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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n 21. 2024

질문이 열린 날

나도 다시 질문을 열고 싶다

아빠가 나가는 소리에 잠이 깬다. 창밖이 벌써 환하다. 새벽 5시쯤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새벽 4시 반이다. 오늘이 하지라 그런가 해가 길긴 길다. 엄마에게 간다. 눈을 꿈뻑꿈뻑하고 있다. 엄마도 아빠 나가는 소리에 잠이 깬 모양이다.


엄마?

아빠 어디 갔어?

일하러 갔어.

어디로 일하러 갔어?

….

밭에 갔지?

응 밭에 갔어.

나도 일 좀 하고 올게. 잠깐 기다리고 있어.

어디 가는데?

응? 뭐라고?

어디 가냐고?

어… 밥 하러 가야지. 엄마가 좋아하는 아욱국 끓이려고.


지금 엄마가 유일하게 스스로   있는 것은 스스로 눈을 뜨는 것이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스스로 눈을 뜨지 못해  속을 까맣게 태웠다. 저러다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이 붙어버릴  같아서, 이러다 영영 눈을 감을 것만 같아서 억지로 흔들어 깨우고, 손수건에 물을 묻혀 눈을 닦고,   떠보라고  살게 굴곤 했다.  득살에 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리지만 이내 스르르 내려왔다. 눈을  뜨는  아니라  뜨는 건데, 마치 엄마 의지로  뜨는 걸로 착각하고 엄마를 닦달하곤 했다. 어느 쪽으로 가도 빛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없는 막장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부터 스스로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내가 닦달하지 않아도, 아니면 엄마가 딸내미 닦달하는  보기 싫어서 내가 눈을 뜨고 만다는 심정으로 죽을힘으로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스스로 눈을 뜨는 것만으로 엄마가 다시 살아나는  같고, 살아갈 의지를 보이는  같아서 신이 났다.  


그리고 오늘 아침 엄마가 스스로   있는 것을 하나 추가했다. 어디 가는데?라고 물었다. 엄마가 나에게 묻는 것은 실로 얼마 만인가?


지금 엄마와의 의사소통은 일방적이고 단편적이다. 일어났어? .  먹을래? . 맛있어? . 어디 아파? 아니. 화장실 갈래? 아니. 졸려? . 잘까? . 나는 폐쇄형 질문을 하고 엄마는 묻는 말에 겨우 yes, no 대답한다. 배운  없는  치고는 유려한 엄마의 말솜씨가 그립다가도, 이렇게 반응이라도 하는  어딘가, 기대하는 바를 최저치에 내려놓고 만족하려고 애를 쓰는 중이다.


가끔은 컨디션이 좋은 날엔 앵무새처럼 내가 했던 말을 반복해서 대답하기도 한다. 엄마, 시원해? 하면, 시원해. 맛있어? 하면 맛있어. 일하러 갔어? 하면 일하러 갔어. , 아니, 보다는 낫다.


그런데 오늘은 어디 가는데?라고 나에게 물었다. 마침내 엄마의 질문이 린 것이다. 드디어 우리도 쌍방향 대화의 꼴을 갖췄다. 그동안 나는 엄마의 말을 끌어내기 위해 열린 질문, 선택형 질문을 거쳐 이제는 닫힌 질문까지 내려왔고, 엄마도 닫힌 대답만 겨우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인가? 엄마 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엄마가 쓰러진  질문은 늘 일방향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도 나에게 궁금한  생겼고, 그걸 말할  있게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뇌가 깨어나는 건가? 반년만에 뭐가 달라진 걸까? 그래도 설레발치지 말아야지.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하기 싫다. 자이로드롭에서 떨어지는  같았던 기분(심지어 자이로드롭 타보지 않았음) 한두 번인가. 아빠도 괜히 기대할까 봐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오늘 아빠도 친구들이랑 동해로 놀러 갔겠다, 차분하게 혼자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숨겨두었던 비빔면을 먹으련다. 오늘은 엄마의 질문이 열린 =숨겨놓은 비빔면 먹는 , 물이 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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