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정원 20-1
우리는 가게 앞 평상 위에 누워 해가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그스레하게 번지는 노을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명당이었다. 사방은 정지된 채 오롯이 태양만이 바닷속으로 천천히 혹은 빠르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모, 안 들여봐도 될까요?"
"괜찮을 거야. 어쩌면 이제야 제대로 한숨 푹 자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너무 오래 자는 거 아니에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음 어째요?"
"있을라면 진즉 있었겠지. 그 늙은 아들 눈에 밟여 뭔 일이 생겨도 피해 갈 양반이지 싶어. 감옥서 나오면 따신 밥 해 줄 힘으로 살아낼 거야."
"언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알기는 뭘 알아, 내가. 그냥 주 절이는 거지."
냉소적인 말투로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했지만 깊은 앎이 전달되었다.
하긴, 기다림에 덧대어진 그리움인데 견딜만하지 않을까 싶다. 기약이 있는 기다림은 그 아무리 깊은 그리움이 동반할지라도 못 견딜 이유가 없다.
잠시 눈을 감았다.
감으면 보일까, 잠들면 꿈꿀까......
기약 없는 그리움에게 사정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런 것들이다 뿐이다.
그때 누군가가 가게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아기띠에 아기를 품고 다가온 젊은 여자는 우리가 의식된 듯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가게문을 조심히 열었다.
"계세요?"
아기 엄마는 발 한쪽만 가게 안으로 들여놓고는 머뭇거렸다. 가게를 찾아온 손님이구나 싶은 마음에 언니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계세요?"
아기 엄마는 가게로 들어가 낮고 작은 소리로 인기척을 냈다. 다소 상기되어 보였으며 우리는 가게 안으로 아기 엄마를 안내했다.
"혹시 여기 사장님 따님...... 이세요?"
언니가 물었다.
"아,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 사장님은......?"
"아...... 안에 계시는데, 잠시 앉아서 기다리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아기엄마는 의자에 앉았다. 조막만 한 아기가 엄마의 가슴팍에 잠들어 있었다. 언니는 이모를 데리러 방으로 갔고 난 건너편에 잠시 앉았다.
전에 이모랑 통화하며 엄청 울던 딸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그렇게 엄마를 펑펑 울게 했던 아기는 쌔근쌔근 잠이 들어 있었다. 아기띠 속에 숨어 있는 아기에게 자꾸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몇 개월이나 됐어요? 천사가 따로 없어요. 이때가 힘들어도 너무너무 이쁠 때인데.....'
라는 인사치레 말조차 건네지 못한다. 나는. 아직!
오랜만에 온 것일까. 여자는 어색한 듯 가게 안을 훑으며 둘러보았다. 마치 이곳이 처음인 사람 같았으며 친정을 찾아온 딸의 모습으로 보이진 않았다.
"곧 나오실 거예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감사합니다."
언니는 내 옆에 앉았다. 말을 할 순 없었지만 이 모든 상황을 궁금해하는 듯했다. 질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아기 엄마를 힐끗거렸다.
지각생처럼 서둘러 이모는 방에서 나오셨다. 눈이 퉁퉁 부었지만 언니 말대로 제대로 한숨 주무셨는지 얼굴색이 훨씬 좋아졌다. 매무새를 다듬으며 이모는 아기 엄마를 바라보았다.
"누...... 구?"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모는 딸이라고 생각했던 아기엄마를 알아보지 못한 눈치였다. 아니면, 여자가 잘 못 찾아온 것일까.
짧은 시간 동안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의 눈빛으로 이 상황에 대해 궁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저......"
아기 엄마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뭇거렸지만 이내 적막을 깨고 입을 열었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수줍은 듯 작게 속삭였다.
"엄마...... 저...... 얘가 지영이에요. 울보대장 지영이."
아기 엄마는 아기의 얼굴을 이모한테 내어 보여주었다. 그제야 이모는 갑자기 여자의 두 손을 덥석 잡아 쓰다듬었다.
"아이고! 세상에나."
그제야 아기 엄마는 긴장이 풀린 듯 고개를 숙이고 훌쩍거렸다.
"아이고...... 딸! 엄마 밥 먹으려고 왔구나. 어뜨케 이 멀리까지 왔대. 잘 왔어, 잘 왔어."
아기 엄마는 닭똥 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
오늘은 유난히 고단한 하루였다. 언니와 나는 그로기 상태로 의자에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길 잃은 시선은 하늘을 향했다.
"오늘 대청소가 너무 힘들었나 봐요."
"설마, 대청소 때문에 이렇게 힘이 들까......"
"그러면 뭐 때문인데요?"
"글쎄다."
"이상하게 기운이 없네요."
"뭐...... 가을이니깐 당연하지. 가을은 고독하고 쓸쓸하라고 만들어진 계절 아니겠니."
"고독하고 쓸쓸하면 기운이 없는 건가요?"
"뭐...... 쓸쓸하다는 건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있다는 거고. 그 구멍으로 그만큼 에너지가 술술 세고 있다는 소리가 되고, 당연히 에너지가 세고 있으니 몸이 더 고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처음으로 그럴싸한 얘기 기네요."
"잘 생각해 봐. 과연 처음일까?"
피식 웃음이 나오는 것마저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듯했다.
"아까 그 지영이 엄마란 여자 있잖아요. 사람 인연이란 게 너무 신기한 것 같아요."
"그러게. 나도 또 그런 인연은 처음 봤어."
"아기 엄마가 밥 먹을 때 이모가 어떤 얼굴로 아기 엄마를 보고 있었는지 봤어요? 우리가 밥 먹을 때도 이모가 그렇게 쳐다봤을까요?"
"아닌 것 같아. 우리 밥 먹을 땐 항상 주방에 들어가 있거나 입구 쪽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봤지. 우리도 앞으론 그냥 엄마라고 부를까?"
"난 괜찮아요."
"그렇지? 첨부터 그랬어야 했는데. 지금 갑자기 그러면 괜히 어색해질 수도 있겠지?"
"네."
"지원아! 넌 언제까지가 끝이야?"
"뭐가요?"
"엄마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