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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n 27. 2024

닭집에서 왜 아이스크림이 나와

진짜일까, 아빠의 자작극일까?

웬만해서 잘 안 열어보는 냉동고에 까만 봉지가 있다. 아빠 소행이 분명하다. 나는 뭐가 들었는지 잘 안 보여서, 뭐라고 찾으려면 일일이 열어봐야 해서 까만 봉지째로 냉동고에 넣지 않는다. 열어보니 아이스크림. 떠먹는 아이스크림 큰 통이 떡하니 들어 있다.


아니 이 아저씨(내가 아빠를 부르는 애? 칭) 보게. 나 몰래 아이스크림을 숨겨놨네.


아빠는 간식류를 좋아한다. 좋아해도 너무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면 애를 울리면서까지 뺏어 먹냐. 우리 어릴 때도 아빠가 우리 과자를 뺏어 먹어서 울었던 기억이 많고, 좁은 집에서 과자 귀신 아빠를 피해 다니느라 힘들고, 엄마는 철없는 아빠 말리느라 힘들었다. 심지어 놀러 온 조카(나에게는 사촌오빠)가 당시에 귀한 아이스크림(당시에 하드라 부름)을 먹는데 뺏어 먹었다는 이야기를 50년도 넘게 아직까지 한다.


하지만 몇 해 전 당뇨 판정을 받고 아빠는 그 좋아하던 간식을 끊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엄마는 아빠 식단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통제했다. 그런데 가끔 엄마가 청소하다가 어느 틈에선가 과자 봉지가 기어 나와서 둘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단다. 엄마에게 혼날까 봐 숨겨놓고 야금야금 먹었던 것이다.


나도 아빠 닮아서 간식에 환장하는데,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몰래 숨어서 먹는다. 친구가 보내준 초콜릿, 캐러멜, 마카롱, 케이크 같은 디저트류를 냉장고 김치통에 숨겨서 냉장고 깊숙이 짱박아 두었다가 아빠 외출했을 때 하나씩 꺼내 먹는다. 몰래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다: 그리고 완전범죄를 위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관리해 왔다.     


그런데 냉동고 중앙에 버젓이 앉아있다가 튀어나온 아이스크림. 아빠도 참. 까만 봉지에 둘둘 싸매놓으면 누가 모를 줄 알았나. 때마침 아빠가 들어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심문을 시작했다.


아빠, 이거 뭐야?

(놀랐지만 차분하려고 애쓰는 눈치) 응, 먹어.

이거 아빠가 산 거야?

아니, 광진이 엄마가 준거야.

광진이 엄마?

광진이 엄마는 닭집을 한다. 생닭, 생오리, 계란을 판다.   

광진이 엄마가 왜 아이스크림을 줘?

그야 주는 모르지. 주니까 받아왔지.


다들  다채롭게 준다. 엄마가 쓰러져 누운 이후로 우리는 정말 다채로운 것들을 받고 있다. 누가 누가 기발하게 주는지 내기라도 하고 있나? 가까이 살면서 직접 농사짓는 분들이 나눠주는 제철 채소부터 가까이 사는 친척들, 엄마, 아빠 친구들이 사서 보내주는 몸에 좋다고 하는 보양식과 건강식품, 자연산삼. 그리고 친구들이 보내주는 디저트와 , 멀리 사는 외삼촌들이 보내주는 돈까지. 그 돈도 참 다양한 방식으로 받고 있다:


그나저나 닭집에서  아이스크림? 닭집에서 아이스크림을 줬다는  뭔가 이상하다. 닭집에서는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는다. 아빠가 지나가길 기다리며 아이스크림을 사놓았을 리는 만무하고, 아빠가 지나가는  보고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싶어서 가게를 비우고 아이스크림을 사왔다는 것도 이상하다. 아님 그냥 뭐라도 주고 싶은데 냉장고에 있는  아이스크림이라서  걸까? 아픈 사람 있는 집이니까 그냥 닭한마리 주는   자연스럽지 않나?


두 번째 이유는 보통 사람들은 몸에 좋은 거, 엄마가 평소 좋아하는 걸 준다. 아이스크림은 좀 거리가 멀다. 엄마는 원래 차고 단 음식을 거의 입에 안 대고, 지금 엄마는 한방 식단에 맞춰 몸을 따뜻하게 하는 음식만 먹고 있다.


과연 아이스크림이 닭집에서 왔을까? 가서 물어볼 수도 없고 궁금하다. 아빠의 평소 행실을 봤을  아빠가 먹고 싶어 몰래 사놓고 엉뚱한 핑계를 대고 있는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어쨌든 집에 들어온 아이스크림 물릴 수도 없고, 맛있게 먹어여지. 아무리 당뇨 신경 쓴다지만 아예   수는 없고,  스쿱은  없고,  스쿱만 떠서 아빠 주고, 나머지는 통째로 모두  차지다. 나만 노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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