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요 Nov 14. 2024

흑의사가 집으로 왔다

일차의료 방문진료수가 시범사업이라 불리는 왕진

얼마 전부터 엄마 다리의 부종이 심해졌다. 자고 일어나면 홀쭉하고 가벼웠던 다리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 보면 코끼리 다리가 되어 있었다. 예전에도 다리가 붓긴 했어도 마사지를 하고 족욕만 해도 금방 부종이 사라졌는데, 이번에는 아무리 해도 부종이 나아지지 않았다.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거동이 어려운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는 일이란 쉽지가 않다.


일단 우리가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아빠 차는 픽업트럭이어서 엄마를 태우기에는 너무 높다. 남편 차는 SUV여서 역시 엄마를 태우기 어렵다. 엄마를 태우려면 세단이 필요한데 동생이 휴가를 내고 와야 한다. 아니면 사설 앰뷸런스를 부르는 방법이 있지만, 응급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비용을 물어야 한다. 고민을 하던 중에 방문간호사 소개로 방문진료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옛날에 왕진이라 불리던 것이다. 말 그대로 가서 진료한다는 의미다. 여러 가지 이유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왕진의 정식명칭은 '일차의료 방문진료수가 시범사업'이다. 공급자 입장에서의 이름이다. 이름에 딴지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쨌든 내용이 중요하니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방문진료를 하는 한의원이 있어서 신청했다. 신청했다고 바로 올 수 있는 것은 아니고(응급환자는 안 된다는 것) 일주일에 한 번 정한 날, 정한 시간에만 가능했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많이 봐도 30대 초반인 한의사가 올블랙의 옷에 백팩을 메고 나타났다. (한)의사=하얀 가운의 스테레오타입이 있어서 올블랙의 트렌디한 의상이 좀 낯설었다. 마실 것 좀 드릴까요, 했더니 아니라고 말하고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가방을 조심스럽게 열더니 가방에 든 것을 하나씩 꺼내서 의자에 늘어놓았다. 그러니까 백팩은 왕진가방이었다. 나에게 의료정보동의서를 내밀어 사인을 요청하고, 혈압부터 재고 역시 퉁퉁 부어있는 엄마 다리를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심한 부종은 아니라고 했다. 심한 부종인 경우, 색깔도 붉게 변하고 눌렀을 때 다시 원자리로 회복이 잘 안 되는데 그 정도 심한 상태가 아니라고 했다. 그것만으로는 너무 심심하다고 생각했는지 작은 기계를 꺼내 다리를 살펴보았는데, 그게 초음파로 다리 내부를 살펴본 것이라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침을 맞으면서 다리 마사지를 사용하여 관리를 하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방문간호를 가능하게 하는 방문간호지시서도 써주었다.


오늘 왕진은 우리에게 흑기사 같은 존재였다. 우리의 불안함과 어려움을 일시에 해소해주었다. 솔직히 침의 효과는 잘 모르겠고, 다리 부종이 그렇게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 우리를 한결 안심시켰다. 엄마 다리 부종으로 아빠와 내가 서로 예민해져있던 것도 누그러졌다. 1회 왕진에 3만 700원이었는데, 우리가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는 어떤 방안보다도 적은 비용이다. 취약계층이나 의료지원을 받는 대상이면 금액은 만원 이하로 내려간다. 알고 보면 이런저런 복지 지원이 많은데 문제는 아는 사람만 안다는 사실이다.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필요한 때 필요한 정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방문간호사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는 수준의 이동을 했어야 했다. 아플 일 없어서 잘 몰랐다가 엄마 간병의 세계로 들어오고 나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나 복지제도에서 쓸만한 것을 종종 발견한다. 정보 전달 체계만 조금 개선된다면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전 09화 나는 치매 걸린 엄마입니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