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전 땡기는 날

08 장미정원

by 늘품이

여자의 요청에 항구 쪽에 잠시 차를 세웠다.


"잠시 대기하고 있어."


"어디 가는데요?"


내가 자기 기사라도 되는 냥, 지시만 하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나는 차에서 내려 담배 한 대를 태우며 기다리기로 했다.


곳곳에 낙서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예전에는 관광객이 많았다더니 영광의 상처인 듯했다. 흔적 남기기, 사람 이름, 사랑의 맹세 등 가지각색이었다. 그 흔적들 중에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속지포구'라는 글자였다. 이곳의 명칭인 듯했으며 제일 많이 낙서되어 있었다.

길 건너편에 지우네 식당이 보였다. 여전히 가게 안은 비어 있었고, 주인은 가게 앞 테이블에 앉아서 쪽파 같은 것을 다듬고 있었다. 오늘도 대부분의 가게들은 문을 열지 않았고 거리 역시 한산했다. 다 떠난 두수 싶은데 지우네는 왜 남아 있을까, 손님이 있긴 있는 것일까.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 음식 준비 할 맛이 날까.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져 있을 때 여자가 돌아왔다. 뭔가 잔뜩 사 온 듯했다.


어느덧 흐르고 있던 하루는 막바지에 이르는 듯했다. 나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가기 위해 서둘렀다.


"뭘 그렇게 많이 샀어요?"


"머 이것저것, 여기 마을이 작아 보여도 은근히 없는 게 없어!"


"옛날엔 동네가 화려했나 봐요. 아까 거기 항구 쪽에도 사람들 낙서 엄청 많더라고요. '속지포구'라고 쓰인 낙서가 많던데 여기 동네 이름인가 봐요."


"속지 포구가 아니라, 소지 포구. 거기 포구 이름이야!"


"항구 이름이었구나."


"어머! 지원아! 항구가 아니라 포구! 그래서 소지 포구, 언더 스탠?"


"항구.... 랑 포구가 뭐가 다른 건데요?"


기본 상식이 없는 사람처럼 무지한 취급을 당했다.


"항구는 큰 거! 포구는 작은 거!"


"뭐야, 자기도 정확히 모르면서!"


"맞다니깐, 나중에 핸드폰으로 검색해 봐. 이런 건 아주 기본 상식이니깐!"


"그런데 여태 내가 항구라고 할 땐 왜 가만히 있었어요?"


"아닌데! 난 항구란 말 들은 적이 없는데! 들었으면 알려줬을 텐데!"


"거짓말! 그리고 여기 첨 왔다면서 소지 포구라는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요? 나도 정확히 아는 게 아니라 반박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그다지 그 지식에 신뢰가 가는 건 아니에요. "


"무식한 건 죄가 아니야! 푸하하하."


더 이상 상대하면 안 될 것 같아 운전에만 집중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슬슬 열이 올라왔다.


"언니가 아까 만물상 간 거였거든. 거기 사장님이 말씀이 무진장 많더라고. 물건 하나 고를 때마다, 한 열 마디를 하네. 거기서 들었어."


난 여전히 앞만 보고 달렸다.


내가 뿔이 난 게 신경 쓰였는지 대꾸도 없는 나에게 만물상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풀어냈다.


******


그곳의 이름은 소지 포구,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고 한다.


낚싯배 손님들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러던 중 한 선주가 방송에 나오면서 갑자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했다. 그때부터 배들도 늘어나고, 새로운 가게들도 생겨나고 포구는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 때, 어느 날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고 만다. 주꾸미 낚시 시즌이 시작될 무렵, 선주들은 조합을 만들어 함께 운영하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렇게 선불 예약금만 9천만 원이 넘었다고 한다. 그 돈을 어떤 한 선주가 들고 도망을 간 것이었다. 현재까지도 그 선주는 잡지 못했으며 변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그 후로 사람들은 [속지마포구]라고 불러댔으며, 그것이 지금은 '소지포구'라는 이름을 조롱하듯 '속지포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변상을 요구하는 시위가 한동안 이어졌고, 아마도 내가 보았던 낙서들은 그때 생긴 것들인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시위하던 사람들마저 발길을 끊겼고 이렇게 잠들어 버린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넘어간 뒤였다. 여자가 만들어 준 샤워장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날이 어둑어둑 해지니, 허술한 간이 샤워장이라고 해도 충분했다. 샤워 후엔 의자에 앉아 담배를 태운다. 온몸의 긴장이 싸악 풀리면서 몸이 늘어진다.


"로티야! 나 원래 이러려고 온 건데, 뭔가 잘 못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지?"


담배만 피우다가 죽겠다고 했으나, 요즘 바빠서 하루에 몇 대 피우지도 못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저 여자는 저 어두운 마당에서 열심히 노동 중이었다. 눈 마주치면 또 무언가 내게 요구할 것 같아 모르는 척, 무엇을 하는지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지원아! 오늘 구름 잔뜩 껴서 별도 얼마 안 보이는데 거기서 뭐 하니? 그러지 말고 이리로 와볼래?"


눈을 감아 버렸다. 잠든 척, 가만히 있었다.


"안 자는 거 아니깐 이리로 와봐. 내일 무사히 텐트에서 아침을 맞고 싶으면 빨리 오는 게 좋을 거야. "


치사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 쪽으로 나가 볼 수밖에 없었다.


"짜잔! 어때? 장난 아니지? 너무 멋있지 않아?"


지붕 처마 끝을 따라서 꼬마전구가 빙 둘러진 채로 불이 들어왔다. 색다를 게 없는 이 작은 전구가 분위기를 일순간에 바꿔 놓았다.


"우와."


마루에 걸터앉아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불빛만 바라보았다. 하늘의 별들이 이곳에 잠시 내려온 듯했다.


"이거 사러 간 거였군요. 언제 이렇게 다 했대요. 보고 있으니 분위기는 좋은데, 피곤하지도 않아요?"


"피곤하지. 나도 너처럼 씻고 그냥 푹 쉬고 싶지."


무언의 압박으로 나를 힐끗 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지."


순간 가슴이 덜컹했다. 오밤중에 혼자서 울던 여자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시간이 별로 없다'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두고 한 말일까.


"시간이 없다니...... 무슨 뜻이에요?"


"내가 너한테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언제부터 할 말 안 할 말 가렸다고 그래요!"


여자는 머뭇거렸다.


"사실...... 지금 가진 돈으로는 며칠 못 버텨."


"네?"


"돈 벌 궁리를 하는 거라고 나 나름대로! 거지꼴로 쫓겨난 너한테 손 벌릴 수도 없고. 그래도 내가 언니니깐 , 그래도 너보단 나으니깐! 뭐라도 할 준비를 하는 거야!"


"아......"


설명할 수 없는 배신감이 들었다.


"아니...... 뭐 그런 얘기를 그렇게 사연 있는 것처럼 분위기 잡고 어렵게 해요?"


"당연히 어렵지. 분명히 내가 제법 리치언니처럼 보였을 텐데, 돈 얘기가 어디 쉽니?"


"왜 리치해 보일걸라고 생각했어요?"


"왜라니? 집주인에다가 원래 부티라는 게 타고나는 그런 게 있어. 아후라 그런 게 좀 있거든. 실제로 원래 좀 부자였고.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만......."


차라리 시답잖은 이유라 다행이었고, 이런 것도 안도감이라고 긴장이 풀리 듯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래서 저 전구랑 돈을 버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건데요?"


"가진 거라곤 여기 이 집뿐이니깐, 약간의 리모델링을 하고 힐링 홈 같은 콘셉트로 심리 상담도 해주고....."


"심리학 전공했어요? 정신의학과?"


"아니......"


"라이선스는?"


"상담사...., 있지......"


이건 또 무슨 말일까! 말끝이 자신 없어 보였다. 여자는 소심하게 우물쭈물 거리며 나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흠...... 돈 벌어본 적 있어요?"


"야! 날 뭘로 보고!"


"남의 돈을 받으려면 공급이 명확해야죠. 그렇게 두리뭉실하게 하다가 사기로 잡혀가기 딱 좋겠네요!"


"너 말이 좀 심하다..... 심리 상담 빼고 힐링 명상...... "


역시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한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이렇다 할 어떤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어쩌면 본인도 알고 있지만 무턱대고 일단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저지른 것 같았다. 신나던 얼굴이 금세 풀이 죽어 시무룩하게 변하는 표정을 보니, 나와 상관도 없는데 김새게 만든 것 같아 조금 신경이 쓰였다.


"아니 뭐, 그래요. 굳이 상담 같은 거 아니면 크게 문제 될 건 없긴 하겠어요. 그런데 누가 심리상담하러, ㅁ 아니 힐링하러 여기까지 와요? 이렇게 외딴곳에."


"오게 해야지! 요즘은 SNS에서 제대로 한 번 뜨면 땅끝 마을까지 찾아가고 그러잖아!"


"그건......! SNS 하세요?"


"아니...... 넌?"


진지하게 거취 문제에 대해 다시 고민을 해봐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진작에 떠나는 게 맞았다. 사기로 시작된 곳에서 대청마루의 액자 같은 저 산이 너무 아름다워 너무 주춤거렸던 것 같다. 결여된 결단력의 결과인 듯했다.


"제가 핸드폰 보는 거 봤어요?"


"그러게, 넌 핸드폰 안 들고 다니더라. 없어?"


"차에 있어요. 배터리 충전기를 안 가져와서."


"세상에! 너도 정말 희귀 종자구나. 충전기 빌려줄게. 넌 그른 거 있으면 진즉에 말을 하지......"


여자는 방으로 들어가 배터리 충전기를 가지고 와 건네주었다.


"빨리 충전해. 오늘 밤부터 SNS 시작하도록 해. 앞으로 우리 힐링 명상소의 마케팅부장이야, 네가!"


풀 죽은 모습이 측은하여 몇 마디 맞장구쳤더니 동참의 뜻으로 착각을 한 것 같았다.


"일단 전 자도록 하겠어요. 생각 좀 다듬어야 할 것 같아요."


급격히 몰려오는 피로감에 나는 자리를 옮겼다. 로티를 데리고 텐트로 들어가 잠자리를 준비했다. 내일 일단 충전을 하고 다른 거처를 찾기로 결심했다.


이곳을 떠난다.


******


며칠간 지속된 노동 때문이었는지 잠을 깨도 쉬이 일어나지 못했다. 최근 며칠간 움직인 운동량이 이전 몇 달 치보다 많으리라. 온몸이 뻐근하고 무거웠다. 어두운 걸 보니 날씨가 궂어 몸이 더 불편한 듯했다.


슬슬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텐트 밖에서 어슬렁 거리는 여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정말 부지런도 하다!'


여자의 움직임이 텐트 입구 앞에서 멈추었다.


'설마.... 설마.....'


"지원아......! 아직 자?"


체념에 가까운 몸 짓으로 입구 지퍼를 열었다.


"앗! 지원이 일어났구나!"


나는 별다른 인사 없이 마루로 나와 산을 바라보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처마 밑으로 빗물이 톡톡톡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여자는 말을 숨기고 기둥에 등을 기댄 채 앉아서 나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그러나 절대 마주쳐 주지 않고 투명인간 대하듯 외면했다. 여자는 나와 시선을 맞추려고 노력하다가 포기했는지 이내 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요하지 않으려 애써 외면하고 그저 젖어가는 산을 바라보며 스트레칭을 이어 갔다. 스트레칭하며 슬쩍 보면 여자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멍하니 초점이 없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원래 나의 반응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던 사람이,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자꾸 신경 쓰이게 하는 피곤한 타입이었다. 슬쩍 보면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울어요?"


"왜 시간이 약이란 말이 있잖아. 그런데 그리움이 영원하다면 시간도 해결해주지 못하겠지? 영원이란 것에 시간은 아무런 힘이 없겠지?"


그리움이 영원이라니! 비 내리는 날에 갖다 쓸 수 있는 궁상의 소재는 전부 가져온 듯했다. 궁상스러웠지만 가슴이 철컹했다.


'영원한 그리움이라니......"


여자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여자의 울음은 점점 고조되더니 이전의 그날 밤처럼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기묘했다. 이 여자에겐 이 순간에 이 공간엔 내가 없는 것 같았다. 여자는 쏟아지는 비만큼 울었으며 , 난 여자와 다른 공간에 있지만 여자의 울음이 내게 동기화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나 역시 실컷 울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하지 못하는 통곡을 덕분에 하고 있다.


*******


얼마쯤 지났을까, 비도 그쳤고 여자의 울음도 멈췄다. 여자는 산을 향해 옆으로 누운 채 잠이 들었는지 움직임이 없었다.


처음으로 여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무슨 애절한 사연이 있길래 비만 오면 저렇게 서럽게 우는 것일까.


마치 부모 잃은 아이가 엄마, 아빠를 찾아다니며 우는 모습처럼 애처로웠다. 여자의 등을 바로 보며 옆에 가만히 누워본다. 나는 여자가 깰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미련 남은 수분들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고 솔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여자의 눈물이 마를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지원아......"


움직임 없이 여자가 나를 불렀다.


"깼어요?"


"나 잠들었어?"


"잠든 거 아니었어요? 아무런 움직임이 없길래......"


"나 파전 먹고 싶어."


다행이다 싶었다.


"파전을 어떻게 해야 먹을 수 있을까요?"


"이모님한테 말해볼까?"


"같이...... 갈까요?"


여자와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세수를 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속을 한 번 게워 낸 것처럼 시원했다.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