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장미정원
여자의 차를 타고 집을 나섰다. 첫날 어둠 속에서 달리던 길의 느낌과는 완전히 달랐다. 좁은 외길의 담벼락은 넝쿨들이 담을 타고 땅까지 내려와 제법 운치 있어 보였다.
여자의 차는 지프트럭 같은 차종이었는데 생긴 것만큼이나 운전할 때도 배려가 없었다. 비포장 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바람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외길을 나와 도로를 조금 달리자 바다가 보였다. 그때 어촌 냄새를 맡았던 것이 틀렸던 게 아니었다. 항구 쪽에 차를 세우고 여자를 따라 어느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이모님! 저희 구이정식 2개 주세요."
그러자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는 곳이에요?"
"아, 아니! 나도 처음이야."
"아..... 너무 익숙해 보여서 단골집인 줄 알았어요."
"어딜 가도 단골처럼! 그래야 반찬이라도 하나 더 주지."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는 오래된 가게였다. 테이블 모서리가 세월에 닳아 매끈했다. 나무로 된 큰 창문 밖으로 항구가 보였다. 정박해 있는 배는 두어 척뿐이었고,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멈춰 있는 사진 같은 마을이었다. 창틀이 영락없는 액자 프레임 같았다.
"여름에는 고기잡이 안 하나 봐요. 내가 예상했던 항구 모습이 아니네요."
"저건 고깃배가 아니라 낚싯배야. 손님 태우고 바다 나가는, 바다낚시 몰라?"
"아, 바다낚시...... 낚시 좋아하세요?"
"아니, 한 번도 안 해봤어."
"근데, 어떻게 알아요?"
"뭐 꼭 해봐야 아니!"
표정을 보아하니 믿을 만한 정보는 아닌 듯했다.
마침 음식들이 나왔다. 생선구이와 된장찌개, 그리고 밑반찬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밑반찬만 10가지는 넘어 보였다. 노동의 후유증일까, 상차림의 정성일까! 식욕이라는 것에 턱관절이 반응을 보였다.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 이 순간이 잠시 행복하다고 느껴졌다. 주인은 무심히 빈 반찬 접시를 바로바로 채워 주었다.
"고맙습니다. 집밥 먹는 기분이에요."
주인은 살짝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예순은 족히 넘어 보였고, 주름은 많지 않았지만 깊고 짙었다. 여자는 말없이 주인을 바라보며 엄지를 내보여줬다. 주인은 고개를 끄떡이며 가게 입구 쪽에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바깥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자기야, 집밥이라고 다 맛있는 건 아니야! 너네 집밥 맛있었니? 엄마가 음식 솜씨가 좋았나 봐?"
"그냥, 뭐..... 집밥이 주는 그런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 표현이죠."
"난 크면서 집밥을 못 먹어 그런지, 그런 이미지를 잘 몰라.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기억에 없어. 아빠랑 늘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녔던 기억은 있지! 그래서 어딜 가나 단골처럼 익숙해."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어 잠시 여자를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 지금 속으로 리액션 어떻게 해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지? 우리 나이에 엄마가 없는 게 뭐, 막, 그런 거 아니잖아? 그렇다고 슬픈 유년시절을 보냈거나 그런 거 아니니깐 애처롭게 보지 않아도 돼!"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언짢았다.
"아니에요. 이모님 보고 있었어요. 누굴 저렇게 기다리나 싶어서!"
마침 가게 주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모님! 콩나물 조금만 더 주실 수 있을까요?"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주방 쪽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이유 없이 나를 보며 웃어댔다.
"뭐야! 크크크. 은근 센스 있어!"
나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깔깔깔 웃더니 웃음을 머금은 채로 계속 밥을 먹었다. 결국 이래저래 속내를 들켜 버린 기분이었다.
"저도 할머니 밥 먹고 컸어요.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아빠랑 할머니랑 고모랑 살았어요. 기억 이전에 이혼하신 터라 저도 없어요, 엄마 기억."
나도 잘 알고 있다. 듣는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다지 애처로운 사연이 아니라, 그냥 인생 역사의 한 부분이었다. 기억이 없으니 그리움도 없었다. 그럼에도 안타까워해주는 이들에게 성의껏 반응해 주는 것은 성가신 일이었다.
여자는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수저를 탁 내려놓았다.
"어머! 웬일이야! 평행이론이야? 너 이름이 뭐니?"
"네? 갑자기 무슨......"
"그러고 보니깐 통성명도 안 했어! 우리 친하게 지내자. 이름이 뭐야? 응?"
"염...... 지원이에요. 근데 난 친해질 생각은 없어요."
"난 황성정이라고 해. 앞으로 그냥 언니라고 불러도 돼!."
난 잠시 여자를 바라보았다. 무례한 게 유행인 시대인 것 같았다. 편의를 제공해 준 덕분에 그려려니 하고 있지만 슬슬 불쾌해지고 있었다.
"왜? 언니 같지 않아? 너랑 동년배로 보이겠지만 동안이라 그래. 이따 집에 가서 민증 까줄게!"
기차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난 그냥 별 대꾸 없이 밥을 마저 먹었다. 어느 누가 봐도 나보다 10살 이상은 많아 보이는데 무슨 농담을 저런 식으로 하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언니라니! 있던 인간관계마저 끊은 판에 무슨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고,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지원아! 난 너가 마음에 들 것 같아! 난 너와 있으면 더 관대한 사람이 될 것 같아."
"무슨 의미예요?"
"사람은 본디 자기보다 부족한 사람에게는 관대하니깐!"
"뭐라고요?"
어떤 점에서 나의 부족함을 그렇게 강렬하게 느꼈는지 따지고 싶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하기에 좋은 외모야, 넌!."
"전, 다 먹었어요. 아직 멀었나요?"
"넌, 완벽하다. 완벽하게 결핍된 것들이 많아! 내 스타일이야."
"저기요! 먼저 일어날게요."
무시해야 했는데, 마치 나를 자극하듯 슬슬 약 올리는 것 같아 정색하며 말했다.
"설마, 속도 좁아?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못 쓰는데....."
분명히 정상인 사람은 아닐 것이다. 행복한 밥상의 음식들이 불쾌함으로 상해 버린 기분이었다. 속도 안 좋고 머리에서 열이 조금 나는 것 같았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 중에 가장 이상한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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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바라보는 가게의 모습은 또 달랐다. 가게 안은 오래되어 푸근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면 외관은 낡고 색이 바랜 고장 난 목각집 같았다. 태풍도 몇 번 맞았을까? 성한 데가 없었다.
간판도 풍파의 흔적을 고대로 안고 있었다. 삐뚤어진 간판엔 [지우네 새선구이]라고 되어 있었다. 받침이 사라져 있었다. 그나마 "지"라는 글자는 자음과 모음이 색과 재료마저 달랐다.
" 자녀분 이름이 지우인가?"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천천히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이상하리만큼 사람이 안 보였다. 문을 열지 않은 식당과 슈퍼, 상점들.
유령마을처럼 조용했지만, 조용해서 평화로웠다. 고요하고 잔잔했다. 로미와의 시간이 5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이런 곳에서 지낼 것 그랬다.
그 아깝고 소중한 시간, 이렇게 느리게 느리게 보냈을 텐데. 무엇보다 귀하고 귀하게.
식사를 마친 여자가 슬며시 내 옆으로 다가와 나의 산책 속도에 맞춰 함께 걸었다. 나는 알은체 없이 계속 가던 대로 걸었다.
"누구 기다리는 거 아니래."
이것은 또 뭔 헛소리인가 싶은 생각에 여자를 힐끗 보았다.
"이모 말이야! 아까 자기가 그랬잖아. 이모가 앉아 있는 모습 보면서 누굴 기다리는 것 같다고.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내가 대신 물어봤어. 얘기해 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그냥 바다 보는 거래."
정말 내 동생 같았으면 딱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자기 하고 싶대로만 하면서 왜 자꾸 나에게 말을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화도 나지 않았다.
"올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바다 보는 거래. 평생을 바다를 보고 살아서 지긋지긋한데, 가만히 있을 때는 바다르 ㄹ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대. 그래서 그냥 바다를 보는 거래."
불편한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주인의 눈빛이 떠올랐다.
"이미 눈빛에는 기다림도 있고 그리움도 있고, 쓸쓸함도 있었네요. 얘기를 들으니 더 고독해지네요."
"고독해서 인생인데 뭘 그렇게 센티하게 굴어."
시니컬하게 말했지만, 이미 여자는 나보다 더 깊은 센티함에 빠져 주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여자와 나는 한참을 각자의 생각에 빠져 말없이 바닷길을 따라 걸었다.
바람이 없어 파도는 낮았지만 분명히 바다만의 소리가 들려왔다. 바다를 마주하고 있으니, 어린 시절 아빠가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바닷물이 왜 짠 줄 알아요?"
"그거 모르는 사람 있어? 배추도사 무도사가 얘기해 줬는데."
"그럼 왜 파란지 알아요?"
"그건...... 그러게, 왜 파랗지?"
"멍들어서 그렇대요. 언제나 함께 있는 바위와 바다를 질투하던 바람이 파도를 일으켰고, 그때마다 서로 부딪혀서 멍이 든 거래요".
"어머! 무지하게 낭만적이네. 멍이 들어도 함께 해야만 하는 관계란 거지? 가련하다, 정말......"
여자는 전에 컵라면 먹을 때처럼 고독한 눈빛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감성 기복이 이렇게 천하 무쌍인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까 밥 먹으면서 함께 하기에 좋은 외모라는 건 무슨 의미예요?"
"어? 아, 그건....... 내가 아빠 사랑을 엄청 받고 자랐거든. 그래서 난 내가 제일 이쁘고 제일 잘난 줄 알았지. 그런데 세상에 나오니깐 그게 아닌 거야. 그렇다고 기죽긴 싫고. 그래서 그때부턴 내 외모를 조금 받쳐줄 수 있는 친구들하고만 놀았어. 나를 좀 빛나게 해 줄 수 있는 뭐 그런!"
"푸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지한 표정에 잠시 속을 뻔했다. 오랜만에 진심으로 단전에서 올라온 진짜 웃음이었다. 얼마 만에 이렇게 웃어 봤을까! 여자는 왜 이러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유를 모르겠다는 여자의 표정에 또 웃음이 터졌다. 정말 너무 재밌는 코미디 같았다.
내 평생 만나본 사람들 중에서, 과히 제대로 된 진짜 이상한 여자였다.
따뜻하고 맛있는 밥, 이상한 사람과 함께 한 박장대소, 고요한 바다와 노을까지. 모두가 기분 좋은 것들이었다. 중간에 불쾌감에 기분이 상당히 손상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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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무렵 요란한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소나기가 시원시원하게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잠이 들려고 가만히 듣다 보니 다른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이건 무슨 소리지?'
로티를 끌어안았다. 근거리에 있는 짐승의 울음소리 같았다. 아니 귀신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소름이 돋는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빗소리가 잦아들 때쯤, 여자 사람의 울음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설마 하는 마음에 텐트 밖을 내다보니, 마루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집주인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언...... 니?"
나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엄마 잃은 아이처럼 고개를 쳐든 채 엉엉 울고 있었다. 빗소리가 커지면 울음소리도 커졌고, 빗소리가 잦아지면 울음소리도 작아졌다. 빗소리에 맞추어 우는 모습이 청개구리 같았다. 엄마 무덤이 떠내려 갈까 봐 우는!
점점 여자의 울음소리가 빗소리보다 켜졌다. 내가 그 울음소리에 너무 집중하고 있는 것이었다. 빗소리가 아무리 요란스러워도 여자의 서러움은 감춰지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여자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다시 누웠다. 로티의 배를 토닥토닥거렸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가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한동안 나의 웅얼거림과 여자의 울음소리, 빗소리가 기괴하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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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아! 일어나! 읍내 가자!"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이 아침부터 해가 쨍쨍했다. 물을 잔뜩 머금은 수풀들은 기분 좋은 내음을 분사했다. 여자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무렇지 않은 모습에 오히려 어제 내가 본 것이 꿈이었을까 싶었다.
"괜찮아요?"
"너 같으면 괜찮겠니?"
상황 판단을 위해 멀뚱히 언니를 쳐다보았다. 지난 밤 의 일을 내가 눈이 퉁퉁 부은 것 말고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넌 도대체 왜 이렇게 매일 늦게 일어나는 거야? 그렇게 게을러서 밥이나 얻어먹고 살겠니? 너 일어나기 기다리다가 배고파 죽겠어. 빨리 씻고 나가자. 밥 먹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괜찮은 것 확인했으면 됐다 싶어 다시 텐트 안으로 돌아와 누웠다. 할 일이 많든 말든 함께 하고 싶지 않았다.
"지원아! 지원아! 그러지 말고. 얼른 나와봐. 네가 꼭 봐야 할 것이 있어."
매미처럼 텐트 박에서 어찌나 윙윙 거리며 내 이름을 불러대던지, 어쩔 수 없이 마당으로 나왔다.
주인집 여자는 나에게 짜잔! 하면서 뭔가 대단한 것을 자랑하듯 손짓했다.
수돗가에 허접스럽게 가림막을 만들어 놓았다.
"이게..... 뭐예요?"
"샤워하고 싶다며! 별거 아니야."
얼핏 보아도 별거 아닌 걸로 보였다.
"아... 네 군데 다 막혔는데 어떻게 들어가요?"
여자는 몸소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래쪽으로는 무릎 높이 정도는 띄운 채로 얇은 이불로 사면을 둘렀다. 사면만 가려져 있을 뿐 위아래는 뚫린 셈이었다. 언니는 아래 공간으로 기어 들어갔고, 들어가서 일어서면 얼굴이 보였다. 가슴에서 무릎까지만 가려질 정도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불이 부족해서, 중요부위만 가리면 되잖아! 문제 있어?"
"아......"
"언니가 이렇게까지 해준다. 샤워하고 싶을 때 아무 때나 할 수 있게 손 수 이렇게 해주잖니! 나를 지인으로 둔다는 것은 이런 거야! 이런 걸 두고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너의 타고난 복!"
"풋!"
저 근본 없는 유쾌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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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그 항구 쪽으로 왔고 지우네 생선구이집으로 갔다. 같은 메뉴를 시켰는데 밑반찬은 또 새로운 것들이 올라왔다. 여자와 나는 경이로움을 표하며 수저를 들었다. 오늘은 특히 꽈리고추 튀김 무침이 너무 맛있었다. 오늘도 여전히 식당 밖의 풍경은 한산하고 고요했다. 그때 그놈이 스치며 지나갔다.
"어!?"
바로 달려 나갔지만 금세 사라졌다. 유치장 같은 곳에 갇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나는 다시 식당으로 들어와 여자에게 그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뭐라고? 그런 건 확실하게 처리를 했어야지. 그럼 그 도둑놈이 언제라도 다시 라면 훔쳐 먹으러 올 수 있다는 거잖아!"
"설마요! 올 거면 벌써 왔을 거예요."
"아휴! 저 얼어 죽을 안전불감증."
"별다른 방법이 없는데 그럼 어째요."
"설마 하다가 한방에 가는 거야!"
"됐어요, 그냥 신경 끄세요. 그나저나 여긴 우리 밖에 손님이 없나 봐요. 망하면 어쩌지......"
"쉿!"
여자는 주인 이모님의 동태를 살피며 나의 입을 단속시켰다.
"이모님이 들으면 어쩔라고 그래!"
"아니 난, 항상 우리만 있는 것 같아서...... 손님도 없는데 매번 이렇게 음식을 하면 손해가 클 것 같아서......"
"사람들이 우리가 오는 시간을 피해 올 수도 있지."
"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
"손님을 왜 몰고 다니는 사람 있잖아, 근데 또 손님을 쫓는 사람들도 있어. 조용히 티 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우리가 손님을 쫓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아니, 우리 말고 느어..... "
여자는 턱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풋!"
무방비 상태로 있다고 또 당하고 말았다.
******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근처에 있는 작은 농원으로 향했다.
"농원? 뭐 사게요?"
"집 앞에 땅 놀리기에 아깝잖아. 맨날 잡초만 좋은 일 시키는 것 같고. 텃밭도 좀 만들고 꽃이랑 화초도 좀 심어 보게."
"그런데 화초? 화분? 그런 거 취향 아니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이런 것도 길러본 사람이나 기를 수 있을 텐데."
"화분이 취향이 아니란 거였지. 화분흙이랑 땅은 다르잖아. 얘네는 땅에 뿌리만 내려줘도 어떻게든 살아내. 내가 기르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살아내는 거야. 그게 땅의 기운인거지."
이럴 때는 너무 멀쩡해 보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콘크리트 사이의 틈바구니에서도 생명은 피어나고, 자연의 생명은 인간의 손길이 아닌 그들만의 자생력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화분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나 역시 화초 따위를 몇 번이고 죽게 한 경험이 있었다. 흙과 땅은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농원은 안으로 들어오니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내부가 엄청 넓었다. 가게 뒤편으로 엄청난 규모의 비닐하우도 보였다.
"사장님! 혹시 패랭이 모종도 있을까요?"
"발 밑에 왼쪽으로 쭉 있는 게 패랭이예요."
"아......."
"패랭이가 꽃이 여러 종류가 있어요. 우리 집에 있는 건 지금 거기 있는 게 다야. 혹시 원하는 게 따로 있어요?"
"아니에요. 사장님! 요기 있는 것 포장해 주세요."
꽤 많은 양이었다. 사장님이 포장을 하는 동안 여자에게 나는 슬쩍 물어보았다.
"원하던 꽃이 아니에요?"
"아니! 어차피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그냥 인터넷에 여름에 강한 꽃으로 검색하니깐 패랭이가 나왔어. 이미지도 안 보고 그냥 그걸로 결정한 거야."
"진짜 심플하시네요."
"이름이 좀 매력적이지 않아? 패랭이라니!"
"글쎄요,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낀 걸까요?"
마침 포장이 완성되어 차에 실었다. 서비스라며 서 씨앗이 담긴 팩을 서너 개 넣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