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여름인 나라에 해바라기 심기
단독주택에서 지내고 있는 지금. 마당의 푸른 잔디밭을 보면서 텃밭을 가꾸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내 몸 속에 남아있는 시골 소녀 유전자.. 이를 어쩌면 좋아. 말레이시아 집주인부부는 더 이상 귀찮은 일이 싫다며 마당의 잔디밭을 그저 2주에 한번씩 잔디를 깍아 유지하는 정도로 관리하고 계셨다. 옆집만해도 마당에 다양한 꽃과 나무가 심어져있는데 그 모습이 퍽이나 신비로웠다. 아니 사실 관리가 그렇게 잘 되어있지 않아서 지저분해 보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식물이 있는게 조금 멋져 보였다. 아무래도 365일 열대기후에 비도 잘 내리는 이곳에선 길가에 나무마저 높게 치솟는데, 마당에 무얼 심든 다 잘자랄게 뻔히 보여 마당에 이것저것 심어보고 싶은건 어떠한.. 실험정신일까.. 시골소녀의 피일까..
그리고 결국 나는 해바라기 씨앗을 심었다. 텃밭을 만들지 않아도 집에는 남는 화분이 많았고 남는 흙도 있었다. 집주인분들께서 주셨기때문에 거기에 해바라기 씨앗을 심어보았다. 한국에서 해바라기는 여름꽃인데, 여기는 365일 여름이니 해바라기에게 최적의 환경이겠다. 일본에서 왔다는 해바라기 씨앗, 어쩐 일인지 씨앗은 파란색이었다.
해바라기를 심고 나서야, 해바라기 꽃이 피는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찾아보았는데, 씨앗을 심고 56일 정도가 지나면 꽃이 완전히 핀다고 하더라. 생각보다 짧은 기간에 조금 놀라웠다. 해바라기는 꽃 중에서도 키도 크고 꽃도 큰 편인데 그 모든게 두 달만에 다 자란다니. 아니나 다를까 심자 마자 이틀만에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
햇볕도 강하고 하루종일 온화한 기후여서 그런지, 마당에 잡초 자라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자라서 놀랍기만 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고 자기전에 보는 그 잠깐 사이에도 엄청나게 자라있다. 화분의 반은 방울토마토 씨앗을 뿌렸고, 반은 해바라기씨앗을 뿌렸는데 어쩐 일인지 방울토마토 새싹은 하나도 자라지 않았지만, 해바라기 새싹 만큼은 아주 튼튼하게 자라나고 있다.
하물며 새싹도 이렇게 열심히 살고 두 달 만에 꽃을 피워낸다니. 우리는 흔히 한 가지 일에 충성심을 다하고, 열중하는 사람들을 보고 해바라기 같다고 표현한다. 이는 해바라기 이름답게 해가 있는 방향으로 꽃을 피우는 해바라기의 특성 때문이다. 그 하나로도 존경과 충성이라는 꽃말을 갖는데, 해바라기가 자라나는 속도까지 본다면 해바라기의 꽃말은 진정한 오타쿠일지도 모르겠다. 꽃을 피우기 전에도 자라나는 일에 무섭게 집중하니까.
해바라기는 태양을 따라 하루하루 고개를 돌리며, 자신의 성장 과정을 끊임없이 조절한다. 이러한 모습은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과 닮아 있다고볼 수도 있겠다. 원래도 해바라기를 참 좋아했는데, 해바라기의 성장을 지켜보니 느끼는게 많아진다.
"해바라기야 잘 자라자. 너가 다 자라기전에 나도 다음 갈 곳이 정해지면 좋겠다. 그래서 너가 꽃을 핀 후 태양을 바라볼 때, 내 고개도 너와 같이 태양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