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생존의 기술
몇 년 전에 퇴사하고 딸과 유럽 배낭여행을 갔다. 그때 나 혼자 굉장히 흥분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성당 근처에서 작은 시계 가게 ‘스와치’를 발견했을 때였다.
대학생 때 알바해서 겨우 모은 돈 300만 원으로 유럽여행을 떠났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었고, 지도와 여행자수표와 시계를 들고 여행하던 시절이었는데 여행 중에 시계가 사라졌다. 어디에 두고 온 건지 도둑맞은 건지조차 알 수가 없어 공황 상태에 빠졌다. 하긴 어디에 두고 왔다고 해도 하룻밤 사이에 국경과 도시를 넘어 다녔으니 찾으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단돈 얼마가 아쉬운 가난한 여행자 신세여서 돈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도 시계 없이 여행을 할 수는 없어 시계를 사러 간 곳이 스와치였다. 그곳에는 너무 예쁜 시계가 많았지만 가장 싼 시계, 그 마저도 비싸게 느껴졌던 볼품없는 시계 하나를 사서 나왔다. 그 가게가 몇십 년이 흐르도록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게 너무 놀랍고 신기했다. 물론 피렌체에는 오랜 시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도 많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게는 나의 기억, 그때 사건과 감정뿐만 아니라 그 공간을 채웠던 공기와 냄새까지도 공간적으로 소환하기 때문에 특별하다.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공간화된 기억이다. 공간은 잊고 있었던 기억과 추억을 소환한다. 고향 제천에 돌아와서 그런 공간을 발견했다. 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다녔던 교회, 거기에 딸린 어린이집이 어릴 때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문이 잠겨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창문에 붙어 어두운 안을 들여다보니 내부 구조와 심지어 가구도 그대로였다. 어린이집 가방과 모자를 벗어 넣어두었던 작은 사물함도 그대로였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여,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무려 3년을 다녔다. 당시 우리 동네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어린이집 못 간 친구들도 많았고, 무려 3년씩 다닌 경우는 없었다. 그 이유만으로 나는 동네에서 특별한 아이로 대접받았다. 가난한 살림에도 부모님과 할머니의 관리를 받으며 공주처럼 크는 아이로 인식되었다. 사실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던 이유는 부모님이 생업에 바빠서 나를 돌볼 여력이 없었던 탓이다. 반면 쓸데없이 일찍 한글을 깨친 나는 괜한 학구열(!)에 불타서 일찍부터 학교에 보내달라고 졸랐는데 너무 어려서 받아주지 않아 수소문해서 어린이집이라도 보냈던 것이다.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다섯 살 때부터 혼자 버스를 타고 어린이집에 갔다. 일곱 살 때는 우리 동네 부잣집 남자 애가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어 내가 데리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나의 유년시절 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 어린이집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소위 리모델링도 없이 그대로 있다는 것은 이 교회가 그렇게 잘 나가는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남자친구 만나러 고등학교 때 다녔던 교회는 더 큰 교회를 지어 이사를 간 지 오래다. 이번에 보니까 교회 한 귀퉁이에 잔뜩 녹이 슨 오래된 교회 종이 있었는데 그 위에 1952년이라고 새겨져 있는 걸 보면 생각보다 오래된 교회다. 나에겐 화석 같은 공간이지만 이 도시에서는 근대 문화유산이라고 해도 될 만한 근래 보기 드문 높고 경사 큰 지붕을 가졌다.
잘 나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존나 버텨줘서 장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나의 어린 시절의 공기까지 소환하는 이 공간이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