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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n 20. 2024

밥부터 먹고 엄마에게 갈게요

역시 한국인은 밥심인 건가

아침엔 밥보다 잠이지.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아침밥을  먹었다. 아주 어릴 때는 생각 안 나고 청소년기에는 아침밥 때문에 엄마랑 자주 부딪혔다.  먹으려는 자와 먹이려는 자는 매일 대치했고, 당연히 내가 이겼다. 마침내 대학 가면서 품 밖의 자식이 되었고 먹이려는 엄마로부터 해방되었다.  을 자유를 만끽했다. 물론 전화할 때마다 아침밥 챙겨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는 여전했지만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다가 아기 낳고 비로소 자발적으로 아침밥이라는  챙겨 먹게 되었다.  먹일 때라  먹을 수가 없었다. 시도때도 젖 물리는 신세라 허기져서도 먹고 건강한 젖을 만들어 한다는 의무감에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출근하면서 다시 아침밥과 결별했다. 다시 밥보다 잠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낳은 딸은 천상 밥순이다. 청소년인 지금도 삼시세끼 밥을 챙겨 먹는다.


돌도 되기 전에, 젖도 떼기 전에 어른들 밥상에 와락 달려들어 손으로 밥을 주워 먹었다.  먹길래 먹게 두었고, 소화도 잘 시키길래 이유식도 건너뛰고 밥으로 직행했다. 아침   정도는 간단하게 빵을 먹으면 밥 차리는 사람도 편하고 좋을 텐데 아침에도 빵보다는 밥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인은 밥심이다, 아침밥을 먹어야 하루종일 힘이 난다고 할아버지처럼 외치는 아이가  새끼라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는  먹어도  새끼 밥은 챙겨줘야지. 이제는 잠을 희생하고 을 차려주게 되었다. 귀찮긴 해도 행복한 비명이랄까.  먹어서 맙고 기특하긴 하다.  먹어서 엄마 애를 태웠던  어린 시절도 많이 생각나고, 어쩜 내 속에서 저런 밥 잘 먹는 아이가 나왔을까, 뿌듯하다.  아침밥을 차려놓고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먹는  경한다. 내 새끼 밥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데, 그렇다니까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


엄마, 엄마가 자꾸 신경질을 내는 건 아침밥을 안 먹어서 그런 것 같아. 한국인은 밥심이야. 밥을 먹어봐. 그래야 머리가 안 아파.


두통이 생기면 만사가 귀찮고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던 시절, 보다 못해 딸이 내게 고란 걸 했다. 엄마가 얘기하면  들어도 딸이 말하면 하는 시늉이라도 하게 되는  K엄마.  이후로 나는 딸과 함께 아침밥이라는  먹게 됐다. 처음엔 밥이  들어가서 깨작깨작거리며 애를 먹었는데 먹다 보니까  먹어졌고, 안 먹으면 허기져 아무것도 못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러다가 엄마 간병하러 와서 또다시 아침밥을  게 되었다. 엄마가 아프니까 입맛이 사라졌다. 그동안은 잠이 좋아서 아침밥만 걸렀을  식욕이 없었던 적은 없었는데, 난생처음 식욕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침에 눈 못 뜨는 엄마 깨워서 씻기고(목욕시키면서 1 기진맥진, 이제 막 출근했는데 퇴근하고 싶어지는 기분)  해서  먹이고  먹이고 나면( 먹이면서 2 인내심 고갈) 도망가듯 뛰어나가 커피를 마시는 걸로 아침을 대신한다. 그런 나날 속에 나는 점점 지쳐갔고, 말라갔고, 참다 참다 이제는 엄마 앞에서 한숨 쉬고, 짜증 내고, 험한 소리도 하는 나를 발견했다. 특히 목욕시킬 는 거의 모든 것의 한계를 경험한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힘든 일은 아니었는데, 그땐 힘들어도 내 한 몸 불살라 엄마를 살리겠다는 투지도 넘쳐서 버틸 수 있었는데, 엄마의 컨디션이 점점  좋아지면서 체력적, 정신적 한계를 경험했다. 극기야는 휘청거리는 엄마가 나를 덮쳐서   넘어져 죽던지, 나를 덮치려는 엄마를 밀쳐서 내가 엄마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고, 지옥문이 열린 기분이었다.


엄마, 한국인은 밥심이야. 밥을 먹어야 힘이 나.


갑자기 딸의 주문 같은 신념, 잔소리가 생각났다.  속에 간병에서 가장 난도가 높은 목욕을 시키다 보면 육체적 정신적 한계가 극에 달해 짜증, 분노, 두려움, 절망, 간혹 누구를, 무엇을 혐오하는지 모르는 혐오가 극에 했다. 그래, 밥을 먹자. 밥맛은 없지만 밥을 먹어보자. 살려면 먹어야 한다. 정신 차리고 밥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빠가 만든 수제 요거트에 과일을 넣어서 일단 가볍게 먹는다. 그리고 목욕시키기 전에 반그시  아니면 죽이라도 먹는다.


이때 중요한  그냥 먹어치운다, 끼니를 때운다는 생각으로 먹으면  된다. 일종의 간병인으로서 하루를 여는 의식이 필요하다. 심호흡 세 번 정도 하고 마음을 다듬고; 종교가 있건 없건( 없다) 오늘 하루 엄마와  보낼  있게, 서로를 다치지 않게, 짜증은 나도 내 안의 괴물을 부르지 않게, 지옥에는 가지 않게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면서 정성스럽게 아침밥을 어야 한다. 죽으란 법은 없는지 아침밥을 먹기 시작하고 신기하게 짜증과 분노가  사라졌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짜증과 분노가 참을  해졌다. 속이 든든하니 뭐든 참아낼  있는 뱃심이 생기고 어려움을 헤쳐갈 에너지가 겨나는 듯 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역시 한국인은 밥심인 건가.


>>돌보는 사람을 위한 돌봄이 필요해요.

주위에 간병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 밥을 꼭 챙겨주면 좋겠어요. 그냥 내버려 두면 입맛 없어서 안 먹게 되고, 안 그래도 힘든데 안 먹다 보면 체력적 정신적으로 소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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