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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l 11. 2024

에어컨 없이 살 수 있을까

천국과 지옥 그 사이 어디쯤에서

엄마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선풍기도 아직  꺼냈다. 아직 덥다는 생각  해봤다. (엄마  먹이다 목욕시키다가 운동시키다가 속에서 열불난 적은 있다) 우리 식구 모두 더위를  타긴 한다. 어쩌면  참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남향집에 맞바람이 쳐서 문만 열어 놓으면 바람이 엄청 분다. 바람이 불면 한여름에도 서늘해서   옷을 꺼내 입을 정도다.


문제는 엄마가 와병환자가 되었다는 거다.  한여름에는   돌아다니는 습성이 있어서 엄마 집에도 여름에   기억이 없다. 나보다는 엄마 집에 곧잘 드나들었던 동생에게 물었다. 에어컨 없이에 괜찮을까? 나와 달리 웬만하면 신문물(?!) 들이는 것을 좋아하는 동생이 엄마 집은 여름에도  덥다고, 바람이 엄청 분다고, 에어컨 없어도  거라고 했고,  말을 믿고 아보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정말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필요 없는 집이라는 소결론이다(아직 삼복더위가 남았다). 우리 식구들은 워낙 더위를  타서 그렇다고 치고 객관적인 증언도 곁들여야 말이 좀 될 텐데 방문간호사님이  집은  이렇게 시원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동네 사람들도 와서 그런 얘기를 하곤 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여름에는 명당자리인 셈이다.


지난 주말에 딸이 왔다. 나와 성이 다른 남편과 딸은 우리 종자와 다른 종자다. 더위를 많이 타신다. 그런 분들이  , 하필 장마 중이었고, 또 하필 바람이  불었나 보다.  쿨쿨 자느라 더운지 몰랐다.


엄마, 나 너무 더워서 잠이 안 와. 선풍기 좀 틀어주면 안 돼?


나는 중간에  깨는  너무 못한다. 오랜만에 보는 딸이 더워서 잠을  잔다는데 눈이 떠지지 않았다. 결국 나보다는 딸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남편이 일어나 한밤중에 선풍기를 끄집어내고 조립해서 의 발 밑에 선풍기를 틀어주었다.


엄마, 천국에 온 것 같아. 너무 행복해.


행복하기가 이렇게 쉽나, 자는 중에도 생각했다. 선풍기 하나에 이렇게 행복해하다니. 에어컨이 없이 살면 선풍기에도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좋았다. 남들이  덥다고 난리인데, 우리만 다른 세상에 사는  같았다. 역시 엄마가 남향집 칭송하며, 우리가 이사 가자고 해도 절대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이유가 있었다. 나도 슬슬 엄마 집의 매력에 빠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장마는 우리를 행복에 빠져 살도록 놔두지 않았다. 며칠간 계속되는 장마에 집이 무력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긴 불어도 습한 바람이었다. 덥다기보다 눅눅했다. 아픈 엄마가 젖은 빨래처럼  늘어져 있는데, 다른 것도 죄다 늘어져 있으니 괜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다른   괜찮은데 빨래 냄새가 굉장히 거슬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로 누굴 들일 수 없다. 내일은 방문간호사도 오시지 말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려고 누워서 빨래 싸들고 건조기 있는 친척 집에 갔다 와야 하나, 빨래방이라도 갔다 와야 하나,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떴는데…


 하늘은 뭐냐, 여기 지중해인가, 맑게 개인 파란 하늘에 평화롭게 떠가는 구름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해가 나고, 베란다 물바닥에도 무지개가  것만 같은 분위기다.


우선 빨래를 돌렸다. 급한 옷가지와 수건부터, 그리고 이불도 죄다 빨아 널었다. 세탁기를  판인가 돌렸나. 바람 부는 집은 빨래도 잘 마른다. 집이 다시 환해졌고, 꿉꿉한 냄새도 사라졌다. 축 늘어진 엄마도 다정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 이래서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 .  살게 되어있어. 그런 생각을 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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