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동생에게
주말마다 동생이 왔다 간다. 이럴 땐 혼자인 동생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늘 옆에서 엄마 간병과 집안 살림을 함께 하는 아빠도 있지만 주말마다 와서 궃은 일, 잡일을 해주는 동생에게는 또 다른 고마움이 있다.
금요일 저녁 동생의 카톡이 왔다. 내일 뭐 사갈까? 동생이 주말마다 장을 봐 온다. 소꼬리, 양지머리, 두부, 고등어, 양파, 생강, 청주, 빨랫비누라고 남겼다. 토요일 아침 커다란 장바구니를 들고 나타난 동생이 장 봐온 것을 식탁에 펼쳐 놓았는데, 제사에 쓰는 선물용 청주를 사 왔다. 난 요리용 청주를 사 오라고 한 건데, 하면서 쓰던 병을 꺼내서 보여줬더니, 아, 청하, 그럼 청하라고 했었야지 한다. 가끔 이런 일이 있다. 내가 의도한 것과 다른 것을 사 올 때가 있다. 지난주에는 흑백요리사 이모카세의 김을 만들어 보자며 김을 사 오라고 했더니 김밥용 김을 사 오기도 했고. 하긴 10년 넘게 살았던 남편과도 그런 일이 왕왕 발생하는데 겨우 1년밖에 안 된 우리에게 이 정도면 양반이다.
동생은 집에 오면 나의 조수가 되어 일한다. 이번 주에는 아빠가 농사지은 총각무와 쪽파를 수확해서 생애 최초 알타리김치와 파김치를 담갔다. 동생이 알 타리를 씻고, 내가 옆에서 다듬고, 동생이 마늘을 찧고 나는 양념을 만들었다. 엄마가 아프니 우리 남매가 이렇게 저렇게 살림을 꾸려가는 것이 때로는 서글프기도 하고, 아주 조금은 재미있기도 하다. 거의 남남처럼 일년에 한두 번 볼까말까 했던 우리가 엄마가 아프니 속은 아파도 사이 좋게 지낸다.
엄마가 보기에는 어떨까? 내가 알던 사람, 우리 엄마라면 각자의 일상을 멈추고 엄마 옆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엄마 옆에서 이러고 있는 것이 엄마를 고문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니라 치매, 알츠하이머로 인해 인지에 문제가 생긴 새로운 엄마로 생각해 본다면 조금 다를 것이다. 엄마라는 역할에서 자유로워진 새로운 엄마라면 우리 남매가 엄마 옆에서 알콩달콩 이러고 있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르겠다.
동생은 일요일 저녁, 설거지까지 다 마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엄마의 평생 과업이던 입 짧은 동생 먹일 생각으로 만든 반찬과 과일을 가방에 미리 싸둔다. 동생과 엄마는 늘 실랑이를 벌였다. 엄마는 바리바리 싸서 보내려고 하고 동생은 안 가져간다고 하고. 하지만 엄마가 아프고 나서 내가 싸준 반찬 가방을 동생은 순순히 들고 간다. 가방을 들고 자는 건지 깨어있는 건지, 어찌 보면 꺼지기 직전의 불꽃처럼 힘없이 앉아있는 엄마에게 가서 엄마 어깨를 툭툭 치면서 인사를 한다. 엄마, 나 간다. 주말 내내 한 마디도 안(못) 했던 엄마의 대답은 기대하지 않고 등을 돌렸는데, 엄마가 말했다.
어여, 가...잘 가...
동생이 깜짝 놀라 멈춰 서서는 아유, 깜짝이야, 잘 가라고? 웬 일로 잘 가라고 하네, 했고, 나는 엄마한테 왜 안 하던 짓을 해. 애 놀랐다잖아. 타박을 했더니 엄마가 또 웬일로 웃는다. 아빠는 아이처럼 신이 나서 엄마를 붙들고 지금 뭐라고 했어? 잘 가라고 했어? 별 일이네, 인사를 다 하고? 엄마 쓰러지고 10년은 늙은 것 같은 아빠의 얼굴이 1년은 젊어진 느낌이다. 잘 가라는 말이 이렇게 좋을 수도 있는 건가? 나는 좋으면서도 왠지 모르고 속에서 올라오는 울음을 삼키느라 애를 먹었고, 모르긴 몰라도 동생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눈물을 삼키고 간만에 엄마 목소리를 듣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 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