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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앤드라이브 Sep 08. 2022

K-가족명절 1탄 -외가 편-

할머니 집에 가기만 하면 사육당했던 날들

과일 먹어~

  1.

밥상 치운 지 5분 후, 부엌에서 들린 이모의 말. 분명 한 공기 반을 먹고 갈비찜, 잡채, 미역국까지 배 터지게 먹은 것 같은데, 희한하게 ‘과일’이라는 단어에 위장이 꼬물꼬물 공간을 만들어내는 건 기분 탓일까? 그렇게 목구멍까지 채워져 있어 오늘 하루 더 이상 못 먹을 것 같았건 건 착각이었다는 듯이 잘 잘린 배와 옛날 씨 있던 포도를 단숨에 해치웠다. 솜씨 좋던 외할머니는 우리 가족만 오면 있는 반찬, 없는 반찬들을 꺼내오시며 든든히 또 바지런히 먹여주셨다. 할머니께서 점점 쇠약해지고 거동이나 먹는 것조차 불편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요리를 하시는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기억 한 편 진하게 남아있는 추억은 내 안에서 살아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할머니 댁은 여러 번 이사를 다녔었는데, 처음에는 일산 덕이동에 오래 사시다가 그다음은 부천, 마지막은 파주였다. 이모들이 대부분 일산에 살면서 가까이에서 사셨었고, 이후는 조금 작은 집으로 옮기셨었다. 이후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같이 사시던 공간에 다시 들어가시는 게 힘들어 파주로 옮기셨다. 그래서 장소에 따른 할머니 집에 대한 추억도 조금씩 다르다.

참 복스럽게 먹네, 우리 떵강아지

2.

  일산에서는 셋째 이모와 같은 단지에 사셨었는데, 그래서 자주 왕래가 있었고 어른들끼리 단지 내 호프집에서 술 한 잔 하실 때 아이들은 강냉이를 먹으면서 있거나 바로 옆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었다. 또 1층이었던 이모네 덕분에, 할머니 집에서 하루 묵어도 이모네 마당에 가서 놀곤 했었다. 부천으로 이동해선 주로 시장이나 음식에 관한 추억이 많다. 바로 앞이 재래시장이었는데 거기서 파는 알록달록 강냉이를 좋아했다.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입천장 까지는 뻥튀기를 아는 사람 많을 것이다. 그거를 좋아해서 갈 때마다 사 먹었는데, 할머니가 그걸 기억하시고 내가 갈 때마다 사놓으셨다. 또 밥을 같이 먹는 자리에서는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 참 복스럽게 먹네”라고 하시며 칭찬해주심에 더 맛있게 한 입 가득 퍽퍽 먹었던 기억이 있다.


3.

  제사를 지내지 않았던 외가 쪽은 주로 친척들과 여행을 많이 다녔었다. 제주도를 가거나 일산에서 묵으며 하루 잔칫날을 풀거나 말이다. 파주 헤이리도 종종 가면서 요즘 시대에 ‘브런치’라는 개념이 없을 때부터 놀러 다녔었다. 또 외가 쪽 여자들은 목욕탕을 정말 좋아해서 일주일마다 갔었다. 사실 가서 알로에 팩 같은 신기한 민간요법을 하거나, 색깔 음료수를 먹는 거에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지만..

  또 호수공원에서 산책한 후 <온누리 오리고기>를 먹으러 정말 자주 갔었다. 나중에 할머니가 잦은 간격으로 몸이 허해지시거나 정신이 오락가락하실 때 오리고기를 드시고 나면 바로 돌아오셨던 일도 있었다. 글로 적고 나니 몸•정신 등 건강관리에 진심이었던 외가. 그래서 오래 정정히 사시다가 호상하신 것 같다. 성인이 되고 가장 최근까지 살아계시던 외할머니,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못 찾아뵈었던 게 아쉽고 죄송스럽다.


글을 읽고 계신 다른 독자 분들의 외가 쪽 명절에 대한 추억은 어떤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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