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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Nov 06. 2024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늙고 병들고 아픈 엄마를 돌보는 일,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 먹는 것 외에 신체적, 정신적, 언어적 능력을 모두 상실한 엄마와 하루종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괴롭다. 점점 나빠지는 엄마를 보는 것은 고통스럽고, 옆에 묵묵하게 있는 아빠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문득 속에서 알 수 없는 화가 치밀고 욕지기가 올라오기도 했다. 가장 위기는 한 여름 한 가운데였다.


더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더웠던 역대급 더위, 에어컨도 없는 엄마 집, 따뜻한 물로 엄마를 씻길 때마다 내 몸에는 땀인지 뭔지 모를 액체가 줄줄 흘렀고 숨이 턱턱 막혔다. 엄마를 씻기고 아빠에게 떠밀듯이 넘겨 놓고 나는 대자로 드러누웠다. 욕이 나올 것 같아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간 적도 있고, 도망가듯 발에 걸리는 대로 주워신고 집을 뛰쳐나간 적도 있다. 그러니 죽으란 법은 없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는 물러났고, 가을이 오는 둥 마는 둥 단풍이 드네 마네 해도 가을은 가을이다.


아픈 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엄마 집에 내려오게 된 것은 엄마의 재활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포기한 엄마를 용하다는 한의원에 끌고 가서 한의원의 처방에 따라 약을 먹고 집에서 재활을 시작했다. 한의사의 지침대로 매일 따뜻한 샤워와 마시지를 했고, 하루에 여섯 번까지 한약을 먹었고, 먹으라는 대로 삼시세끼 해먹였고, 틈나는 대로 열심히 일으켜 세웠고, 아빠와 내가 앞뒤로 잡고 화장실에 데려갔고, 보행기에 의지하여 걷기도 했다. 엄마 재활을 위해 안 쓰던 몸을 쓰다 보니 처음엔 등에 담이 결렸고, 손목에 무리가 왔고, 그다음엔 허리를 삐끗해서 고생을 하고, 지금은 발목이 욱신욱신 쑤시고 아프다. 엄마의 무게가 내 몸에 실리면서 몸의 이곳저곳에 무리가 가고 말썽이 시작됐다. 이러다 다치면 모든 게 끝난다는 생각에 무섭기도 했고 이렇게 만든 엄마를, 나를 방치한 아빠를 원망하기도 했다. 내가 아프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 내가 아프면 그 짜증과 화가 결국 엄마와 아빠에게 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몸을 쓰는 일을 멈추었다. 냉정하게 재활은 포기하고 먹고 씻기고 재우는 것만 한다. 몸을 안 쓰는 만큼 아프던 곳은 회복되었고 이제 딱히 아픈 곳은 없다.    


좁고 답답한 집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아프기 전까지는 작은 집, 좁은 집에 대한 불만이 1도 없었다. 엄마와 나는 단칸방에 다섯 식구 살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집의 크기는 우리의 행복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좁은 곳에 복닥거리고 살 때가 좋았다. 하지만 엄마가 아파 누워 있으니 서로의 거리를 허용할 수 없는 좁은 집이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았다. 넓고 쾌적한 집으로 옮겨 가면 이 답답함이 사라질 것 같았다. 동생의 설득과 도움으로 넓은 신축 아파트로 옮겨왔다. 방이 남아돌고 주방과 거실은 광활하고, 말 그대로 앞에 아무것도 없는 뻥뷰다.


더위는 스스로 물러났다. 엄마 재활에 몸 쓰는 일을 중단했다. 그리고 이제 넓은 집에 살게 되었다.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런데도 내 기분은 왜 이 모양인가. 말은 퉁명스럽고 행동은 거칠고 시시각각 짜증이 올라오고 가끔 알 수 없는 화가 치민다. 결국 내 기분과 상태는 더위 때문에 아픈 몸 때문에 좁은 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마음의 문제였다. 외부의 환경이 아닌 본질적으로 내가 엄마를 돌보는 일에 대한 문제였다.


기로에 놓여있다. 매일 화가 난다면, 계속 무엇을 탓하고 있다면 직접 돌봄은 멈춰야 할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을 무리하지 않고 과정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결과에 대한 모든 마음을 비울 수 있을 때만이 계속 돌봄이 가능하다. 앞으로 한 달간 나의 상태를 지켜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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