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는 사람의 파리 올림픽 개막식 소감
원래 올림픽에 그렇게 열광하는 편은 아니다. TV를 틀면 채널마다 다 올림픽이니까 누가 보면 옆에서 보긴 봐도, 메달 따면 좋아하긴 해도 일부러 찾아보거나, 각 잡고 몰입해서 보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은 기대가 되고 기다려졌다.
집에서 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간병인 가족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이벤트는 없을 거 같다. 집에서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매일매일 새로움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이제껏 개막식을 제대로 챙겨본 적은 없었지만, 에펠탑 앞에서 뭘 한다느니, 센 강에서 뭘 한다느니 하길래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개막식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프랑스가 프랑스했네.
일단 뻔하지 않아서 좋았다. 난 뻔한 건 질색이다. 늘 새로운 것을 열망하고, 새로운 시도에 늘 열광한다. 한참 일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일터에서도 늘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움을 추구했고,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피곤한 인생을 살았다. 이번 개막식이 딱 그랬다. 도대체 이게 뭐지? 도시 전체를 배경 삼는 자신감(우린 가진 거 이렇게 많아) 한강에 비해 작다고 우리가 동네 개천만도 못하다고 하는 센 강을 무대로 활용하는 창의성(우린 차원이 달라), 매 순간 고정관념을 깬 파격의 연속, 정해진 순서를 따르지 않아 다소 산만한 동시다발성이 나는 좋았다. 자주 정전이 되는 파리 지하철, 오페라의 유령이 생각나는 지하세계의 호수, 파리의 지붕을 겅중겅중 뛰어다니면서 성화를 옮기다가 결국 열기구를 띄우고 마는 성화 봉송 방식도 좋았다. 대신 주최 측에 감정 이입되어 준비하고 연출하는데 너무 힘들었겠다는 생각, 뒷전 취급 당한 파리 시민들의 불편과 불평불만이 대단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두 번째는 집구석에서 파리를 여행하고 파리가 자랑하는 문화예술 공연을 관람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에펠탑, 콩코드 광장, 루브르, 그랑 팔레, 콩코드 광장, 노트르담 성당 등 파리의 아이코닉한 장소와 건물에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어린 왕자, 카르멘을 비벼 넣고, 황금색 계단을 배경으로 핑크 깃털을 한 레이디 가가 공연, 하루 문 닫고 총출동했다는 물랑루주 캉캉춤, 잘 모르지만 메탈 밴드 공연, 잘 몰랐던 파리의 여성 인물들을 알게 되는 것도 재미였다.
추억 여행을 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내가 파리를 여행할 때도 추적추적 비가 왔다. 내 몸 만한 배낭을 메고 꼬질꼬질한 행색으로 바게트 하나 사서 걸어 다녔던 파리 거리가 생각나고, 비에 젖은 눅눅한 바게트 맛이 생각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 하룻밤 만에 서로 취향이 같아 썸을 타며 루브르 박물관에도 같이 갔지만, 각자 갈 길이 달라(정확히는 유레일 패스 탓) 헤어졌던 그 남자가 생각났는데, 그도 파리 올림픽을 보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사랑을 등장시킨 것도 좋았다. 도서관에서 썸 타는 사람들, 셀린디옹이 부른 사랑의 찬가, 파리는 사랑의 도시야. 설마 파리에서 운동만 하다 갈 건 아니지?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덤으로 이번 올림픽이 중복에서 말복 사이에 열린다. 말복이 지나면 공기가 달라진다. 겉으로는 더울지는 몰라서 속 공기에는 선선함이 깃든단 말이다. 올림픽 보다 보면 어느새 무더위는 가고 또 다른 시간이 내려앉게 된다.
엄마, 지금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 해. 엄마 파리 가봤어?
아니, 안 가봤어.
죽기 전에 파리 한번 가봐야지.
뭐... 그래야지.
기적이 일어나서 예전의 말 많고 다정하고 부지런한 엄마로 돌아온다면 파리에 꼭 데려가고 싶다. 가서 파리 올림픽 때 덥고 답답하고 힘들어 죽을 뻔했는데, 올림픽 보는 재미에 숨통이 트였다며 회상하고 싶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온다는 걸 느껴보고 싶다. 앞으로 올림픽 열심히 보고, 개막식은 몇 번 더 돌려볼 것 같다. 대신 화질 좋은 큰 화면으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