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댓바람부터 부르는 노래
하지 이후로 확실히 밤이 길어졌고, 그에 따라 눈 뜨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새벽 5시. 아직 밖이 어둑하지만 아빠는 밭에 갔다. 아빠가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일어나 씻었다. 그리고 어둑한 거실을 지나 엄마에게로 갔다. 엄마도 눈을 뜨고 있다. 엄마? 나직하게 엄마를 불렀다. 응. 들릴 듯 말 듯 엄마도 대답했다. 엄마 손을 잡았다. 땀에 젖어 축축하다.
엄마? 노래 불러 줄까?
대답이 없다. 새벽 댓바람부터 노래라니, 아프기 전 멀쩡한 엄마였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어제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노래 하나를 들었다. 무슨 노래를 들으면 모든 가사가 내 이야기 같을 때가 있다. 그 노래는 어느 부분이 아니라 전부가 그랬다. 엄마를 향한 내 마음을 말하고 있었다. 엄마에게 불러주기로 마음먹었다. 아빠가 있으면 못 부를 것 같아서, 아빠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엄마? 내가 노래 부를 테니까 들어 봐.
바라보는 것도 사랑
기다리는 것도 사랑
그리움에 가슴이 저린 것도
내겐 사랑입니다
계절이 오듯이 그래
매일 숨 쉬듯이 그래
이유 없이 시작한 이 마음은
그래 사랑입니다
나를 살게 하는 사랑 사람
아무 이유 없는 사랑
거기에 있어요
멀어지지 마요
내가 아파할게요
겨우 노래 한 곡 만에 밖이 환하게 밝았다. 내 노래를 듣고 잠이 깬 빛의 신이 내려와 어둠의 장막을 서둘러 걷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아침이 되는 시간은 의외로 순식간이다.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참고, 눈물, 콧물, 슬픔과 고통을 머금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부르다 보니 ‘나를 살게 하는 사랑’이 ‘나를 살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는 나를 살게 하는 사람이었다. 죽을 것처럼 힘들어도 엄마 목소리만 들으면 살 것 같았다. 엄마는 나의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였다. 나는 엄마가 내가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기댈 수 있도록 늘 그 자리에 서 있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엄마는 한순간에 쓰러지고 서서히 무너졌다. 지금은 모든 것을 나와 아빠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말도 못하니 엄마가 어떤 상태인지도 알 길이 없다. 지금은 나를 살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죽게 하는 사람이다. 엄마를 일으키다가 엄마 몸이 나를 덮쳐 죽을 것 같다. 엄마 목을 마사지하다가 내가 미쳐 돌아 엄마 목을 조르면 어쩌지, 무서운 생각에 휩싸인 적도 있다. 저 노래를 들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장 엄마가 나에게 주는 고통과 두려움을 넘어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시 상기시켜주는 노래였다. 그래, 엄마는 나를 살게 하는 사람이었지. 지금은? 여전히 그렇다. 엄마는 나를 살게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지루하고 답답하고 힘든 일상에 묻혀 엄마라는 존재의 의미를 자꾸 쉽게 잊는다. 매일 아침 이 노래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나에게,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다. 엄마는 나를 살게 하는 사람이라고. 물론 뒤돌아 서면 또 잊을지도 모르지만, 엄마 때문에 죽겠다는 곡소리를 하겠지만,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노래를 부르면서 하루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애절한 나의 노래가 끝났는데, 엄마의 반응이 없다. 나는 생색내기 좋아하는 인간이다. 엎드려 절 받기라도 해야겠어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노래 잘하지?
그러게, 잘하네.
에게, 반응이 그게 뭐야? 우리 딸 노래 참 잘 하네, 해야지.
또 대답이 없다. 이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