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도둑놈

by 늘품이

창고 안에는 오만가지 물건들이 뒤엉켜 있었다. 장롱부터 화장대, 텔레비전, 선풍기, 테이블 등 일상 용품들이 가득했다. 시간의 흔적이 짙은 물건부터 이름과 용도는 모르지만 농기구처럼 보이는 잡다한 물건까지 빈틈없이 쌓여 있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했다.


창고 앞에 한 참 동안 서 있다 보니 울타리를 높이겠다는 계획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죽음을 기다릴 마음으로 왔지만 산짐승에 공격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입구 쪽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구부터 꺼내 보았다.


기다란 가위 같은 모양으로 날이 눕혀져 있는 것이 잔디 깎기 기구가 아닌가 싶었다. 양쪽으로 길게 뻗은 손잡이를 잡고 넓혔다 좁혔다를 반복하면 가위 날이 움직였다. 시험 삼아 중정의 잡풀을 베어 보았다. 스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쉽게 잡풀을 벨 수 있었다. 스삭거리는 소리와 리듬, 잘려나가는 풀들이 내 몸을 계속 움직이게 하였다. 금세 마당의 잡풀들이 정리되었다.


그다음에는 갈고리 같이 생긴 기구로 베인 잡풀을 한쪽으로 모아 대문 밖으로 그냥 던져 버렸다. 그제야 이 마당의 본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마당 귀퉁이에는 수돗가가 있었는데, 현대식 수도와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어릴 때 시골집에서 보던 지하수 퍼 올리는 펌프 같은 것이 나란히 있었다. 방치된 지 오래되어 그런지 수도는 꼭지가 돌아가지 않았고 그 고동색의 펌프는 끼익 끼익 소리만 낼뿐 물을 뿜어주지 못했다.


마당 정리를 마무리하고 마루에 대자로 누웠다. 눕고 나니 노동의 후유증이 몰려왔다. 순식간에 내 몸은 마루에 들러붙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게 잠시 몇 번 눈을 깜박거렸을 뿐인데 어느새 자연은 또다시 초록에서 주황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간신히 무거운 몸을 일으켜 고쳐 앉아 소주를 한 잔, 한 잔, 그렇게 또 한 잔. 나른해지는 몸에 담배를 한 대, 그렇게 또 한 대.


밤으로 가는 산을 마주하며 그렇게 취해 가고 있었다.


"로티야! 들어가서 자야 하는데...... 왜 이렇게 몸이 무겁니, 로티야! 네가 말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하루에 하나씩 우리 로미 이야기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로미 냄새 잃지 말고 몸에 잘 품고 있어 줘.. "


몸은 알코올의 지배에 들어갔다.


"로미야.! 로미야! 로미야!"


로미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쳐 갔고 눈물이 났다. 이 이름마저 너무 아파서 너무 오랫동안 이름마저 불러주지 못했다. 움직이면 주마등이 흐트러질까 봐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여한 없이 생각하고 마음껏 울면서 내 몸은 돌처럼 굳어갔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잠이 들다.


***************


예상치 못한 기척 소리에 잠이 깬 것은 깊은 밤이었다. 뭔가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정신이 확 들었다. 극심한 공포심에 눈을 뜰 수도 없었다. 계속 잠든 척하면서 실눈으로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어떤 형체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두워서 자세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사람의 움직임이 확실했다. 계속 자는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떡하지?


무서웠다. 너무 무서웠다. 심장 박동이 얼마나 빠르고 크게 뛰었는지 모르겠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 내 몸의 진동을 눈치챌까 봐 조심스러웠다. 오만가지 생각으로 온 신경이 청각에 집중되었다.


[탁!]


버너 켜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컵라면 포장을 뜯는 소리가 났다.


'컵라면? 사람인가? 노숙자? 컵라면을 훔치러 온 건가...... 미치겠네, 정말!'


버너를 끄고 물을 붓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점차 그 소리는 멀어져 갔다.


그제야 조심스럽게 눈을 뜨고 소리가 움직였던 방향을 좇았다.


"맙소사!"


사람의 뒷모습이었다. 무언가를 들고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영락없는 사람의 모습이던 것이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로티를 끌어안은 채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종류의 공포였다. 어리석게도 인적이 드문 외딴곳으로 오면서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다행히 사람을 해칠 요량은 없어 보였지만 놀란 가슴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로티를 끌어안고 누웠다. 처구니 없게도 죽음을 맞이할 마음으로 온 곳에서, 산짐승의 공격이나 노숙자 같은 이의 침범이 두려워 덜덜 거리고 있었다.

빨리 아침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잠으로 빨리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


해는 여느 때처럼 떠 올랐다. 텐트 밖 역시 여느 때처럼 그저 평화롭고 상쾌함을 내뿜는 어제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그제야 나는 경계를 풀고 로티와 함께 의자에 앉아서 아침을 맞이했다. 젯밤, 침범자의 기척을 느낀 뒤로 벌벌 떨며 어떻게 날을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동이 트는 것을 보고서야 잠이 들었다. 다시 잠이 들었다는 사실 또한 내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겪은 것일까! 여기에 계속 있어도 될지, 아니면 어디로 가야 할지. 갈팔질 팡하며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제 와서 다른 집을 구한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가진 걸 다 정리하고 온 지금 나에겐 아무것도 없다.


일단 빈 속에 담배 한 개비를 태우고, 라면 수프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인다.


"그냥 라면을 훔쳐 먹으러 온 걸까? 그제 잠결에 들은 소리도 저 놈이었을까? 라면은 서른 개 중에서 내가 한 개 먹고 스물여덟 개면 어제 한 개만 가져간 건가? 내가 와서 1개밖에 안 먹었나?"


상대도 없는 질문을 혼자서 내 쏟았다. 동일범인지 아닌지, 어찌 되었건 그제와 어제 왔다면 오늘도 올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였다. 오늘은 포기했던 울타리를 어떻게든 높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그러나 오늘도 역시 창고 앞에 망부석처럼 멀뚱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한 참을 서서 고민을 해도 울타리를 어떻게 높게 만들 수 있을지 계획이 서질 않았다. 일단 눈에 보이는 공구함을 꺼냈다. 눈에는 익숙했지만 대부 부분이 기능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먼저 주둥이가 넙죽한 니퍼를 이용하여 수도꼭지를 돌려보았더니 녹물이 콸콸 터져 나왔다. 한 참 후에야 깨끗한 수돗물이 나왔다.


창고 입구 쪽에 있는 물건들을 두어 개 밖으로 꺼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옆으로 치우고 하다 보니 창고 안의 물건들을 전부 파악할 수 있었다. 창고 물건들을 전부 훑어보아도 울타리를 높일 만한 물건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창고 정리하는 데 하루 노동량을 모두 소비하고 마루에 쓰러지고 말았다. 곧 밤이 올 테고 그놈도 올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초조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차로 갔다. 차에 두고 다녔던 전기 충격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예전에 종원 씨가 사준 것인데 실제로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다행히 작동은 되는 듯했다. 타격감은 모르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로프와 타프 못, 캠핑 장비 박스를 통째로 들고 옮겼다. 이미 머릿속에선 다양한 시나리오대로 시뮬레이션이 진행되고 있었다.


******


여기는 해가 지면 금세 어두워진다. 소주 3잔을 연거푸 들이키고,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안전하게 로티를 눕혀 놓고, 타프 못과 로프, 전기 충격기를 내 옆에 나란히 준비해 두었다. 헤드랜턴을 머리에 고정시키고 램프를 끄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나는 어제 놈이 왔던 방향을 주시하며 기다리고 있는다. 나의 온 신경이 놈을 향하고 있었다. 마침 보름달 덕분에 주변이 칠흑 같진 않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 참 후에야 바스락 거리는 풀 밟히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나의 온 신경은 경계 태세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전기 충격기를 손에 쥐고 텐트 지퍼를 살짝 열어서 밖을 염탐했다.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아하니 분명히 그 놈이었다.


실루엣의 움직임만 보이는 정도였지만 놈의 동선을 알아챌 수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텐트 쪽 다가왔다. 마른침이 넘어가며 손에 땀이 났다. 슬며시 텐트를 들여다보는 듯하더니 익숙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버너에 주전자를 올려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언제쯤 덮쳐야 할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전기 충격기를 떨어뜨릴까 봐 조바심도 나고,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놈은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자연스럽게 라면에 물을 붓고 일어나 갈 채비를 하는 듯했다.


나는 더 이상 지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잽싸게 헤드랜턴을 켜는 동시에 텐트의 지퍼를 열고 뛰쳐나가 놈을 향해 소리 지르며 전기 충격기를 들이밀었다.


"으아악!"


삽시간에 일어난 엄청난 사건이었다. 전기충격기는 놈의 목 뒷덜미를 가격했고, 놈은 뒤돌아 보지도 못한 채 옆으로 픽 쓰러졌다. 나 역시 바로 전기충격기를 떨어뜨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온몸의 피가 빠져나간 듯 현기증이 났다.


"내가, 내가 무슨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무슨 짓을......"


이미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온 기분이었다. 손을 벌벌 떨려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잠시 기절한 것이니 언제 깨어날지 모르게 때문이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로프를 이용하여 손과 발을 묶었다. 그래도 떨림과 긴장은 멈추질 않았다. 금방이라도 놈이 눈을 뜨고 헐크처럼 로프를 풀어버릴지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로프로 온몸을 최대한 둘둘 말아 묶었다. 어린 시절, 팽이에 줄을 감 듯 빈 틈 없이 촘촘하게 온몸을 감았다


그제야 다소 진정이 되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소주 2잔을 연달아 들이키고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놈이 깼을 때 내가 만만해 보여선 안된다는 생각으로 손에는 타프 못을 쥐고 있었다. 위협적으로 보이기 위해 담배를 태우면서 놈을 향해 타프 못을 찌르는 자세 연습을 했다. 그 순간 놈이 눈을 떴다.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타프 못과 불이 붙어 있는 담배가 동시에 그놈의 살 부분에 떨어졌다. 하필 로프가 묶이지 않은 부분이었다. 놈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부림쳤다.


"아 뜨거워!"


"어머! 괜찮아요?"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담뱃불이 떨어진 곳에 불이 붙을세라 손바닥을 톡톡 치며 불을 끄기 바빴다. 그러다가 이상한 상황임을 감지하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서로 잠시 바라보고 탐색했다. 나는 겁먹고 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미간에 최대한 힘을 주어 놈을 노려보았다. 놈은 나의 랜턴 불빛 때문인지 눈을 찡그리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정중하게 말을 했다.


"죄송합니다."


20대 중반쯤 됐을까? 수염이 덥수룩 나긴 했지만 중년은 아닌 듯했다. 170센티미터 조금 넘는 키에 보통 체격으로 단발머리를 묶어 옆머리가 살짝 내려왔다. 지저분해 보였지만 노숙자 부랑자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일전에 라면 냄새가 너무 좋아서...... 정말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너무 먹고 싶어서 훔쳤습니다."


어린 시절 문구점에서 학용품을 훔친 아이처럼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느 날 갑자기 라면 냄새가 올라오는데, 이게 참을 수가 없었어요."


"라면 냄새? 너 어디 사는데? 이 근방에는 집이 없던 것 같던데......"


"저기 산길로 조금 올라가면 동굴이 하나 있어요. 거기서 살고 있어요."


"동굴? 거기가 집이라고? 이 컵라면 냄새가 저기 산까지 갔다고?


"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네가 무슨 초능력자야?"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음식냄새가 나는 곳이 아니다 보니깐 확연히 명확하게 라면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됐고, 이름이 머야? 어려 보이는데... 부모님은? 진짜 집은 어디야?"


"이름은 조정범이고요. 나이는 82세, 부모님은 당연히 돌아가셨고, 진짜 집은 여기 산 2코스 약수 나오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동굴에 천막이 쳐져 있는 곳이 있어요. 거기서 살고 있습니다."


"32세?"


"아뇨. 82세, 여든 둘이요!"


"뭐 82세? 지금 장난하나......"


그제야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일단 경찰에 신고 접수를 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여기서 안전하게 보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


"한 번 만 용서해 주세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제가 잡혀가면 안 될 만 이유가 있어서 그럽니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아니에요. 당신은 절실히 기관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네요."


"일일이 설명하긴 어렵지만, 제가 중요한 일이 있어서 지금 이렇게 있는 것입니다. 경찰서로 가면 너무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단 말이에요?"


"거기 사정이야 관심 없고요. 한 달밖에 남지 않은 내 삶을 매일 불안 속에서 보낼 수는 없어요. 나는 나의 시간을 안전하게 보장받고 당신은...... 당신도 안전하게 치료를 받아보세요."


"한..... 달이라고요? 어쩌다가......"


놈은 갑자기 미간에 내 천(川) 자를 만들었다. 나를 향해 과한 측은함을 내비쳤다.


"어쩌다가....... 시한부가, 불치병인가요?"


놈의 눈이 반짝거렸다. 빛에 의한 착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간 그 눈빛에 홀릴 뻔했다.


마침 경찰들이 와서 놈을 데리고 갔다. 놈의 마지막 눈빛은 기묘한 여운을 남겼다.


"뭐야? 설마 그게 눈물은 아니었겠지?"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