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보아서는 안 되는 그리움에 대하여

by 황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간은 계속 흘러가기만 하고,

나는 그 흐름에

애써 몸을 맞춘다.


버틸 수 있을 만큼만 생각하고,

무너지지 않을 선까지만 기억한다.

사라진 것들보다

남아 있는 나를 지키는 쪽을

선택하면서.


그래서 나는 안다.

이것은

다가가면 안 되는 종류의

그리움이라는 걸.


한때는

같은 방향을 보며

속도를 맞추는 일이

아무렇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다시는

같은 속도로

나란히 있을 수 없다는 점이

조용히 나를 옥죄어온다.


마주치면 무너질까봐,

그 눈빛에 다시 베일까봐,

나는 가시 돋힌 담장을 억지로 높이 쌓아 올린다.


그녀를 다시 보는 순간,

간신히 기워놓은 내 세상이

또다시 그녀로 인해 산산조각 날 것을 알기에.


보고 싶지만,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되는

이 이율배반은 정말 지독하다.

이 결별의 재(灰) 속에서, 나는 홀로 서 있다.


솔직히 그냥 보고 싶다.

이유도, 변명도 없이.


다시 무엇을 시작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관계를 되돌리기에도 이미 늦어 버렸다.

그런 욕심은,

이미 오래 전에 스스로 접어 두었다.


다만,

보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까지 오래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 옅어질 줄 알았고,

상처가 아물면 함께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이 감정은

상처가 아물어 버린 자리에서

여전히 조용히 남아 있다.

그래서 더 견디기 어렵다.


보면 안 된다는 걸 안다.

보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 올린 나의 평형이

한눈에 무너질 것을 알기에.

그러니 부디,

내 시야 밖에서만,

이 담장 밖에서만,

영원히,

행복하게 머물러주기를.


보고 싶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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