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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Oct 29. 2024

딸은 되고 엄마에게는 왜 안 되는가

귀여우니까 됐다

엄마 손목 나갈까 봐 그랬나, 이유식 따윈 건너뛰고 젖 먹다 바로 밥으로 직행한 아이,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아침밥을 챙겨 먹는 아이,

한국인은 밥심이라며 삼시세끼 웬만하면 밥을 고집하는 아이,

엄마가 비실대면 밥을 제대로 안 먹어서 그렇다며 제때 밥을 챙겨 먹으라고 잔소리하는 아이,

고봉밥을 퍼주면 밥알 한 톨까지 깨끗하게 먹는 아이,

학교 급식에서 밥 좀 더 달라고 애원하는 아이,

밥을 잘 먹어서 그런지 군것질을 잘 안 하는 아이, 그런 아이가 내 딸이다. 소싯적에 나는 밥을 잘 안 먹어서 엄마 속을 애태웠다. 그런 내 속에서 나온 아이는 스스로 밥을 잘 먹고 건강하니 어떻게 안 예쁜가.


밥 먹는 게 너무 예쁘고 밥 잘 먹는 게 너무 고마워서 수시로 말한다. 너에게 가장 고마운 건 밥 잘 먹는 거다. 네가 제일 예쁠 때는 밥 잘 먹을 때다. 딸에게 하는 말이 모두 진심은 아니지만 이 말만큼은 10000% 진심이다.


그런데 엄마에게는 왜 이런 마음이 안 드는가? 지금 내가 돌보는 엄마도 삼시세끼 밥을 꼬박꼬박 잘 먹는다.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에도 잘 먹었고, 쓰러지고 난 뒤 심지어 수술하고 중환자실에서도 밥을 먹고, 병원에 입원해서도 잘 먹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꼬박꼬박 잘 먹고 있다. 의식은 흐릿하고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가고 말은 한마디도 못 할 때가 많지만 끼니를 거른 적이 없다. 삼시세끼 꼬박꼬박 죽이 아닌 밥으로, 환자식이 아닌 평소 먹던 대로 밥을 먹는다. 이렇게 잘 먹으니 내가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밥 해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삼시세끼 열심히 해먹인다. 그런 엄마는 왜 딸처럼 예쁘고 고맙다는 생각이 안 들까?


딸이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먹어도 고맙고 줄줄 흘리면서 먹어도 예쁜데, 엄마에게는 왜 그런 마음이 안 드는가.

왜 나는 엄마에게 빨리 먹이려고만 하는가.

엄마가 먹다가 흘리면 왜 짜증이 나는가.

밥이라도 잘 먹어서, 잘하는 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다가도 가끔 밥만 잘 먹으면 뭐 하나, 밥만 먹고 살만 쪄서 그 무게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닐까 못된 생각이 자꾸 삐져나온다.


똑같이 밥 잘 먹는데 딸과 엄마를 바라보는 마음은 왜 이렇게 다른가.

그 마음의 간극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내리사랑이라 그런가.

엄마를 딸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알게 모르게 내 의식 속에 노화, 병, 장애, 죽음에 대한 혐오가 깃들어 있는 건 아닌가.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먹으려고 아빠가 친구에게 얻어온 왕대추를 씻어와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대추 먹을 거야?


대답이 없다. 이럴 줄 알았다. 어차피 대답을 기대한 것도 아니다. 습관적으로 또 물었다. 어차피 대답이 없을 줄 알면서.


대추 하나 먹을 거야? 두 개 먹을 거야?


엄마의 입이 뭘 말하려는 건지 대추를 먹으려고 시동을 거는 건지 움찔거렸다.


두 개 먹을 거야.


 터졌다. 아빠는 허허, 웃으면서   먹보네, 했고, 나는 대추  알을 손에 쥐어 주면서 엄마 뚱보네, 했다. 대추를 아슬하게 보이지만 야무지게  손을  가까이에 끌고 올라가니 입이 앞으로 마중을 나오고 손에  힘을 모아 입으로 가져가 마침내 윗니 아랫니 사이에 대추를 물고 아삭,     베어 오물오물 씹어 먹는데,  아줌마 뭐냐. 다람쥐냐,  이렇게 귀엽냐! 예쁘고 고마운 마음은  들었지만 귀여우니까 됐다. 귀여우면  이긴 거다. 엄마의  마디에 죄책감과 괴로움으로 힘들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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