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변수를 다 즐기면서 사는거지
어릴때 부터 내가 좋아하는 건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화가가 되어야지 생각했고, 부모님을 따라 해외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그리고 자주 여행을 떠나던 아빠에게서 히말라야 등반 킬리만자로 여행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어른이 되면 매일 여행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면서도 초등학생 남짓 그 어린 나이에도 여행가라는건 직업이 아니라는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바람의 딸, 한비야" 의 유명세가 시작되면서 여행 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단순히 여행만을 좋아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사회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인서울 4년제 대학도 들어가야했고, 그러기 위해 학생의 본분인 공부를 해야만 했고, 부모님의 지원 없이는 절대 여행 경비가 존재할리 없었다. 그리고 어린 고등학생 아이들은 모여서 어떤 전공을 하고 어떤 직업을해야 안정적이라느니, 평균보단 더 벌 수 있다느니, 정년이 보장된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며, 여행가라는 직업이라는건 다시 한번 상상 속 유니콘 같은 거라 생각하며 현실적인 직업의 방향으로 전공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처럼 적당한 커리어를 밟으면서 나의 시간과 맞바꾼 돈으로 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직업이 되어 살아가는 삶은 살지 못했다. 30중반을 바라보는 지금은 적어도 디지털 노마드로 일할 수 있을 한 분야의 전문성 정도는 가지고 있음에도 세계를 여행하며 떠도는 삶 자체가 현실에 벽과 함께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버는 돈을 족족 여행경비와 숙박비용으로 다 쓰게 되면 난 미래에 뭐가 되어 남아 있을까. 경험이 남는다면 그 경험이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불안한 미래를 생각하면 마음껏 여행할 수 없었다.
지금은 해외에 살고 있다. 시작은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떠나온 한국이었지만, 해외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많은 불확실성과 만나게 되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독립적인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끼지 않을 줄 알았던 외로움이라는 감정 마저 나를 괴롭힐 수 있다는걸 알게되는 경험이다. 그 만큼 해외에 산다는건 수 많은 변수를 마주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게 인생이라지만, 이 만큼 내 뜻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는 외부 요인에 인해 변수가 많은 적이 있었나, 놀라기도 한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어쩌면 나의 인생은 언제나 여행이며, 여행이기에 정착이 없다. 그렇게 인생자체가 여행이라고 생각하니 나는 이제 직업(Occupation)을 여행자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인생이 여행이라면 별 수 있을까. 여행은 길을 잃어도 여행이기에 모든 변수를 다 즐기면서 사는 것이고, 여행은 가봐야지만 알기 때문에 인생 역시도 가봐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더 이상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즐기며 살아가는 것 그런 여행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