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요 Jul 09. 2024

옥수수는 나를 구하게 될까

구황작물의 습격

옥수수의 시간이 왔다. 장날에 나가보니 옥수수가 많이 보이고 여기저기서 맛보기 옥수수를 보내온다. 아빠도 곧 옥수수 수확을 앞두고 있다. 옥수수 수염이 말랐다고 지난 주말에 수확하려고 했으나 옥수수 알이 제대로 여물지 않아 더 두고 보면서 수확할 타이밍을 보고 있다.


우리 집에는 전운이 감돈다.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나와 친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나는 감자, 옥수수 같은 구황작물을 진짜 안 좋아한다. 다들 왜 그 맛있는 걸 싫어하느냐고 하는데 나한테는 정말 맛이 없다. 사람들이 왜 안 먹냐고 물으면 그건 구황작물이지 않냐, 기근이나 전쟁 발생하면 어차피 먹어야 할 테니까 그때 먹겠다. 즉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그런데 엄마 집에 와서 보니 감자와 옥수수를 피할 길이 없다. 엄마, 아빠 모두 감자, 옥수수를 좋아하고, 아빠가 농사도 조금 짓고 있고, 주위에서도 막 보내준다.


피할  없으면 즐기라 했나. 얼마  감자와는 오랜 오해를 풀고 화해를 했다. 주말에 남편이 와서 감자  좋아하잖아, 하면서 감자 먹는  신기하게 쳐다봤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란 말도 모르나. 엄마 집에 오면 어느 정도는 엄마, 아빠 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매일 아침 밥할 때마다 밥솥에 감자를 대여섯 개씩 얹어서 쪄 둔다. 제일 분주하고 당 떨어지는 시간이 아침 시간인데, 밥 하고, 엄마 목욕 시키고, 엄마 밥 먹이다 보면 내가 밥 먹을 짬이 없다. 그렇다고 밥을 거를 수도 없다. 안 먹으면 기운이 없고 신경이 예민해져 엄마한테 더 짜증이 나기 때문에 프로 정신으로 먹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빠르고 맛있게, 영양까지 챙겨서  먹을 수 있는 게 요거트 감자다.


요거트 감자는 궁여지책으로 내가 개발한 건데, 밥풀 묻은 찐 감자를 쪼개서 소금, 후추 뿌리고 그 위에 차가운 요거트를 얹어서 먹는 우리집 신메뉴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만남, 퍽퍽함과 촉촉함의 만남이 조화롭다. 사실 사워크림을 얹어 먹고 싶었는데, 이 시골에서 사워크림을 구할 길 없어 수제 요거트로 사워크림을 만들어볼까 궁리를 하다가 그냥 먹어본 건데, 대성공이었다. 이렇게 먹기 시작한 요거트 감자는 이름처럼 정말 나를 배고픔에서 구하고 있다. 그렇게 열심히 감자를 먹은 결과 감자 박스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고, 좋은 타이밍에 옥수수의 시간이 턱밑까지 다가온 것이다.


옥수수는 감자처럼 서로 거리를 두고 탐색할 시간적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예전에 엄마가 옥수수를 보내줬는데, 내가 좋아하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일주일만에 쪘더니 먹을 수가 없어서 죄다 버린 적이 있다. 옥수수는 따자마자 쪄야 맛있다. 옥수수가 들이닥치면 그냥 돌격 앞으로 해야 한다. 과연 아빠는 언제 옥수수를 딸 것인가? 옥수수도 감자처럼 나의 구황작물이 되어줄까? 결국 나도 옥수수를 좋아하게 될까? 옥수수와의 일전이 다가온다.

이전 08화 좋아도 마냥 좋아할 수 없는데 조금만 좋아할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