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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Dec 11. 2022

편견 없는 세상의 눈.

사회복지사의 좌충우돌 성장 story

우리 집은 땡땡동 작은 마을에 있었다. 우리 마을 건너편에는 커다란 아파트 단지가 드리워져 있었고 그 아파트는 내가 쳐다볼 수 없었던 우월의 대상 중 하나였다. 나는 직장인이 되고 주변에서 자녀를 출산하는 친구들, 동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학군에 대한 생각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매년 다가오는 입학 시즌을 맞이하면 학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모습을 보곤 한다.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주거지 선택에 있어 학군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좋은 동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예나 지금이나 뜨겁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맹모삼천지교’라는 고사성어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는 교육에 주위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렸을 적 우리 동네에는 언니, 오빠와 같이 또래 친구들이 참 많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모두가 하나같이 불우한 가정환경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저소득가정, 이혼가정, 한부모가정, 조부모 가정. 어려운 가정환경에 처해있던 친구들이 많았던 우리 동네. 지금 생각해보면 최악의 학군 집단이 모여있던 주거지가 아니었던가?         


어린 나이에는 궁금증도 참 많았다.      

‘엄마는 어디 가셨어?’     

‘아빠는?’     

‘할머니랑 같이 살아?’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가졌던 물음표. 아무런 생각 없이 던져댔던 여러 질문들. 지금 생각해보면 철없던 어린 시절. 참 창피하고 미안해야 했던 행동이었던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렸을 적 내가 살고 있던 땡땡동 마을은 나에게 선입견, 편견 없는 세상의 눈을 선물해 주었다.


교육에 주위 환경이 중요한 이유? 이유가 따로 있을까?                    

나에게 말하고 싶었다. 너는 행운의 아이라고. 10살이 채 되지 못했던 어린 나이부터 엄격한 교육환경에서 자라난 것이라고 말이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모두가 같을 순 없지만 각자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던 아이들과 서로 편견 없이 함께 어울리며 지낼 수 있었던 지역 환경이었다.


너와 내가 같은 상황이어서 공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다른 상황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함께 힘이 되어주고, 믿고 따를 수 있었다. 그 당시 어쩌면 우리 모두는 하나의 가족 집단으로 어울리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 사회복지사로 종사하고 있는 내가,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잘 보이는 이유. 누구보다 뛰어난 공감력을 장착한 사회복지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시절 세월의 흔적이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작용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는>

약자를 지키기 위해 강해질 것이고,     

내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강자 앞에서 고개 숙이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모두 다 그렇게 한다는 비겁한 변명 따위로 옳지 않음을 덮지 않을 것이고,        

내게 불편할 것이 없다고 해서 틀린 것에 눈 감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프리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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