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많이 아프고 나는 [쌈장을 만든다]
상추가 한 바구니 식탁에 올려져 있다. 아빠가 텃밭에서 따온 상추일 것이다.
이 많은 상추를 누가 다 먹으라고?
쌈 싸 먹을 고기도 없고, 엄마의 식단에는 생채소가 없으니 먹을 사람도 없는데 이렇게 다 씻어놓으면 어쩌란 말이지,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씻어놓은 상추는 금방 먹지 않으면 물러진다. 아빠가 그것도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다. 나는 상추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좋은 재료를 썩히는 것은 더 싫다.
물을 끓인다. 많은 상추를 먹어 치우는 방법은 나물로 해서 먹는 것이다. 나도 상추를 나물로 해먹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게 얼마 안 된다. 상추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찬물에 헹군다음 나물처럼 국간장, 참기름, 깨소금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상추 한 바구니가 겨우 한 접시가 되었다. 아빠 보란듯이 식탁에 올려두었다.
상추 어디 갔어?
돌아온 아빠가 상추를 찾는다. 상추를 왜 다 씻어놨어? 다 먹을 수도 없는데. 상할까 봐 상추나물 했지. 나물이라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행히 반은 남겨두었다. 남은 상추를 보더니 아빠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돈다.
쌈장 있어?
왜 상추 싸 먹으려고?
고개를 끄덕인다.
고기도 없는데?
고기 없어도…
아빠는 상추 쌈을 먹고 싶은 거였다. 상추 나물은 낯설어서 그런지 손도 안 댄다. 아빠가 상추 쌈을 이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 상추를 다 씻어놓은 건 자기가 먹겠다는 거였다. 엄마가 아파 누워있으니 우리 가족은 엇박자가 난다. 상추를 남겨 두어서 다행이다. 다행히 쌈장도 만들어 놓은 것이 있다. 남편과 딸이 왔을 때 수육해서 먹으려고 쌈장을 만들었고, 다음 주에 오면 또 수육을 만들어줄 생각으로 킵해두고 있다.
사실 쌈장 명인은 엄마다. 엄마가 만든 쌈장은 달짝지근한 시판 쌈장과 달리 칼칼하고 개운한 맛이 난다. 한번 만들면 많이 만들어서 여기저기 퍼주는 거 좋아해서 사돈의 팔촌, 내 친구들까지도 엄마 쌈장을 얻어 먹는다. 근데 누구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른다. 청양고추, 홍고추, 양파, 멸치다시마, 마늘, 들기름, 이런 것들을 끓이고 부어서 이렇게 저렇게 한다고 했었는데, 맨날 얻어먹으면서도 평생 얻어먹을 줄 알고 제대로 귀담아듣지 않아서 레시피를 모른다. 이 쌈장을 얻어먹은 사촌 오빠의 아내도 그때 작은 어머니가 말해줄 때 배웠어야 한다며 아쉬워한다. 혹시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을까 하여 엄마가 언급했던 청양고추, 홍고추, 멸치다시마 쌈장 키워드를 넣고 검색했다. 샘표에서 만든 ‘청양고추 홍고추로 고기맛 살리는 쌈장’이 가장 먼저 뜬다. 엄마 쌈장은 고기 맛을 살리는 조력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맛있는 음식이다. 엄마가 우리 입맛을 제대로 버려놓은 우리는 시판 쌈장은 못 먹는데 큰일이다. 우리 삶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엄마 쌈장 맛이 그립다. 지금 내가 만든 쌈장에 상추 쌈 싸먹고 있는 아빠도 속으로 엄마 쌈장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엄마 쌈장을 다시 먹게 될 날이 올까?
아니면 엄마 쌈장 레시피를 알아낼 방법이 있을까? 그거라고 먹으면서 엄마 생각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