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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Dec 13. 2022

결국 버려야 채울 수 있는 것.

사회복지사의 좌충우돌 성장 story

누구에게나 삶의 궤도가 극적으로 변화한 전환점이 있기 마련이다. 내게 그런 삶의 전환점을 묻는다면 ‘11살 어린 시절의 기억’, 그리고 ‘꿈을 이룬 두 번째 직장’ 이 두 가지를 꼽을 것이다.     


사회복지사는 보건복지부 국가자격증을 취득하며 전문가가 된다. 나는 사회복지학부에 진학했고, 청소년복지학, 노인복지학, 정신 보건학 중 노인복지학과를 복수전공과로 선택했다.

그때부터였다. 회피와 도망의 시작은.      


나는 청소년복지학과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청소년복지학과에서 전공과목을 공부한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밀려왔다. 11살 어린 시절의 기억(PTSD)이 내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래서 도망쳐야 했다.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지만 사회복지사를 하기 위해서는 청소년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노인복지학을 전공과목으로 선택해야만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했다. 나는 실습을 돌고 나서 노인복지학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노인복지학만큼 끌리고 내 길이라고 생각되었던 과는 없을 것만 같았다. 노인종합복지관 정규직에 합격하고 나서 말 그대로 뛸 듯이 기뻐했던 그 환희가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 오래 사회복지사라는 꿈을 키워온 터라 현실에 실망할까 봐 걱정까지 했다.    

  

다행히 노인종합복지관은 나에게 잘 맞는 옷이었고 자원봉사와 실습을 통해 회사생활을 경험한 덕분인지 1년 차 같지 않다는 칭찬도 제법 들었다. 일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한편이 헛헛한 느낌. 아무리 일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자꾸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 때문에 기분이 불안정한가 보다 생각했다. 보람과 즐거움에 넘쳐 기운차게 일하다가도, 갑자기 기운이 빠지는 이상한 현상을 마주해야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청소년과의 만남을, 청소년들의 삶을 가까이서 함께 나눌 수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사실을. 학창시절의 꿈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말이다.

그렇게 노인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한 지 3년이 되었을 무렵 나는 사직의사를 밝혔다.

청소년복지학으로의 기회, 그리고 종합사회복지관으로의 재 취업.


그런데 아뿔싸.

취업을 하고, 첫 출근을 하자마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우려했던 상황을 너무 빨리 마주하게 된 것이었을까.


사회복지사 또는 상담사는 스스로 상담현장에서 자신이 겪는 역전이, 간접적인 나의 사례를 마주하게 된다.

내 앞에 서 있던 아이.

그 소녀는 내가 겪었던 청소년 시절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겪고 있었고,

사회복지사라는 전문가였던 나는 소녀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벙어리가 되어야만 했다.

나 자신을 보는 것과 같았던 두려움. 내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견뎌낸 세월이 있었기에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착각이었을까.

온몸의 전율로 느껴야만 했던 좌절.

그렇게 학창시절 부터 소망했던 내 꿈은 출근과 동시에 1시간 만에 무너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강한 태풍을 온몸으로 마주해야만 했다.


나의 취약점을 드러내고 산다는 것이 창피하고 흠이 될까 두려워하는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날들은 그 상황이 어렵고 극한 상황이더라도 나에게는 감사함이었다. 그러나 그 감사함이 마치 사치인 양 강한 태풍이 몰아칠 때는 정신없이 헤매다가 태풍의 눈에 잠시 쉬는 날도 있었고, 다시 태풍과 함께 견뎌 내야 하는 날들도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또한 '그럴만한 이유'가 내게 있었다.

살면서 나의 공허함이 쉽사리 채워지지는 않았던 것. 결국 버려야 채울 수 있는 것들이 보였고, 나는 결핍을 인정함으로써 그 결핍에서 편해지기 시작했다. 


<꿈>

'오늘 하루 잘 버텼다'라는 말보다

'오늘 하루 잘했다'라는 말이 익숙하고 싶다.


나의 결핍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내 꿈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것.

-프리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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