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시 고충민원처리 기동 서비스
변기에 비누를 떨어뜨렸다. 떨어뜨렸다기보다 비누가 내 손에서 탈출을 시도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세면대에서 변기까지 포물선을 그리며 보란 듯이 날아가냔 말이다.
으으, 아무리 내가 사용하는 변기라도 선뜻 손을 집어넣게 되지는 않아서 변기에 빠진 비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냥 변기 물을 내려 보낼까도 생각했지만 며칠 전에 뜯은 새 비누였기에 그냥 보내기에는 아까웠다. 고무장갑을 끼고 비누를 꺼내기로 했다. 근데 어라,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아니면 술래잡기라도 하자는 듯 잡힐 듯 말 듯 약을 올리면서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저 비누로 말할 것 같으면 알뜨랑이라는 비누로 잘 물러지지 않아 엄마아빠가 좋아하는 비누다. 얼마나 사서 쟁여둔 건지 집에 아직 몇 통이나 있는 그런 붙박이 비누인데 생긴 것이 타원형으로 생겨서 손에서 미꾸라지처럼 쏙 빠져나가기 좋게 생겨 먹었다. 그렇게 쌀 보리 하듯 잡으려 자는 자와 빠져나가려는 자의 나름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고 이깟 비누 하나 꺼내자고 변기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이럴 일인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와 내 의지를 무력하게 만들 무렵 비누도 전의가 사라졌는지 아예 잡을 수 없는 곳으로 쏙 들어가 숨어 버렸다. 에잇, 할 만큼 했다. 잘 가라. 깔끔하게 포기를 선언하고 물을 누른 순간, 변기는 뭘 잘못 먹은 듯, 뭔가를 토해 내려는 듯 거북한 소리를 내면서 서서히 물이 차올랐다. 변기가 막힌 것이다.
이제 막힌 것을 뚫어야 하는 모드가 되었다. 먼저 역시 얼마 전에 산 곱상한 변기솔로 쓱쓱쓱, 무식하게 생겨 욕실에서 제거하고 싶었던 뚫어뻥으로 푹 푹 푹, 혼신의 힘을 다해 변기를 쑤셔보았지만 뚫어지지 않았다. 우리 집 기술자인 아빠가 가세하여해 보았지만 역시 실패. 아빠는 뚫어뻥을 욕실 바닥에 던져놓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그거 변기도 뚫어주나?
나는 변기 막혔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듯 전화한 아빠에게 짜증이 나서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게 뭔데?(1차 짜증)
그 시청에서 나오는 민원 서비스 있어.
아니, 시청에서 왜 변기를 뚫어줘?(2차 짜증)
아니야. 해준대.
아니, 해주더라도 취약계층이나 1인 가구나 해주겠지. 시청에서 변기까지 뚫어주는 게 말이 돼?(3차 짜증)
나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전화를 걸어 우리 집 주소를 말했고 1시간도 안 돼 두 분의 남성이 웃는 얼굴로 나타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막힌 변기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등 뒤에는 ‘민원 기동대’라고 쓰여있었고 변기솔과 뚫어뻥과는 차원이 다른 기다란 쇠꼬챙이를 들고 있었다. 들고 온 쇠꼬챙이로 내가 감히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다다른 듯했고, 챙챙챙 하는 금속음 몇 번을 내더니 시원하게 변기를 뚫어냈다. 그리고 보너스로 변기 수압이 시원찮다며 변기 물통을 만져 레벨이 뭔가 잘못되어있었다며 그것까지 시원하게 만져놓고 사진 몇 방 다다닥 찍고 서둘러 퇴장하려고 했다.
민원 서비스는 주로 어떤 것이 되나요?
뭐, 전등 교체, 문고리 교체, 싱크대 배수구 막힌 거, 변기 막힌 거, 타일 보수, 보일러 고장, 못 박는 거, 뭐 할 수 있는 건 다 합니다. 못 하는 건 못 하고요.
노인 가정만 지원되는 건가요?
아뇨. 다 됩니다. 뭘 교체할 땐 재료만 사놓으시면 되고, 취약계층이면 재료비 지원도 되고요. 뭐 또 불편하시면 연락 주세요.
와, 내 평생 이렇게 시원한 민원 서비스는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