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엉 울었다
엄마는 감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 감나무 한 그루 있었으면 했다고 했다. 남의 집 담 넘어 감나무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했다. 시골에 살면서도 그 흔한 감나무 한 그루 없는 가난한 살림이었다.
엄마의 감나무 타령을 듣고 자란 나는 작은 집을 짓고 손바닥만한 마당에 감나무를 심었다. 엄마는 감나무를 어루만지면서 부자가 된 것 같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나무를 심는다고 감이 바로 달리는 게 아니었다. 나무 심은 지 두 해를 넘기도록 감 하나 달리지 않았다. 키만 쑥쑥 크고 가지만 무성해질 뿐이었다: 나무도 이사를 오면 땅에 적응하느라고 에너지를 쓰고 이제는 살만 하다고 느낄 때 열매가 달리는가 보다 했다.
드디어 3년째였던 작년에 너덧 개의 감이 달렸다. 그 중에 잘 익은 감 두 개를 엄마에게 가져왔는데 엄마는 무슨 명품백을 받은 거마냥 좋아했다. 엄마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아 좋았다. 나는 엄마가 죽으면 감나무 아래 묻어주겠다고 했고 엄마는 좋다고 했다.
올해 처음으로 수십 개의 감이 달렸다. 남편이 감을 따서 가지고 왔다. 감이 담긴 탐스러운 바구니를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감이 이렇게 많이 열렸는데, 이제 진짜 부자가 됐는데 엄마는 병들고 아파서 누워 지내는 신세다. 엄마가 말을 못하니 어느 정도 인지하는지 몰라서 답답하고 속상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엄마가 잘 먹는다는 사실이다. 잘 익은 감을 반으로 갈라 숟가락으로 감을 푹 떠서 입에 넣어줬다. 역시나 잘 먹는다. 엄마가 감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거리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못)했다.
어머나, 세상에, 이 귀한 거, 이 예쁜 거 좀 봐라. 아기 뺨처럼 야들야들 탐스러운 거 봐라. 잘 익어서 냄새부터 향긋하잖니! 보기만 해도 벌써 배부르고 부자가 된 것 같다. 어디 가서 이런 걸 먹어 보니! 농약도 안 하고 해와 바람만 익은 거 아니냐. 설 익은 거 따서 익힌 거랑은 차원이 다르지. 어쩜 이렇게 달고 맛있니! 잘 익으면 이런 깊은 맛이 나는구나. 이건 감이 아니라 보약이다 보약! 엄마는 하나만 먹으면 됐다. 너 많이 먹어라. 우리 딸 좋은 거, 예쁜 건 너 많이 먹어라!
이렇게 말하던 엄마! 감 하나로 천 번 만 번 옆에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던 엄마의 입은 꾹 닫혀 열릴 생각을 안 한다. 엄마의 말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우리는 여기에 있는데 어디로 가서 누구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을까. 제아무리 잘 익은 감이라도 입맛이 당기지 않고, 몇 개씩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다. 감이 많으면 뭐하나. 부자가 되면 뭔 소용인가. 엄마가 이 모양인데. 엄마의 말들이 고프다. 그 말들이 그리워서 이불을 덮어쓰고 엉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