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발발타! 운명을 믿으시나요?

by 강일영

계획했던 모든 일이 고꾸라지면서 깊은 우울감이 만들어낸 인간 혐오가 전신을 지배했다. 어찌 손을 쓸 수도 없는 불가피한 상황들의 끔찍한 연속성이 몇 년간 지속되니 누군가를 책망하고 원망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때문에 나는 걸핏하면 울었다. 밥 먹다가도 울고, 영화 보면서도 울고, 재미난 예능 프로를 보다가도 울었다. 재미와 감동, 슬픔과 분노. 세상에 존재하는 수천 개의 감정에 지금의 상황을 보태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에서 가슴 치며 흐느꼈다. 그렇게 한참 울고 나면 남들 앞에선 웃을 힘이 생겼고, 어렵게 얻은 힘으로 1년을 숨죽여 살았다.


아무도 모르던 내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건 10년 지기 친구 ‘윤’이었다. 눈치 백 단 윤 앞에서 와르르 무너진 나는 그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보여주며 펑펑 울었다. 윤은 처음 보는 내 모습에 제가 더 눈물 쏟으며 괴로워했고, 함께 가슴 아파했다.


윤은 지금의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묘책을 찾아보겠다며 나를 안심시켰고, 며칠 후 외딴 철학관으로 나를 안내했다. 윤이 찾은 방법이 다소 황당하다 느껴졌지만, 사흘간 철학관을 찾아 헤맸다고 말하는 윤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기대된다!’는 윤의 말에 맞장구치며 나 역시 행복한 핑크빛 미래를 예견했다. 알지도 못하는 아저씨가 내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해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까지 들었다. 윤은 중간중간 철학관의 유명세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그에 부응하는 뻑적지근한 철학관의 모습을 상상했다. 우리는 그 자체로 너무 즐거웠고, 또 행복했다.


하지만. 즐거운 상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대에 찬 우리 눈앞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못 해도 조선 시대에 설계되었을 법한 외관과 곳곳에 걸려 있는 낙서 같은 그림. 조선의 아픈 역사를 품은 듯 잔뜩 헤진 부적까지. 그야말로 으스스한 풍경에 나는 실망의 눈빛으로 공간 여기저기를 훑었고, 윤은 별다른 말 없이 초조한 듯 다리만 덜덜 떨어댔다. ‘이게 아닌데.’ 윤의 낯빛은 점점 절망의 빛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잠시 후, 불친절한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우린 복도 끝 작은 방으로 들어섰다. 파리만 날리던 대기실과는 다르게 상담실에는 전 타임 고객으로 보이는 30대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그녀 주변에 휴지 뭉치들이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하며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여자는 민망한 듯 흰 뭉치들을 주우며 연신 철학관 아저씨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곤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점점 이곳이 무서워졌다.

멋쩍은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상담 아닌 상담이 시작되었다. 금색 안경테를 자랑하는 50대 철학관 아저씨는 굳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생년월일을 물었고, 겁을 집어먹은 윤이,


“친구 사주만 보려고요.”


라며 스피드 있게 대답하면서 내 생년월일과 사주팔자만이 A4 용지에 난처하게 쓰였다. 아저씬 한동안 종이와 내 얼굴을 반복적으로 훑었고, 나는 최대한 그의 눈길을 피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저씨는 어벙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소리치듯 말했다.


“아가씨 하는 일이 뭐야?”


저요?

내가 눈을 댕그랗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아저씨는 핀잔 섞인 말투로 퉁명스레 이야기했다.


“아니, 그럼. 귀신한테 물었으려고? 아가씨 하는 일이 뭐냐고.”


귀신 소리에 겁을 집어먹은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냥… 뭐, 글 쓰는 일 하고 있는…”

내가 개미 기어가듯 우물대자, 아저씨는 이내.


“응. 그래. 내 그럴 줄 알았지.”

라며 호응하듯 맞장구쳤다.


이후 우리의 대화는 지옥행 급행열차를 탔다. 시작 후 약 5분간은 아저씨의 일방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이곳에 온 목적, 요즘 힘든 일이 뭔지 등의 물음이 주를 이뤘는데, 중간중간 아저씬 “그래도 아가씬 부잣집 딸내미 팔자를 타고나서 괜찮다.”는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를 양념처럼 버무렸다.


남다른 헛소리에 기운 빠진 내 대답이 점점 짧아지고 작아지자,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 처절했던 본인의 인생 이야기를 소설처럼 늘어놓기 시작했다.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는 꼰대력 낭낭한 멘트와 ‘라떼는 말이다!’ 정신에 윤과 나는 점점 지쳐갔지만, 아저씨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생기가 돌았다. ‘열심히 했더니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라는 문장 자체를 저렇게 길게 이야기할 수도 있구나. 금테 아저씨야말로 작가의 참된 자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쩜 그렇게 다채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듣는 내내 입이 떡 벌어졌다.


3일 내내 야근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쯤, 상담 종료를 알리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상의 목소리를 들은 우린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고, 아저씨는 떠나려는 우리에게 ‘열심히 하라’는 격려와 함께 페레로로쉐 초콜릿을 쥐어줬다. 손에 가득 들어차는 초콜릿의 감촉을 느끼며 왠지 이 페레로로쉐도 싫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날 이후, 윤과 나 사이엔 ‘철학관’이라는 금기어가 생겼다. 윤은 페레로로쉐 이야기만 나와도 진절머리 쳤고, 나는 그때 냈던 5만 원이란 금액이 떠오를 때마다 애꿎은 이만 득득 갈았다. 하지만 내 기분은 그때 이후 이상하리만치 개운해졌고 즐거워졌다. 일이 탄탄대로로 쭉쭉 풀려서가 아니라,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헛웃음 짓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것 하나 없던 엉터리 철학관에서 내가 얻은 건 페레로로쉐와 30분 내내 아저씨가 강조한 “열심히”의 가치였다. 나는 이제껏 좌절과 시련의 순간마다 썩어 빠진 세상을 원망하고, 시궁창 같은 현실을 외면하며 방구석에 틀어박히곤 했다. 변화를 꿈꾸면, 개선을 바라면 스스로 능력을 키우고 끊임없이 단점을 고쳐나가야 하는데, 나를 이렇게 방치한 사회와 어른들을 증오하며 나를 갉아먹기 바빴다.


원망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운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도 없었다. 변화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웃음 짓게 할 수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주어진 환경을 바꾸기 위해 ‘열심히’,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것을 그때 이후로 알게 된 것이다.


오늘도 나는 철학관에서 애써 사 온 헛웃음과 함께 일터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귀에 딱지 앉게 들은 ‘뭐든 열심히!’ 정신을 바탕으로 자기 계발에 열심을 기울인다. 그때 그 5만 원이 아까워서라도, 무조건 열심히, 또 최선을 다해 살아볼 생각이다.


그렇게 노력해도 변한 게 없으면? 내 아까운 5만 원 환불받으러 쫓아가지, 뭐.

그땐, 페레로로쉐도 10개쯤 얻어올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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