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도망자라 칭해야하나 여행자라고 칭해야하나
어제 쿠알라룸프에 당도했다. 같은 말레이시아지만, 말레이시아 땅이 매우 넓기때문일까. 차로 4시간 거리인 쿠알라룸프는 페낭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페낭도 충분히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쿠알라룸프는 그냥 서울에 온 것 같은느낌이다. 쿠알라룸프는 작년에 비행기 연착으로 인해 쿠알라룸프에 하루 발이 묶였던 적이 있다. 누군가는 화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나에게는 그저 하나의 도시를 무료로 여행할 수 있는 꿀같은 기회였다. 그때 KLCC 페트로나스타워를 가장 먼저 보러갔었는데, 그 광경이 꽤나 멋져 다음에 또 오고싶었다.
쿠알라룸푸르, 이슬람 문화와 현대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이 대도시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랜드마크가 하나 있다. 바로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Petronas Twin Towers)’. 설계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시저 펠리(Cesar Pelli)가 진행했고, 높이 약 452미터(1,483피트), 88층으로 구성된 이 쌍둥이 빌딩이다. 이 타워는 말레이시아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나스(Petronas)의 본사로 사용되고 있다. 이 타워는 현대 건축의 고전이자, 관광객들 사이에서 필수 방문지로 자리 잡아 있다.
과거얘기를 하나 풀자면, 대학생때 인천아시안게임 홍보작품을 자처해서 만들었던적이 있다. 팀을 꾸려서 팀원들과 함께 전시를 준비했었는데, 그때 아시아도시의 랜드마크를 하나씩 직접 나무조각으로 만들고 그 랜드마크들을 모아 아시아는 큰 대륙이 아닌 하나의 작은 도시다. 그렇게 아시아는 하나다. 라는 의미를 가진 작품이었다. 말레이시아의 랜드마크하면 트윈타워가 떠오르는데, 트윈타워를 나무조각으로 만드는 것은 거의 삼성물산이 실제 트윈타워 짓기위한 프로젝트에 투입된 느낌으로 비장했다.
스케일을 몇으로 맞추고 작업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모형 크기도 꽤나 컸다. 대학생이기에 가능했던 열정의 존재같은 상징물로 내 가슴속에도 남아있는 건축물이다. 도망자를 자처하고 있는 지금 내가 대학생때 열정을 바라보는 일은 복잡한 심정이다. 그때의 나는 열정이 넘쳤는데, 지금은 무엇에서 그렇게 도망치고 싶은건지. 자신을 나무라고 싶기도하고, 추억에 잠겨 잠시 그때 친구들과 함께 쏟아부었던 열정이 그립기도 하고.. 지금 이 작품은 OCA(Olympic Council of Asia) 쿠웨이트 본사에 전시되어있다. 2015년에 친구들과 다같이 초청되어 전시를 마치고 돌아와서 현재 작품이 잘 있는지 소식조차 알 수 없지만, 그때 우리의 열정은 OCA에 그대로 기부했다.
* 메일을 몇 번을 해봤지만 답이 없는 OCA.. 최근에도 했었다.
도망자이자 여행자인 지금의 신세가 길어진다면 다음 목적지는 쿠웨이트로 잡아야겠다. 설령 간다고 OCA헤드쿼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도 미지수지만.
자연이 만들어낸 위대함 속에 겸손함을 가지는 여행도 좋지만, 인간이 만든 위대한 창조물을 감상하는 것 또한 매력적인 여행이 아닐까 싶다. 이래서 여행을 하면 그릇이 넓어진다고 하나보다. 밤에 바라보는 트윈타워는 도시의 불빛과 어우러져 눈이 부시게 빛난다, 이 광경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 깊이 새삼 인간의 창조력에 감탄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