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말들이 가득 담긴 계란 한 판
예정에 없이 만난 사촌오빠가 갑자기 줄 게 없다면서 자기도 선물 받은 초란 한 판을 차에서 꺼내 내 품에 안겨주었다.
이거 초란이야. 작은 엄마 삶아드려.
닭을 키운 분이 누군지 모르지만, 닭이 처음 계란을 낳을 때마다 한 알 한 알 소중하게 모아 한 판을 만들었을 것이다. 오빠에게 선물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초란을 선물하는 그 마음은 조금 안다. 그 초란을 본다.
귀하다, 정성스럽다, 앙증맞다, 다소곳하다, 사랑스럽다, 귀엽다, 예쁘다, 올망졸망하다, 따뜻하다, 다정하다…
가만히 초란을 보고 있자니 예쁜 말들이 잔뜩 떠올랐다.
간병이 길어질수록, 엄마가 병세가 안 좋아질수록, 엄마의 몸이 무거워지고, 내 손목이 시큰거릴수록, 장마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수록, 한숨과 짜증과 험한 말(마음)의 횟수와 강도가 늘어간다.
처음엔 엄마가 걱정할까 봐 엄마 앞에서는 한숨도 내쉬지 못했다. 지금은 한숨을 달고 산다. 덥다, 짜증 난다, 말 좀 해라, 오늘은 왜 또 그러냐, 매일 잠만 자냐(잠은 나중에 많이 잔다), 손목이 시큰거린다, 머리 아프다, 허리 다치겠다, 운동하지마라, 엄마 이러면 내가 너무 힘들다…그리고 속으로는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다는 말도 몇번을 했다. 이제 엄마에게 나던 짜증이 아빠에게로 옮겨 갔다. 아빠가 휴대폰으로 이상한 음악을 들을 때마다 소리 질렀다.
아, 시끄러워. 그거 좀 꺼.
못된 말과 나쁜 마음이 폭주를 할 때, 제동을 걸어주는 것이 엄마를 향한 주위의 마음들이었다. 그 마음들을 생각하면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만인의 연인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엄마를 내가 이렇게 막 대하면 안 되는데…
오늘은 오빠가 건넨 초란이 품은 예쁜 말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엄마가 나에게 했던 예쁘고 다정한 말들이 생각났다. 엄마는 내가 뭔짓을 해도 나에게 험한 말 한번 없이 예쁜 말로만 나를 키웠다. 우리부터 귀한 사람 대접해야 나가서도 사랑 받는다고 딸이라도 함부로 대하거나 말한 적이 없고, 늘 다정하고 따뜻한 말만 해주었다. 그런데 나는 뭔가. 엄마 좀 아프다고, 엄마의 몸과 마음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고, 엄마가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엄마 돌보느라 몸 좀 아프다고 이렇게 돌변하나. 입장 바꿔서 내가 아팠다면 엄마가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본다. 의심할 여지없이 엄마는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정성껏 돌봤을 것이다. 엄마처럼은 못할 망정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한숨이 아니라 심호흡을 하자. 그리고 머리를 맑게 하고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 예쁜 말을 해보자.
귀한 사람 우리 엄마,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엄마,
없는 살림에도 나를 부잣집 딸처럼 정성스럽게 키우고 세상 귀하게 대해준 엄마,
짜증내서 미안해.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볼게.
다시 노력해 볼게.
엄마 미안해.
엄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