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페이지들이 나에게 왔다
엄마 간병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고, 창 밖으류 저 멀리 둥둥 떠다니는 구름을 많이 보게 된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구름을 많이 보다 보니 구름관찰자나 구름연구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쓴 책 두 권 중에 뭘 살까 고민하다가 한 권을 정하고 인터넷서점에서 구입했다.
책이 나에게 오기까지 하루라는 시간이 걸린다. 구름 책을 보면 구름을 보는 눈이 생기고, 구름 눈이 생기면 조금 더 행복해지고 조금 더 행복해지면 엄마도 더 잘 돌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기다림과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찬 하루가 지나구 드디어 책을 받아서 펼쳤는데, 이게 웬일인가. 총 10쪽이 비어 있다. 처음 빈 페이지가 나왔을 때는 일부러 어떤 의도로 비어놓은 거라고 생각했고, 그 의도를 알아낼 마음에 신이 날 뻔 했는데 빈 페이지가 두 번 세 번 네 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를 돌보는 내 마음이 조금 더 행복해져서 엄마를 잘 돌보고 싶었던 마음은 차갑게 식었다. 괜히 괘씸한 마음이 더 들어 책을 교환하지 않고 그냥 반품해버릴까 고민 중이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책이 왔을까? 내가 혹시 심심할까봐 누가 걱정이라도 하셨나? 아니면 비어있는 페이지는 누군가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인가? 뜬구름 잡지 말고 마음을 비우라는 의미일까? 괜히 생각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