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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n 23. 2024

너를 나에게 보내줄래?

집으로 찾아온 너의 세계

고생 많지?

뭐 필요한 거 없어?

책이든 뭐든.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여느  같았으면 필요한  없다고 했겠지만, 이제는 누가  보내준다고 하면 사양하지 않고 그냥 넙죽넙죽 받는다. 엄마가 아프다는 핑계로 조금은 뻔뻔해졌고, 시골에 살아서 그런지 넉살도 좋아졌다. 그동안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편해도, 다른 사람에게 받는  불편했다.  받게 되면 한시라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안절부절 못했었다. 이제 그러지 않는다. 귀양살이   딸과 남편과 떨어져 지방소도시에 있는 엄마 집에 갇혀 충분히 힘들고 고독하고, 친구들이 그런 나를 위로해주고 멀리서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어하기에  마음을 편히 받기로 했다. 살다보면 보답할 날이 오겠지.


책은 처음이다. 친구가 먼저 책을 이야기를 꺼내기에 옳다구나, 책을 보내달라고 했다. 친구는 나한테 읽고 싶은 책을 골라보라고 했고, 나는 최근에 친구가 읽은 책을 보내달라고 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이미 사서 읽고 있고, 내가 고른 책은 역시나 내가 아는 세계에 갇혀있을 때가 많다. 나도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 내 필요와 의지, 취향과 상관없이 우연히 만난 세계를 탐색하고 싶다. 네가 요즘 뭘 읽고 지내는지, 나에게 어떤 책을 추천하고 싶은지, 너의 생각, 너의 세계가 궁금하다.


지방소도시라 큰도시처럼 책을 주문한 다음 날 바로 오지 않는다. 2~3일은 기다려야한다. 과연 어떤 책을 보내줄까? 은근히 기다려졌다. 오랜 친구가 멀리서 나를 찾아 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독일에서 오래 공부한 친구라 독일 관련된 책일까? 아니면 자신의 전공 또는 하는 일과 관련된 책일까? 아니면 그냥 내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서 막연히 고른 책일까? 여행가기 전날밤처럼 설레였다. 혹시 최근에 내가 사서 읽은 책이 오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요즘 이런 책들을 읽었노라고 책상에 쌓인 책을 찍어서 보내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가 읽은 책과 친구가 읽은 책이 같으면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을 거 같아서다.


드디어 왔다. 비유가 과한 것 같지만 성별 모른채 아이를 출산하던 아침이 생각났다. 택배 봉지를 차분히 뜯지 못하고 칼로 쭉 갈라서 책을 꺼냈다. 꺼내자마자 형광색 표지 디자인에 먼저 반해버렸다. 온통 무채색인 내 주위가 환하게 빛나는 듯 했다. 가볍고 작고 흥미로운 주제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의 책이라 더욱 반가웠다. 게다가 제목부터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왜애? 물론 나도 도서관에 사람이 없으면 너무 땡큐다.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고,적막한 가운데 책을 고르고 읽는 것도 좋다. 그런데 그런 시답지 않은 이유는 아닐 것 같고, 저자의 생각이 아니 친구의 생각이 너무 궁금했다. 새치기를 안 할 수 없네. 읽던 책(무려 사랑의 역사,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있음)을 뿌리치고,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책을 두 권 보냈는데 같은 저자의 책이다. 나도 책이 마음에 들면 같은 작가의 책은 자동반사적으로 사는 편이다. 친구도 나랑 비슷한가보네.


나에게 책은 새로운 세계의 접속을 의미한다. 하물며 남편, 딸, 친구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지방소도시 작은 집에 갇혀 아픈 엄마 수발 드는 귀양살이같은 간병생활에서 만나는 책은 더더욱 그러하다. 한동안은 친히 집까지 찾아온 친구의 세계에서 노닐 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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