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저절로 눈이 떠졌다. 한동안 한없이 눈꺼풀이 무거워 눈꺼풀을 올리느라 애를 먹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가볍게 눈이 떠졌다. 내가 눈을 떴다는 것,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기도 하고 불행이기도 하다. 다행인 것은 내가 눈을 뜨면 딸이 눈 좀 떠보라고 애원하고, 애태우게 만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에서 딸을 속상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싫다. 불행인 것은 눈을 떠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하나 없이 온전히 남편과 딸의 돌봄에 의지하여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매일 생각하고 되뇌어본다. 나에게 왜 이런 고통과 시련이 닥쳤는지, 내 식구들은 또 무슨 죄가 있는가. 나는 아니 우리 가족 모두는 하나같이 바보 소리 들을지언정 착하게 살았던 것 같은데, 누구에게 해가 되거나 원한 산 일도 없이 평생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잘 살았던 것 같은데 왜 이런 끔찍한 형벌을 받고 있는가. 나는 뇌출혈 수술 후 큰 후유증으로 스스로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와상환자가 되었다. 몸만 그런 게 아니다. 기억도 어느 날 툭 잘려 나갔고 의식도 희미해지고 점차 말도 잃어버렸다. 눈은 떠도 스스로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고 싶다고 일으켜 달라는 말도 못 한다. 이것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루아침에 벌레가 된 느낌이다. 잠이 들 때마다 수신인불명의 기도를 한다. 차라리 이대로 눈이 떠지지 않게 해달라고. 이대로 심장이 멎게 해달라고. 하지만 오늘도 눈이 떠지고 말았다.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남편이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아마 밭에 갔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나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면서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살피곤 했다. 내가 눈을 뜨고 있으면 일어났어? 하고 다정하게 말을 걸던 남편, 아이들을 키울 때도 하지 않았던 다정함을 나에게 주던 남편이었다. 딸이 일어나기 전에 나를 껴안고 내 가슴과 배를 주무르고 입 맞추던 남편, 나가기 전에 밭에 갔다 올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다정하게 속삭이면서 나가던 남편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남편의 다정함이 옅어지고 있다. 그런 남편을 원망하지 않는다.
누워서 빛의 변화를 감지한다. 빛으로 해가 떠오르는 방향과 온기를 느낀다. 해가 창문 앞까지 와서 내 얼굴에 한 줄기 빛이 떨어졌을 때 딸이 나에게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걷는 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안다. 걸음걸이를 들으면 딸의 기분도 알 수 있다. 오늘도 딸의 기분이 썩 좋은 것 같지는 않다. 문이 열렸다. 딸 특유의 체취가 밀려 들어왔다. 딸에게서 호텔 비누 냄새가 나곤 했는데 최근에는 비누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 비누 냄새가 그립다.
있는 힘껏 눈을 치켜뜨고 딸을 쳐다보았다.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대소변이 함께 나올 것만 같아서 일어나고 싶었다. 기저귀에 실례를 하는 건, 그걸 딸에게 치우게 하는 건 정말 질색이다.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면 그래도 딸이 덜 수고스럽다. 하지만 다시 문이 닫히고 말았다. 딸은 요즘 혼자 나를 일으키지 않는다. 남편이 들어와야 함께 나를 일으키고 화장실에 데려갈 수 있다. 얼마 전부터 딸은 손목과 발목이 욱신거리고 아프다고 했다. 한숨도 잦아지고 짜증도 늘었다. 딸이 아프다고 할 때마다 내 마음이 찢어진다. 내가 딸을 아프게 만들고 있다니. 내가 딸을 힘들게 하는 존재라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다.
딸의 다정함은 남편보다 더 먼저 사라졌다. 처음에 나를 아기처럼 만졌던 다정하고 세심한 손길은 느껴지지 않는다. 따뜻한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말만 건조하게 하고 많은 경우 퉁명스럽다. 언제부터인지 차갑게 식어버린 남편과 딸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게 차라리 내 마음이 편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이만큼의 돌봄도 고마운 일이고, 아니 고맙다기보다 미안해서 죽을 지경이다. 딸과 남편을 힘들게 하지 않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딸이 밥을 안친 것 같다. 밥솥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도마에 뭔가 써는 소리도 둔탁하게 들린다. 써는 소리만 들어도 딸의 기분을 알 수 있다. 저렇게 부주의하게 칼질하다가 고운 손을 다칠까 봐 걱정이다. 키울 때 어렵고 빠듯한 살림에도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키웠다. 늙어서는 자식들에게 정말 짐이 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용을 썼는데 결국 딸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한심하고 염치없다. 이 와중에 밥 냄새가 난다. 무슨 염치가 있다고 침이 고이나? 먹고살겠다고 입맛을 다시는 나 자신이 싫다. 곡기를 끊어 죽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건 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불쌍하고 가엽다. 지금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딸이 주는 대로 잘 먹는 것이다. 식충이 같아 슬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어 다행스럽기도 하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 보기 위해 상상해서 써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