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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탈출해 말레이시아에 왔는데 한국이었다.

한국인들은 언제나 한국을 만든다. 그것이 설령 나쁜 문화라고 해도.

by 다이치


무언가에 지칠대로 지쳐 무작정 떠나보자고 마음먹고 떠나온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말레이시아와 사랑에 빠져 이 곳에서 옅은 뿌리를 내리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현 시점 내가 가진 건 무형의 자산인 '다양한 실패의 경험'과 유형의 자산인 '사업 과정에서 생긴 빚'뿐이었는데, 단지 ‘한국어가 모국어인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곳에서는 쉽게 쓸모를 찾을 수 있었다. 마침 말레이시아에는 한국어 능력이 필요한 일이 있었고, 나 역시 비자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급여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고용되었다.

그 결과, 나는 워크비자와 함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이곳에서 삶을 연장할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는 오랜 기간 프리랜서 혹은 영세사업가로 살아왔다. 프리랜서를 선택하고 살아오면서 외로웠기에, 오랜만에 회사에서 나의 쓸모가 증명이 되든 안되든 어쨌든 받는 월급의 꿀같은 달콤함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기에 주1회 연재하겠다던 나의 낙원찾는 브런치 역시 뒷전이 되어있었고, 우습게도 낙원을 찾아 자유를 마음껏 누려보겠다며 떠나온 당찬 여정이 결국 회사가 주는 안정감과 달콤함에 매료되어 아주 자연스럽게 내 손으로 내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있더랬다. 그저 외국에 살고 있다는 것에 심취하여 그 사실이 서서히 내 발목에 감기고 내 목에 걸어 자유를 다시 갉아먹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현실을 자각한 건 꽤 늦은 시점이었다. 말레이시아라는 타국에 있지만, 일터는 한국이었다. 사용하는 언어부터 업무 방식, 보고 체계, 정치 문화까지. 모두 한국의 복사판이었다. 모든 것이 한국을 빼다 박은 어느새 무늬만 외국인 이 작은 한국에서 '한국의 방식'에 나를 맞추듯 나를 증명하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나로서 살아보겠다고 박차고 나온 한국이었는데, 참 우습게도 말이다.


이곳에서 월급까지 받으며 살아가는 삶은 객관적으로 봐도 꽤나 달콤하긴하다. 잠깐 묘사를 해보자면, 서울에서 작은 빌라에서 살던 과거에 비하면, 같은 비용으로 수영장, 자쿠지, 헬스장이 딸린 무려 3룸 고급 콘도에서 살 수 있었다. 또한, 한식은 없지만 같은 금액이면 이 나라에서 만큼은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며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음식을 시킬때 메뉴판의 금액같은건 보지 않을 수 있는 여유를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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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았다. 10년 남짓 적지 않은 사회생활 경력에 이런 곳이 존재했다는걸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처음엔 이제 막 이곳에 입사하는 20대 친구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젊은 나이에 이곳을 찾아오는 주체적인 사람들이라니. 그러한 우러러봄도 잠시. 이곳에 오는 한국인들의 퀄리티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한국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어 방황하는 30대 무리에 속하는 나를 포함하여, 이 곳에 온 20대 40대 모두가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직설적으로 말해 보자면, 이곳에 모인 한국인 인간의 퀄리티가 좋을리가 없었다.


20대는 대부분 한국에서 ‘요즘 애들’이라 불리던 세대였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싫고, 적당히 일하면서 살 수 있는 해외를 택한 이들. 업무 기여도는 낮고, 불만은 많았다.


30대는 나와 같은 종류였다. 더 이상 한국에서 설 곳을 찾지 못하고 도피처로서 이곳을 선택해 온 사람들.


40대는 한국식 위계와 서열을 그대로 끌어왔다. ‘한국 회사는 싫다’고 말하지만, 결국 글로벌 기업 속 한국팀을 다시 한국 꼰대 문화로 되돌리는 건 바로 그들이었다.


이제는 분명히 안다. 한국인이 모이면, 그곳은 어디든 곧 한국이 된다. ‘정이 넘치는 코리아타운’ 같은 낭만은 없다. 한국을 벗어나고 싶다 말하면서도, 한국의 모든 구태를 그대로 따라 만드는 것이 한국인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도 또 하나의 한국인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또 한국에서 도피했듯, 이 곳에서도 도피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이제는 내가 태어난 이유가 도피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러니까 내 직업과 나의 임무는 도피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또 다른 도피처를 모색하고 있다.


그래도 이 과정 중에 깨달은건 도피처는 이제 더 이상 장소가 아니다. 자, 이제 어떻게 바뀌어야할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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