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부록(23)#이탈리아 ‘일부’ 카페
고정관념과 편견이라는 단어 사이엔 미묘한 긴장감이 있다. ‘좋고’ ‘나쁨’이 배제된 중립어 고정관념은 그 균형이 깨질 때 편견이 생기니 말이다.
‘밀라노’라는 도시가 그런 곳이었다.
패션과 명품의 도시라는 고정관념은 ‘패션’과 ‘명품’ 빼고는 볼 게 없다는 편견을 만들었다. 그리고 고정관념의 틀을 깨버리는 순간 편견이 사라지는 걸 경험했다. 그 틀을 깨 준 건 놀랍게도 스타벅스를 ‘커피 제국’으로 이끈 하워드 슐츠였다.
기업의 영업맨으로 일하던 슐츠는 1971년 스타벅스 창업자 제리 볼드윈, 고든 보우커, 지브 시글의 열정을 본 뒤 이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스타벅스에 합류하자마자 향한 곳이 밀라노였다.
이유는 분명했다. 밀라노는 제조업자 루이지 베제라(Luigi Bezzera)가 데시데리오 파보니(Desiderio Pavoni)와 ‘이데알레(Ideale)’라는 이름의 기계를 세상에 내놓은 곳이었다. 이 기계는 1906년 밀라노 세계박람회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그리고 고압에 추출되는 농축된 커피 ‘에스프레소’라는 용어가 붙여졌다(커피부록(16) 참조).
커피의 도시로 입지를 다진 밀라노를 찾는 건 슐츠에게 어쩌면 당연했다. 그리고 밀라노에서 슐츠가 맛본 에스프레소는 미국의 드립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의 세계를 보여줬다. 커피 바에서 에스프레소를 즐기며 대화하는 이탈리아인들의 모습에서 미국에는 없는 카페 문화를 발견했고 지금의 스타벅스를 만들었다.
슐츠의 시선으로 커피를 만나기 위해 찾은 밀라노에서 어느새 새로운 고정관념이 생겼다. 에스프레소의 도시, 커피의 도시.
밀라노 일정의 마지막 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찾은 곳은 어쩌면 밀라노여서 당연히 가야 할 곳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에 영감을 주는 곳,
한국의 광장시장에서도 떠올릴 만큼 시공간을 초월케 하는 곳,
그저 쇼핑 아케이드에 불과한데도 굳이 밀라노 살롱(밀라노 응접실)이라 불리는 곳,
일반적으로 밀라노 갤러리아로 통용되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 II)였다.
밀라노는 이탈리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기념하기 위해 밀라노 대성당이 있는 두오모 광장(Piazza del Duomo)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이 있는 스칼라 광장(Piazza della Scala)을 연결하는 갤러리아 건축을 고민했다. 설계 공모에 나섰고 건축가 주세페 멩고니(Giuseppe Mengoni)가 내놓은 설계 도면이 선택됐다.
1865년 밀라노 시장인 안토니오 베레타 등이 첫 돌을 놓으며 건축은 시작됐다. 갤러리아, 이탈리아 말로 갈레리아(Galleria)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설계의 기본은 아치형 둥근 유리 천장으로 덮인 보행자 길이었다.
길은 이탈리아에선 포르티꼬스(Porticos)라 부르는 문으로 시작됐다.
문을 지나니 길게 뻗은 길이 나타났고 길 양 옆으론 상가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명품 매장은 물론 카페와 식당도 자리했다.
화려한 건축, 대리석 바닥길에 몰려든 사람들 덕에 갑갑함이 느껴질 수도 있을 법한데 기우에 불과했다. 외려 개방감이 느껴졌다. 건축가의 한 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한 수는 고개를 들어 길 위에 있었다. 유리 천장이 걸러낸 햇빛이 환한 빛으로 갤러리아 안을 비추고 있었다. 덕분에 북적이는 길마저 개방감을 느끼게 했다. 고혹적인 내부 장식의 아름다움을 한층 끌어올리는 조명 역할은 덤이었다.
기시감이 느껴졌다. 명품 매장이 있는 세계적인 아케이드에서 서울 종로구 예지동 종로 5가에 위치한 서울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전통 거래 시장인 광장시장이 떠오르니 말이다.
이유를 찾아보니 나름 공통점이 떠올랐다.
길을 사이에 둔 채 양 옆에 마주 보며 늘어선 상가, 커피와 떡볶이를 파는 식당과 카페, 그리고 보행자 편의를 위해 유리와 플라스틱으로 천정을 덮은 아케이드.
광장시장에 이어 줄줄이 그동안 여행지에서 만난 장면들이 떠올랐다.
두바이의 수크 메디나 주메이라, 폴란드 크라쿠프 올드타운에 있는 직물회관 건물 수키엔니체 1층 상점가, 일본 후쿠오카의 동네시장…
국경을 넘나들며 연결된 듯한 이 길을 사람들은 아케이드라 불렀다.
아케이드는 양 쪽에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아치로 둘러싸인 통로를 말한다.
중세시대 상업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던 유럽 도시에선 이 같은 형태의 통로가 곳곳에 만들어졌다.
당시 상인들은 국가의 재산인 도로 쪽으로 매대나 시설물을 놓는 식으로 공유 재산을 침범하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일이 잦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엔 단속을 통해 상업 시설물을 치웠지만, 점차 도로를 점용하는 상황이 심해졌다.
결국 많은 도시들은 새로운 해결책을 찾았다. 아예 상인들이 도로를 점용한 부분에 대해 이용권을 임대해 주는 방식이었다. 1층은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혼용되는 곳이었고 그 위로 사적 공간의 건축물이 올려졌다. 앞서 소개한 크라쿠프의 수키엔니체 상점가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수키엔니체 건물은 13세기 중반 교역을 위해 세워진 건축물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상가 건물이었다.
밀라노 갤러리아보다 한참 만들어졌음에도 아케이드 하면 밀라노 갤러리아가 떠올랐다. 아마도 밀라노 갤러리아가 아케이드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더 놀라운 건 바로 이 ‘지붕이 있는 통로’를 건설할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오모, 마돈니나와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1865년부터 멩고니는 유리와 돌, 철골을 이용해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3층 건축물을 지었다.
하나의 예술품처럼 보이는 건축물 사이로 십자 형태의 길이 만들어졌다. 두오모 광장에서 스칼라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196.6m, 가로로 교차하는 또 다른 길의 길이는 105.1m다. 길의 너비와 높이는 각각 14.5m와 29.2m다.
4개 블록을 가르는 십자형 길 위로는 촘촘한 철제 프레임에 유리로 된 지붕을 얹어 아케이드를 만들었다.
아케이드의 하이라이트는 십자 형태로 뻗은 두 길이 교차되는 지점, 중앙이다.
교차되는 길과 건물의 모퉁이 면이 더해지면서 중앙은 팔각의 면을 만든다. 유럽에서 팔각형은 의미 있는 도형이다. 기사단을 상징하는 기하학적 모양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그 아케이드가 교차되는 중앙에 높이 47m, 직경 37.5m 유리 돔이 있다. 햇빛이 들어오고 구름이 오가며 조명이 되는 유리 아케이드는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품이 된다.
건축물과 길 위에도 의미를 담은 예술 작품이 곳곳에 담겼다. 유리 돔 아래 루네트(lunette)엔 4대륙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여신들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루네트는 프랑스어로 '작은달'이라는 뜻의 뤼네트에서 가져온 말이다. 서양 건축에 쓰이는 반달 모양의 벽면 공간을 말한다.
루네트에 그려진 여신들은 각자의 대륙 원주민들과 함께 대륙이 위치한 뱡향을 바라보고 있다.
여신들의 모습은 농경, 공업, 과학, 예술 등 인간의 네 가지 활동 분야를 상징하고 있다.
유리 돔 아래 아케이드 정중앙 바닥엔 팔각형 대리석 모자이크 타일이 있다. 피렌체의 백합, 로마의 늑대, 밀라노의 십자가, 토리노의 황소 등 이탈리아 4개 주요 도시 문양이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타일이 보인다.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별자리 12궁도 중 황소자리이자 토리노를 뜻하는 황소 타일이다.
유독 움푹하게 패인 곳이 보인다. 발뒤꿈치를 대고 한 바퀴 돌면 소원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많은 이들의 발길이 거쳐가면서 파였다는 이곳은 원래 황소의 성기를 표현했다고 한다.
밀라노 사람과 토리노 사람이 항상 사이가 좋지 않아 황소의 중요한 부분을 파괴해야 해서 움푹 파이게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도 했다.
이렇게 지어진 갤러리아는 19세기 쇼핑 갤러리의 원형이 됐고 철로 만든 유럽 건축물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됐다.
단순히 명품 쇼핑숍이 늘어선 곳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역사와 함께 현재도 이어가는 장소다. 150년 이상 된 카페 비피(Biffi Caffe)가 여전히 손님을 맞고 있는가 하면 세계 최초의 7성급 호텔 타운하우스(Town house)에선 투숙객이 머물다 간다.
매년 4월이면 밀라노 국제견본무역박람회가 열리기도 한다.
참고로 갤러리아에 담긴 슬픈 이야기도 있다.
1877년 12월 30일 완공 기념식을 앞두고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이다. 갤러리아를 지은 멩고니는 기념식 전날 마지막 점검을 위해 현장을 둘러보던 중 건설 등 산업현장에서 쓰이는 가설 발판인 비계(飛階)에서 떨어져 생을 마감했다. 지금도 완공 기념비엔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밀라노 일정의 마무리를 밀라노의 중심으로 꼽히는 두오모 광장으로 잡은 건 어쩌면 가장 밀라노스러운 결정이었다. 광장에서 갤러리아로 들어가는 길 초입, 포르티꼬스 왼쪽 편에 자리한 카페로 주저 없이 들어갔다.
일정 내내 두오모 광장에 와서 갤러리아를 오갈 때면 고혹적인 인테리어가 눈길을 잡은 곳이었다.
밀라노 일정의 마지막 날 식사와 커피를 해결하기 위해 찾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곳에서 커피를 위해 점심을 포기했다.
'융통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직원들의 원칙 덕이었다.
카페 직원은 점심을 먹으려면 테이블에 앉아야 하지만, 식사와 함께 커피는 주문할 수 없다고 했다.
"테이블에선 커피를 마실 수 없습니다. 커피는 식사를 마치고 난 뒤 바에서 마시면 됩니다."
완고한 직원의 태도에 친절한 미소가 더해지지 않았다면 오해할 뻔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게 이탈리아에 오면 지켜야 할 커피에 대한 원칙이었다.
이탈리아 월간지 ‘원티드인롬(Wanted in Rome)’의 기사를 빌어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마실 때 해서는 안 될 행동에 대한 원칙을 소개하면,
“오전 11시 이후에는 카푸치노를 주문하지 마세요. 커피는 바에 서서 마시는 게 정상이고, 테이크아웃 컵은 요청하지 마세요... "(커피부록(15) 참조).
이탈리아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그들의 철학을 존중하는 게 여행자의 자세라 생각했다.
원칙을 고수하는 자세마저도 매력으로 다가오는 이곳, 카페 캄파리노(Caffè Camparino)였다.
이 카페는 영국 런던 캠던타운의 빅토리안 시대 철도 차고지였다가 지금은 공연장이 된 라운드하우스(Roundhouse)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세계 50대 최고의 바 중 27위를 차지한 곳이다.
27위 영광을 준 타이틀에서 눈치챘겠지만, 이곳은 커피보다 술로 유명한 곳이다.
이탈리아에선 식전주 '아페리티프'하면 떠올리는 유명 주류 브랜드이자 한국에서도 술을 아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캄파리(Campari)'와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카페의 역사를 설명하려면 캄파리를 생산하는 캄파리 그룹의 역사부터 훑어봐야 한다.
이탈리아 내에서 가장 큰 주류업체이며, 전 세계에서 6번째로 큰 다국적 주류 기업집단인 캄파리 그룹은 가스파레 캄파리(Gaspare Campari)가 세웠다.
이탈리아 카스텔노보에서 농부의 열 번째 아이로 태어난 가스파레는 14세 때부터 마을의 바에서 음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1860년 식전주를 만들어 팔았다. 바로 캄파리다.
허브와 향신료, 나무껍질과 과일 등 60가지 이상의 천연 재료를 우려낸 물과 알코올을 섞어 만든 이 술은 쓴 맛이 나며 어두운 빨간색이 특징이다.
1862년 가스파레는 재혼과 함께 두 번째 아내의 집이 있는 밀라노에 정착해 밀라노 대성당 앞에 카페 캄파리의 문을 열었다.
카페 캄파리노는 1915년 가스파레의 두 아들 중 한 명인 다비데 캄파리가 세웠다.
다비데는 고인이 된 아버지의 카페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밀라노 갤러리아에 캄파리노라는 바를 만들었다.
카페 캄파리노는 지하 저장고에 직접 소다수를 공급하는 혁신적인 시스템을 갖춰 수많은 고객에게 차갑게 유지된 캄파리와 소다를 제공했다.
또 하나 이 카페가 술과 함께 유명한 게 있다면, 바로 인테리어였다. 유명 이탈리아 예술가와 장인이 아르누보 스타일의 가구를 만들어 제공했다.
유명한 캐비닛 제작자 유제니오 콰르티, 대장장이 알레산드로 마주코텔리, 그리고 화가 안젤로 단드레아의 작품이 내부를 장식했다.
맛과 아름다움을 갖춘 공간은 밀라노식 식전주를 위한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2차 대전 후 굴리엘모 미아니에게 사업을 넘긴 뒤 잠시 다른 이름을 가졌던 카페는 2012년 1월부터 지금의 이름 카페 캄페리노로 간판을 달게 됐다.
2019년엔 캄파리노 10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도 실현했다. 몇 달 동안 문을 닫은 카페는 과거 아르누보 스타일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그런 곳에 들어가 식사를 주문했고 당당히 거절당했어도 아쉬울 게 없었다. 커피에 대한 원칙을 지킨다는 점에서 기분 좋은 '거절당함'이었다.
대신 식당보다 더 북적이는 바에 서서 커피를 주문했다. 식전주 아페리티프를 마시기 위해 아페리티프를 대표하는 술 캄파리를 마시기 위해 이곳을 찾으니 사람이 많은 건 당연했다.
그런 곳에서 당당히 주문한 커피는 밀라노에서 시작된 에스프레소와 밀라노에 오면 마셔야 할 커피 마로키노였다(커피부록(22) 참조).
하얀 재킷의 수트 차림인 바텐더이자 바리스타가 신중한 표정으로 커피를 내려주기 시작했다. 실망을 주지 않는 커피 맛이었다.
뜻밖의 보너스도 경험했다. 바 테이블에 올려진 디저트 그릇엔 올리브와 나초칩이 담겨 기본안주로 제공되고 있었다. 빵 접시엔 한 입 크기의 종류별 페이스트리가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타지나라 알려진 작은 컵에 에스프레소 한 잔이나 술잔을 들고 바에 서서 맛있는 이탈리안 페이스트리를 곁들여 먹는 트리에스테 방식이다.
가격은 '무료'. 공짜 페이스트리 덕에 점심은 굳이 먹을 필요가 없었다.
미국의 배우 조니 뎁은 2005년 기이하면서도 신박한 인물 캐릭터를 영화 속에서 창조했다. 바로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 속 공장 주인 웡카였다.
조니 뎁이 창조한 웡카의 강렬한 이미지가 만들어진 건 꽤 오래전부터다.
1964년 영국의 작가 로알드 달의 아동 문학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부터다. 1972년 속편 '찰리와 거대한 유리 엘리베이터'에 웡카는 또다시 나왔다. 웡카 초콜릿 컴퍼니의 괴짜 소유자인 그는 이후 영상으로 대중과 만남을 가졌다.
1971년 영화 '초콜릿 천국'에서 진 와일더가 웡카를 연기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다음에 나온 게 조니 뎁의 웡카였다.
더 이상의 웡카는 없을 거라 여기던 때 새로운 윌리 웡카가 나타났다. 조니 뎁의 어린 시절 버전이라 볼 수 있는 영화 '웡카'였다.
이 영화는 커피 컨셉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왔을 때 한창 상영 중이었다.
새로운 버전의 웡카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조니 뎁이 만든 웡카의 이미지가 워낙 매력적이었던 데다, 커피만큼 좋아하는 초콜릿 이야기니 영화관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티모시 살라메의 웡카를 만난 그곳에서, 오스트리아 밀라노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를 마주했다.
웡카가 초콜릿 매장을 만든 쇼핑몰은 밀라노 갤러리아에서 영감을 받아 구현됐다. 맛을 극대화하는 공간의 힘을 밀라노 갤러리아와 영화 '웡카'가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