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하지만

소고기는 언제나 옳다!

by 강일영

“작가님! 작가님!”


아침부터 영상팀의 막내 ‘영’씨와 같은 팀 ‘김대리’가 소란스러운 기운을 이끌며 나를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너무 놀란 내가 헛기침을 하며 멍하니 ‘영’씨를 올려다보자, ‘영’씨는 태블릿을 책상 위에 빠르게 내려놓으며 재촉하듯 말했다.


“작가님! 이거 해보신 적 있으시죠? 네? 있으시죠?!”

‘영’씨의 물음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태블릿 화면을 내려다보자 참으로 낯익은 페이지가 둥실, 하고 드러났다. 요즘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해봤다는 그 유명한 성격유형 테스트, MBTI.


아, 난 또 뭐라고. 내가 한숨을 웃음처럼 흘리며,

“네. 그럼요. 해봤죠.” 하자, ‘영’씨와 ‘김대리’의 얼굴에 비장한 미소가 감돌았다.


“… 뭐야. 무섭게 또 왜 그래요?”

내가 두 얼굴을 번갈아 훑으며 이야기하자, ‘영’씨가 내 손을 부여잡으며 호기롭게 말을 이었다.


“작가님, 저희가 작가님 MBTI 두고 소고기 내기했거든요? 자, 저희 보는 앞에서 MBTI가 뭔지 확실히! 말씀해주세요!”


뜻밖의 질문에 당황한 내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 둘을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잔뜩 긴장하고 서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자니, 왠지 내 성격이 전생부터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손까지 꼭, 움켜쥐고 내 대답만 기다리는 김대리의 간절한 모습에 바짝 쫄은 나는 최대한 조심성을 담아(그리고 있는 대로 눈치를 살피며) “저는… 어… ENFJ인데요.”라고 작게 우물댔고, 곧이어 두 사람 입에선 동시에 극명한 탄성이 터졌다.


“어우, 뭐야아! 왜요? 왜 그거예요?! ESFP 아니고??”

라고 울먹이는 김대리 옆에서, ‘영’씨는.


“오예! 내가 더 많이 맞췄다아! ESFJ랑 딱 한 글자 틀려요, 맞죠? 맞죠? 대리님?!”

라며 잔뜩 신난 얼굴로 방정 떨며 즐거워했다.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나를 가운데 놓고 한참 설전을 벌였고, 믿지 못하겠다는 김대리의 성화에 못 이겨 내가 MBTI 검사를 두 번 더 진행하는 것으로 작은 해프닝은 막을 내렸다. 김대리는 “작가님 MBTI가 ENFJ라는 건 죽을 때까지 안 까먹을 것 같아요. 제가 졌네요.” 라며 패배를 인정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김대리는 내 MBTI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호들갑스럽던 두 사람이 퇴장한 후, 내 MBTI는 한동안 우리 팀 내 이야기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MBTI에 진심인 이 작가는 나처럼 ENFJ가, 특히 F형(감성형)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 거라며 MBTI의 남다른 정확성을 드높여 칭찬했다. 이 작가의 말에 팀원 대부분은 동의했지만, 우리의 강경 T형 인간 윤 작가는 이 작가의 말에 회의적으로 반응하며 냉정하게 굴었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세상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16가지로 분류해서 나눠. 말도 안 되지.”


이내 이 작가와 윤 작가는 각자의 신념을 한데 모아 MBTI 신빙성에 관한 이야기꽃을 피워냈다. 이 작가는 ‘MBTI는 무조건 정확하다!’고 강하게 주장하며 나의 MBTI를 합당한 근거로 내세우며 본인 주장에 힘을 실었다. 반면 윤 작가는 ‘성격 유형이랑 딱 들어맞는 인간이 어디 있냐? 강 작가님(=나) 성격 유형만 봐도 알겠지만, MBTI는 혈액형 유형 수준으로 포괄적이기 때문에 맞는 게 거의 없다.’는 의견을 바탕으로 이 작가의 말에 요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평행선을 달리는 둘의 주장은 좁혀지지 않았고, 제법 첨예하게 대립했다. 두 사람의 입에선 내 불쌍한 MBTI가 끊임없이 오르내렸고, (아니 근데 왜 하필 나야?) 열기는 사그라들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과열됐다.

그리고 그때, 불길 치솟던 둘의 승부에 영하 10도의 냉랭한 인물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바로,


“그럼, 우리 서 팀장님은요.”


서팀장. 다른 서팀장도 아니고 우리 팀 서팀장이 어떤 사람인가. MBTI의 M자만 아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공감한다는 ‘인간 TJ형(이성, 계획형)’의 전형이자, 원리원칙주의의 본보기와 같은 남자가 아니던가. 과정보단 결과를 중시하는 플랜형 인간. 백과사전보다 방대한 지식으로 정확한 해법서를 제시하는 우리 팀의 ‘마지막 남은 이성’ 앞에 이 작가의 어깨가 양껏 옆으로 펴지기 시작했다.


이 작가의 “서 팀장님은요.”라는 질문에 말문이 턱 막힌 윤 작가가 비어있는 서팀장의 책상으로 눈길을 돌렸다. 빈 책상임에도 먼지 하나 없이 정갈하기만 한 칼각 자태에 윤 작가의 동공은 점점 제 빛을 잃어갔다. 의기양양해진 이 작가는 주장에 힘을 실듯 “제가 서 팀장님 MBTI 맞춰볼까요? 외향적인 데다 이성적인 판단력, 계획성 넘치는 성격까지. 이 모든 걸 종합하면 바로 ENTJ! 리더형이라고요!”라며 활기차게 대답했다. 호기로운 이 작가의 말에 장내는 감탄의 함성으로 뒤덮였고, 팀원들은 하나같이 감동한 듯 이 작가의 말에 호응했다.


“진짜 100%, 완전 ENTJ일 것 같아요! 와, 이 작가님 진짜 대단하시다!”

이 작가는 안경을 쓰윽, 올리며 자신 있게.


“이따 팀장님 오시면 여쭤봐요~ 100% 맞을 거예요. 아니면 내가 소고가 한턱 쏘지 뭐!”

라며 본인 주장에 소고기 파워를 양껏 실었다.


오랜만에 맛 좋은 소고기로 포식하느냐, 이 작가의 체면이 한껏 올라가느냐! 어떤 쪽이든 즐겁게 즐길 준비가 된 우린 넘치는 기대를 쌓으며 서팀장을 기다렸다. 과연 서팀장은 어떤 대답을 들려줄 것인가. 이 작가의 의기양양함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팽팽한 긴장감이 설렘으로 바짝 당겨지고 있을 때였다.


“어, 팀장님 오신다!”

막내의 말에 우리가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자, 동시에 서팀장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을 이토록 반겼던 적이 있었을까. 우리는 기쁜 마음에 서팀장을 불렀고, 서팀장은 갑자기 몰린 환대에 화들짝 놀라 “뭡니까?” 라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이 작가는 팀장의 손을 잡아채며 재촉하듯 다그쳤다.


“팀장님! MBTI 뭐예요? 네? MBTI 그거 뭐예요?! ENTJ 맞죠? 네?!!”


서팀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게 왜 궁금한데요,”라며 짧게 물었고, 동시에 봇물처럼 터진 우리들의,

“알려주세요!” 라는 물음에 서팀장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얼굴에 손을 가볍게 올리며 (마치 뿌잉뿌잉 권법이라도 쓰듯) 건조하게 대꾸했다.


“귀여운… INFP인데요.”



그날 저녁. 이 작가의 지갑으로 뜻밖의 소고기 회식을 하게 된 우리는 ‘원칙대로 살기 너무너무 힘들다’는 귀염둥이 INFP의 투정을 들으며 만고의 진리를 가슴에 새겼다.


‘MBTI는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하지만! 우리의 소고기는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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