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스트가 되지 못하고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만 하는 운명이란
하고 싶은 게 늘 많은 나는, 좋게 말하면 꿈 많은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산만한 사람이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성인 ADHD를 의심해본 적도 있다. 아마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버거운 일들이 생기지만, 30이 넘어서야 깨달은 건 나를 가장 지치게 했던 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나 자신이었다.
대학생 때는 오히려 그 성향이 나의 강점이었다. 하필이면 전공도 디자인이기에, 하고싶은 프로젝트나 브랜드는 컴퓨터앞에서 뚝딱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대외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걸 좋아했다.
이것저것 배우는 게 재미있었고, 다채로운 경험을 하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하고 싶은 건 뭐든지 꿈꿀 수 있는 20대'의 시기를 지나고 나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현실이라는 이름의 벽 앞에서, 나는 점점 버거운 사람이 되어갔다.
"대체 언제까지 이것저것 다 해볼 건데?"
"하나만 집중해서 해보는 게 어때?"
주변의 말들이 걱정처럼 들리면서도, 때로는 정곡을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어느 날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정리해보려고 종이에 써봤다.
브런치 작가, 인스타툰 작가, 소설가, 마케터, 블로거, 유튜버, IT 스타트업 창업자, 뷰티 관련 사업가, 프리랜서 디자이너...
10개는 금방 넘겼다. 셀 수 없이 많다.
블로그 하나만 봐도 그렇다.
IT, 여행, 마케팅, 창업 등... 주제가 분산돼 있다.
그런 계정만 수십 개. 그리고 지금도 또 하나를 만들고 싶어진다.
누군가는 말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는데, 넌 정말 많네. 부럽다."
그 말이 칭찬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나를 위로하는 말 같기도 했다.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보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다.
20대의 나는 세상에서 회사원이 가장 지루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한 회사에 5년, 10년을 다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나는 늘 회사에 입사하고 난 후엔 1년만 다니고, 새로운 곳을 찾았다. 그 결과, 지금의 내 이력서는 자신 있게 내밀기도 어려운 상태가 되어버렸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바뀌어서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게 됐다.
묵묵히 하나의 일을 지속하는 성실함을.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로 산다는 것.
세상은 이 둘을 다르게 대한다.
어떤 이들은 “넌 다재다능하구나!” 하고 놀라워하지만,
다른 이들은 “너는 왜 하나에 집중을 못 해?”라며 걱정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늘 방황한다.
지금 나는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중이다. 비행기 안에서도 여전히 나는 역시 어딜 가더라도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게 가장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역시 나는 여행 관련해서 항공기, 호텔 등의 리뷰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어야겠다며, 또 하고 싶은 일을 상상한다. 꿈이 없는 사람도 불행하겠지만, 하고 싶은게 많은 사람도 불행하다.
이전에 나의 글에도 있듯이, 하고 싶은게 많았던 내가 도전했던 사업들 역시 지금은 경험과 빚으로만 남아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하나에 집중하지 못해 괴로운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 여기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단 하나의 길이 아닌, 여러 갈래의 길을 걸어가는 중이라고 기왕이면 이렇게 태어난거 함께 위로하면서 그까짓거 다 해보자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 길 끝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지금은 몰라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우리는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상상력과 경험을 가진 이야기꾼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