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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에서 살아본 지 1년, 나에게 생긴 변화

동남아에서 사는 삶을 추천하는 이유

by 다이치

어느새 말레이시아 생활이 1년하고도 3개월을 지나고 있다.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흐를 줄 몰랐고, 한국에서 스트레스와 대인 기피에 찌들었던 내가 지금처럼 다시 밝아질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최근 글로벌 회사의 한국 팀과 일하면서 다시 한국식 업무 스트레스와 인간 관계를 마주하고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에서의 삶은 여전히 만족스럽다.

그리고 이곳이 아니더라도, 동남아에서 살아본 많은 한국인들이 공감할 법한 변화들이 내 안에 분명히 자리 잡았다.


그래서 정리해본다.

말레이시아에서 1년 넘게 살아보며 내가 겪은 가장 긍정적인 변화들.


1. 스트레스 반응이 줄어든 몸

나는 예전부터 스트레스 취약형 인간이었다. 스트레스에 쉽게 노출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몸의 면연력이 무너지는 것을 즉각 경험했다. 일을 잘 하고 있을 때에도 낙관적으로 일을 하는 편이었음에도 그 안에는 일이 틀어질까 봐, 누가 나를 오해할까 봐, 혹은 내 선택이 틀렸다는 증거가 드러날까 봐 항상 불안했고, 일이 조금만 틀어져도 화가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것은 즉, 삶에 여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선 다르다. 확실히 삶에 여유가 느껴지니 무언가 꼬여도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마치 이 도시 전체가 내게 말해주는 듯하다.

“그렇게까지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몸이 먼저 느슨해지고, 그다음에야 마음도 풀린다.

숨이 가쁘지 않은 삶 이건 분명히 말레이시아에서 얻은 첫 번째 선물이다.


2. 매일매일이 운동, 건강한 삶

이곳에선 ‘운동해야지’라는 다짐이 필요 없다. 시간이 있고, 물가 비싼 한국에서보단 금전적인 여유도 있고,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퇴근 후의 유일한 오락거리가 운동이 되는 경험.

한국에선 ‘시간을 쥐어짜내야만 가능한 일’이 여기선 오히려 당연한 선택이 된다.


술자리를 제안하는 대신,

“이번 주말 피클볼 칠래?” “골프 같이 갈래?”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다.

수영, 헬스, 테니스, 클라이밍 등 넘치는 여유 시간은 ‘움직이는 시간’으로 채워지고,

그 움직임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력이 늘어, 생각하는 힘 또한 길러진다.


운동이 더 이상 숙제가 아니라 삶의 일부분이 된 건, 말레이시아의 일상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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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다른 운동!


3. ‘느슨함’에 대한 수용

이전엔 스케줄이 비면 불안했고, 하루를 바쁘게 보내지 않으면 무언가를 낭비한 기분이 들었다. ‘보람’은 늘 ‘피로’와 함께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텅 빈 시간은 이제 회복이다. 카페에서 멍하니 앉아 창밖의 자연을 바라보는 시간이 좋아졌고, 수영장 선배드에 누워 책을 읽는 일, 쇼핑몰을 천천히 산책하듯 걷는 일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삶의 리듬이 되었다.


‘느슨함’은 게으름이 아니라, 속도를 조절할 줄 아는 성숙함이라는 걸, 이곳에서 배우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시간에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예전처럼 강박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그리고 자기 계발이라는거 결국은 공부가 아니라,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라는 것도.


4. 한국 중심 시선에서 다국적 감각으로의 이동

말레이시아는 다문화 그 자체다. 히잡을 쓴 여성과 탱크톱을 입은 여성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낯설지 않다. 서로의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런 풍경 속에서 나의 시선도 변했다. 과거엔 ‘한국에서는 이렇게 하는 게 맞지’라는 기준이 있었다면, 지금은 맥락에 따라 다르게 옳을 수 있다는 감각이 생겼다.


특히, 다양한 인종을 타깃으로 한 상품과 콘텐츠를 접하다 보니 비즈니스의 폭, 삶의 스펙트럼, 사람들의 욕망조차 훨씬 더 다채롭고 유연하다는 것을 직접 느끼게 된다.


어릴 적부터 여행도 많이 다니고 해외 프로젝트로 하면서 나름 국제적인 감각을 길러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감각은 여행만으로는 얻기 어렵다.

살아봐야만 체화되는 것.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다.


5. 진짜 성공이란 무엇인가, 성공의 정의가 바뀜

한때 나는 “얼마나 벌고 있지?”, “어디까지 올라갔지?” 같은 숫자와 타이틀로 스스로를 평가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질문을 더 자주 던진다.


“지금 내가 얼마나 자유로운가?”

“오늘 하루는 얼마나 내 의지로 짜였는가?”

“이 공간은 나를 얼마나 편하게 해주는가?”

“이 삶의 속도는 나에게 잘 맞는가?”


성공은 이제 타인의 눈에 보이는 무엇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를 얼마나 잘 살게 하는가로 바뀌었다.


특히, 서울의 좁은 원룸 오피스텔에서 벗어나 넓고 쾌적한 콘도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지금은 몸과 마음에 남는 공간은 곧 생각할 여유가 되고 그 여유는 다시 나를 돌보는 에너지가 된다.


말레이시아에서 살아본 지 1년하고도 3개월.

한국에서의 삶을 도피해 이 시간 속에 나는 휴식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휴식 속에 나는 분명히 성장했음을 느낀다. 생각하는 방식이 변하고 여유로움을 배웠다. 이러한 시간들이 다시 한번 나를 새로운 도전으로 이끌어 줄 것이며, 새로운 도전을 맞이할 힘을 준다.


느슨하지만 단단하게,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그래서 나는 나의 주변 한국인들에게 동남아에 살아볼 것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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