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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l 08. 2024

좋아도 마냥 좋아할 수 없는데 조금만 좋아할래

제발 오늘만 같아라

엄마, 하고 흔들어야 겨우 눈을 뜨던 엄마가 스스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눈을 저렇게 잘 뜨고 있으니 새삼 엄마 눈이 참 예쁘다. 내가 엄마 눈만 닮았어도 좋았을 텐데, 이제 그만할 때도 된 생각을 아직까지 하고 있다. 한약을 먹는데,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잘 먹는다. 한약 넘어가는 소리가 이렇게 경쾌하고 기분 좋을 수가. 갑자기 엉뚱하게 소주 따르는 소리가 생각난다. 술 안 먹은지도 오래 되었다. 화장실 가려고 엄마를 일으켰는데, 엄마 몸이 가볍다. 엄마 몸이 가벼우니 엄마 몸을 지지하던 내 몸도 한결 자유롭고 편하다. 화장실에 갔는데, 바로 시원하게 볼일을 본다. 와, 내가 다 시원하다. 샤워를 할 때 엄마가 바로 앉아 있지 못하고 몸이 휘청거려서 한 손으로 샤워기 들고 한 손으로는 몸을 고정시키느라고 샤워가 끝나면 녹초가 되곤 했는데, 오늘은 몸이 휘청이지 않아서 수월하다. 샤워가 끝났는데도 힘이 남아돌아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욕창이 있던 자리에 새살이 돋아 피부가 매끈하고 건강해졌다.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에 새살이 돋는 느낌이다.


매일 밥을 떠 먹여줬는데, 오늘은 밥 숟가락 드는 걸 도와주니 스스로 숟가락질을 한다. 지금은 엄마 밥을 먹이고 나는 나중에 먹는데 엄마가 숟가락질을 하게 되면 나도 같이 밥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엄마에게 오이지 먹을래 매실 장아찌 먹을래 물었더니 오이지 먹겠다고 한다. 내가 올해 처음 담아 성공한 전통식 오이지, 역시 맛있는 건 알아보는 엄마 입은 못 말려. 밥 더 먹을래, 감자 먹을래 했더니 감자 먹겠다고 한다. 밥이 딱 떨어졌는데 감자 먹겠다고 해서 다행이다. 운동할래 했더니 운동한다고 한다. 운동이라고 해봤자 붙들고 서 있는 운동이지만, 운동 끝나면 엄마는 병든 닭처럼 졸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졸지 않는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생생하다. 아침부터 정오까지 잠을 안 자고 깨어있는 것도 병원에서 퇴원한 후 처음이다. 엄마가 자면 늘 외출하는 아빠가 엄마가 깨어있으니 나가지 못하고 당황한다. 안 자? 오늘은 안 졸려? 이게 참 묘한 감정이다. 깨어있으니 좋으면서도 잠을 안 자니 휴식도 외출도 어렵게 되면서 생기는 좋지만 약간은 서운한 감정. 1시가 넘고 점심을 먹고 겨우 재울 수가 있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스스로 눈을 뜨고, 깨어있는 시간도 늘어나고, 스스로 숟가락질도 하고, 화장실에 가서 볼일도 보고, 선택하거나 싫다, 좋다 의사표현도 하고, 전체적으로 몸이 가벼워지고 좋아진 것 같다. 사람이 이쯤 오면 꿈이 아주 소박해진다. 엄마가 눈만 떠도 행복하다. 깨어만 있어도 행복하다. 거기에 말 몇 마디만 해줘도 행복하다. 밥만 잘 먹어도 행복한데, 스스로 숟가락질까지 할 수 있게 되면 더 바랄 게 없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으면 좋겠다. 매번 좋아질 때마다 내일은 더 좋아지겠지, 기대하고 욕심을 부리다가 번번이 실망하고 더 쉽게 절망의 늪으로 빠졌다. 이제는 괜한 기대도 하지 않고, 큰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 그런데 좋아도 좋아하지 못하는 게 너무 슬프다. 내일 다시 나빠져서 슬퍼하더라도 오늘은 좋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방네 다 시끄럽게 안 하고 아주 조금만 좋아하는 티를 내는 건 괜찮겠지? 동생에게만 문자를 남겼다.


오늘 엄마가 조금 좋아진 것 같아. 그런데 또 나빠질 수 있으니 너무 기대하지는 마. 그래도 좋긴 좋다. 오늘만 같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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