 올라 상단 챔버를 채우도록 밀어 올린다. '쉭쉭' 소리와 함께 튜브로 커피가 나오기 시작하면 끝이다.
물론 방법이 아주 쉬운 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불 조절이다.
유념해야 할 건 모카포트 자체를 불 위에 오래 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커피가 다 추출됐다면 모카포트에서 커피를 빨리 따르는 게 좋다. 하단 챔버를 차가운 물에 담가 식히는 방법도 있다. 그래야 커피가 타지 않는다.
이것도 어렵다면 더 쉬운 방법도 있다.
2014년 피렌체의 비알레띠 매장에서 구매한 모카포트는 더 이상 불조절 실패로 낭패를 경험하지 않게 했다.
대신 전기 코드를 꽂으면 된다. 가장 기본 사이즈인 이 전기 포트의 사용법은 간단하다.
별도의 조작 버튼 없이 똑같이 물을 붓고 커피를 담은 뒤 조립하는 셋팅 과정을 거치고 전원 코드만 콘센트에 꽂으면 된다. 물을 가열하는 게 전기니 탈 걱정이 없다.
용량이 큰 전기 모카포트는 예약도 가능하다.
모카포트 구매 방법은 많다.
비알레티 매장을 찾아가도 되지만, 이케아나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도 만날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에 가면 모조품이 넘쳐난다.
원두의 굵기나 원두 종류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다.
제시 워시번은 "초콜릿과 구운 견과류 향이 가득한 중간에서 진한 로스트 커피가 모카포트에서 잘 표현된다. 이탈리아에서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프로필에 가장 가깝다"라고 뉴욕타임스에 제안했다.
원두의 굵기는 과립 설탕보다 좀 더 굵고 거친 질감이 좋으며 우유 등과 타서 먹으면 맛이 배가된다는 요청도 했다.
매장 직원에게 하나 더 질문했다. 사용 후 처리다. 직원은 간단하게 답했다.
"세제는 사용하지 마세요. 그냥 따뜻한 물로 헹구는 게 좋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멍이 많은 알루미늄 특성에 따라 커피 향을 흡수하기 때문에 커피 맛을 배가시킨다는 설명도 더했다.
그럼에도 깨끗하게 닦고 싶다면, 커피 제거 전문 세척제를 제안했다.
주의 깊게 세척하거나 교체할 부품도 있다. 일단 상단 챔버 아랫 면의 금속 필터와 고무 세척은 확실하게 해야 한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챔버와 분리해서 칫솔 등을 이용해 세척제로 닦으면 좋다. 세척 후엔 흡수성이 좋은 천으로 물기를 닦아 내는 것도 중요하다.
잘 닦는다고 해도 1년에 한 번씩 교체하는 게 좋다.
다만 모카포트의 크기에 따라 필터와 고무의 사이즈는 달라 그에 맞게 구매해야 한다. 피렌체 여행 당시 베네치아에 거주하던 한국인에게 들은 꿀팁이 있다. 매장에 가기 전 필터를 명함 위에 두고 사진을 찍어 직원에게 보여주면 사이즈를 판단해서 준다는 팁이다.
사용법을 알려주던 매장 직원이 모카포트에서 막 추출한 커피를 종이컵에 부어 건넨다.
'공짜' 커피.
유명 패션브랜드 돌체앤가바나와 협업해 디자인한 화려한 색상과 패턴의 대형 모카포트들, 커피 원두들, 종류도 크기도 다양한 모카포트들이 진열된 매장 안에서 맛보는 공짜 모카포트 커피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을 뽐낸다.
제시 워시번이 떠올린 뉴욕의 할머니 집에서의 어릴 적 추억은 왜 모카포트가 이탈리아의 정서가 됐는지를 가장 그럴듯하게 설명해 준다.
"커피를 처음 마시기 시작하면서 모카포트는 첫 번째 커피 기구였다... 할머니가 약간의 우유를 데우는 동안 (모카포트 속) 커피는 '쉭쉭' 소리를 내며 졸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