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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n 25. 2024

미라클 모닝이 위험하다

오롯이 나로 사는 시간을 찾아서

아빠가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새벽 4시, 여름이 깊어질수록 아빠가 밭에 나가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그에 따라 나도 일어나는 시간이 빨라지고 있다. 조용히 고양이 세수를 하고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서 엄마 쪽으로 가다 엄마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면 멈춰 선다. 멀찍이서 제발… 하는 마음으로 까치발을 들고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엄마 얼굴을 들여다본다. 소 눈처럼 큰 눈을 꿈뻑꿈뻑하고 있다.


아… 망했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엄마가 눈을 못 뜨고 있을 땐 제발 눈 좀 떴으면 했는데, 엄마가 눈을 뜨니까, 눈을 떠도 너무 일찍 눈을 뜨니까 이제 조금만 더 눈을 감고 있기를 바라는 내 마음.


최근 나는 새벽형 인간으로 살고 있다. 아빠가 나가는 소리를 알람 삼아 일어났다. 창밖은 어둑어둑, 태양급으로 나에게 추앙받는 노란빛 스탠드를 켠다. 커피 물을 끓이는 소리에 저 멀리 여명이 밝아온다. 오래된 아파트라 외풍이 심하다. 여름이라도 서늘한 새벽 공기 한 모금,  따뜻한 커피 한 모둠 번갈아가며 마시면서 어슴푸레한 하늘에 이지러진 보름달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미라클 모닝을 시작한다.


미라클 모닝엔 역시 책이지. 책을 읽는다. 그런데 요즘 책이 잘 안 읽히지 않는다. 그래도 책 냄새, 물성을 좋아하니까 읽는 시늉이라도 해본다. 친구가 보내준 책이니까, 친구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억지로라도 읽는 것이다. 그러다가 커피 약발이 떨어진 탓인지, 책이 졸음을 부르는 것인지 눈꺼풀이 내려앉을 무렵, 다시 일어난다. 여름이라 사 오자마자 좋은 말로 숙성되고, 안 좋은 말로 초파리가 꼬이기 시작한 바나나 하나에 아빠가 만들어놓은 쓸데없이 고급스러운 요거트를 얹어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이번엔 유튜브다. 알고리즘에서 추천한 영상 중에 끌리는 걸 하나를 고른다.


‘과학자들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할까?’


물리학자들이 생각하는 죽음은, 모든 것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내 몸속의 원자들이 우주 공간이 흩어지는 거다,라는 하나도 새롭지 않은 소리를 하고 앉아있고, 나는 감히 과학자에게 이죽거리며 그러니까 죽으면 별이 된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거지? 하려고 하는데 거기까지 가지는 않는다. 네, 물리학자가 생각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 잘 들었고요. 하지만 지금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엄마를 돌보는 나에게는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았네요, 혼자 마음속으로 댓글을 달고 영상 보기를 중단한다.


나는 원래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결혼이나 육아는 안 하는 게 좋은 이기적인 인간인데 어쩌다 아이가 생기고 아이를 위해 육아 공동체를 꾸리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를 써왔다. 엄마를 간병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 간병인에서 퇴근하여 나로 돌아와, 나로 사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엄마가 잠이 든 저녁&밤 시간이 안정적이긴 하다. 그런데 요즘 체력적, 정신적으로 소진된 탓인지 엄마가 자면 나도 빨리 자고 싶어서 눕게 된다. 엄마가 자기 전부터 지쳐서 나도 빨리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엄마를 서둘러 침대에 눕힌 적도 있다. 잠으로써 간병인으로서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시작한, 한참 유행하던, 아직도 대세인지 궁금한 미라클 모닝이다. 미라클 모닝은 갓생을 위해서지만 나는 죽을 거 같아서 정말 살기 위해서 했다.


그런데 요즘 엄마가 새벽에 너무 일찍 눈을 뜨니 미라클 모닝이 위험해졌다. 미라클 모닝이 위태로우니 나도 위태롭다.


딸 키울 때 생각난다. 아기 울음소리에 강제로 아침을 시작하고 눈곱 뗄 새도 없이 아이 젖 물리고, 똥 치우고, 세월이 흘러 망각 기능의 도움을 받아 뭐 했는지 디테일하게 생각은 안 나지만 미친년처럼 왔다 갔다 하던 이미지는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아기가 낮잠을 자야 그제야 눈곱 떼고 밥 먹고 책이든 뭐든 뒤적거리고 하고 싶은 걸 하고 보고 싶은 걸 보고 듣고 싶은 걸 들으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 시간에 아기 엄마가 아닌 오롯이 나란 존재로 살 수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로 충격받았던 것은 아기 낮잠 회수가 2번에서 1번으로 줄었을 때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줄어든 시간만큼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지금 딱 그렇다. 엄마가 새벽에 일찍 눈을 뜨는 만큼 내가 사라지고 있다. 엄마가 자꾸 나를 벼랑 끝에 내모는 기분이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어디로 가야 나를 지킬 수 있지? 엄마를 밀어버릴 순 없고 결국 내가 밤으로 가야겠지? 미라클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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