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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삶에 안주하려 할 때마다 인생은 변곡점을 기꺼이 만들어 버린다

by 다이치

말레이시아에 온 뒤로 정말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도전적으로 살아왔던 20대와는 다르게 평화로운 나날들이 주는 기쁨과 안정감에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그저 이대로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과 정말 이대로 현실에 안주하여 더 이상 이루고 싶은 꿈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과 함께 말이다.


처음 글로벌 회사에 한국팀에 입사하고 나서도 월급이 주는 달콤함과 무미건조하게 일을 하더라도, 내가 아프더라도 인수인계 하나 없이 굴러가는 회사 시스템이 너무 좋았다. 언제나 일은 곧 내 삶이었는데, 일과 내 삶이 구분된 세상이 생각보다 편안하고 너무 좋았다. 그 좋은 느낌과 동시에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불안함도 잠시. 회사에서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매니저를 만났다. 나는 30대 초반 한국인 종특상 일머리가 좋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생활 짬밥으로 모든 팀장님들과 다른 해외 마켓팀들과도 잘 지냈다. 그런 점이 모두 아니꼬웠나 보다, 공장시스템처럼 정해진 쉬는 시간 15분 점심시간 1시간 중 5분 10분 더 썼다는 이유로 굳이 매니저가 나를 불러 세워 한소리를 하고 근무시간 내 모두가 다하고 있는 사내메신저 역시 내가 하고 있다는 이유로 나에게 다른 동기랑 메신저를 할 시간에 업무를 하라며 꾸짖었다.


흠..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니, 일이 쉬운 것도 아닌데 사내정치질까지 신경 써야 한다니. 아마 이런 게 내가 그동안 회사를 다니지 않고 나의 길을 걷겠다며 프리랜서 혹은 1인 영세사업가를 이어오고 도전해 왔던 이유였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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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인생의 변곡점이라는 건 내가 정말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려고 할 때 나를 다시 한번 정신 차리라고 일깨주듯 찾아온다. 이제 이 정도 쉬었으니 변곡점을 마주할 준비를 하라고 다시 한번 네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로 무언가 값진 일을 해내라는 듯 말이다. 이 세상을 바꿀만한 힘이 없더라도 가만히 안주하는 것이 너의 운명은 아니지 않냐는 물음이 변곡점으로 오고 있다.


고난과 시련을 이기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철학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가령,

"하늘은 내가 감당가능한 시련만 준다"

"동트기 직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 말이 어느 정도 사실임을 방증하듯, 나에게도 항상 그런 시간이 있었다. 그 시절마다 나는 변곡점을 겪었다.


23살 잘 다니던 대학교에서 학교를 대표하여 해외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도중, 교수가 제시하는 불합리함에 한 달 만에 준비해서 다른 대학교로 편입을 하기도 했고. 용돈 삼아 운영하던 인스타그램 마켓이 친언니가 장난 삼아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영향을 주어 그 장난감을 온라인 마켓에서 크게 대성공을 시키기도. 또 그렇게 오프라인 매장도 내어보고. 코로나로 인해 폐업을 하고 그 와중에 다시 한번 예비창업패키지와 함께 여러 창업대회 우승으로 스타트업을 운영해보기도 하고. 그리고 그러한 결과들이 오랜 시간 고민해 오던 해외살이까지 결국엔 이끌었다.


마치 운명은 어차피 너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네가 원해오던 방향으로 데려간다는 듯이 말이다.


그때그때 어떤 일을 실행해야만 하는 변곡점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지금이 또 한 번 그렇게 외부 요인에 의하여, 변곡점을 겪고 있다 하마터면 지금의 삶에 너무 안주하며 평온하고 따뜻한 동남아의 삶에 크게 안주하고 싶었는데, 마치 세상은 네가 할 일은 아직 남았다며 나를 밀어내고 있다. 그러니까 그래서 나 이제 어떻게 변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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