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 예절
일요일 아침 친척에게 전화가 왔다. 추운데 어떻게 지내냐? 지금 뭐 하고 있냐?는 질문에 나는 허리가 아파 잘 지내고 있지 못하면서도 그냥 잘 지내고 있다, 엄마도 잘 지낸다고 의례적으로 대답하면서 특별할 것도 의미도 없는 스몰토크를 이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지금 엄마를 보러 가려고 하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아니 전혀 괜찮지 않다. 일단 내가 허리 아파서 누워서 생활한지 며칠 되었고, 그래서 당연히 씻지도 못했고 집안도 엉망이었다.
솔직히 말했다. 사실은 내가 아파서 씻지도 못하고 누워있다고. 그랬더니 걱정은커녕 우리끼린데 안 씻으면 어떻냐고. 나는 안 나와도 괜찮다고. 잠깐 엄마만 보고 오면 된다고.
아니 당연히 엄마도 괜찮지 않다. 내가 아파서 며칠동안 엄마를 제대로 씻기지도 못했다.
정중하게 거절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내가 좀 낫고 나면 바로 연락드리겠다고. 그때 오시라고.
이미 나왔단다. 다른 날은 안 될지도 모르니까 오늘 가겠다고. 막무가내였다. 평상시같았으면 벌써 나왔다는데 마지못해 오시라고 했을 거다. 허리야 아프던 말던 벌떡 일어나서 빠르게 청소기 돌리고 대충 엄마 추스리고 냉장고에서 사과 깎아내고 커피 내리고 웃는 낯으로 손님을 맞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무례하고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아팠다. 사람이 아프다는데 막무가내로 온다는 건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문병인 건지. 우리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문병은 사절이고 앞으로 내 마음에서는 그분을 지우기로 했다. 단호하게 말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문 앞에 와서 문 열어달라고 할 태세였다. 용기를 내어 단호하게 거절했다. 오늘은 안 된다고. 서운한 눈치로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서운해도 할 수 없다. 내가 먼저다.
가끔 놀란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이기적이고 무례할 수 있는 건지. 호의를 베풀고 도리를 다한답시고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지 무섭고. 아니면 정말 어떤 사람들은 문병 예절을 모를 수도 있는 걸까. 그래서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 적어본다.
(중병의) 환자에게 문병갈 때
1. 문병을 꼭 가야하는지 자문해본다.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문병은 가급적 가지 않는다. 인사치레라도 하고 싶으면 차라리 돈을 보내라.
2. 환자가 어떤 상황인지, 눈맞춤과 대화는 가능한지, 보호자의 컨디션은 어떤지 먼저 묻고 듣는다.
3. 문병을 가고 싶은데 가도 되는지, 가면 언제 어느 시간대가 좋은지 환자와 보호자의 상황을 묻는다. 최소한 며칠 전에 전화하여 상의한다.
4. 식사시간이나 환자의 낮잠시간을 확인하여 피하고 약속했으면 약속시간을 지킨다. 누가 몇시에 문병 온대서 엄마 낮잠시간이 지나도록 안 재우고 기다리게 한 적이 있다. 솔직히 누가 오면 루틴이 깨진다.
5. 뭐 많은 것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얼굴 보고 손 잡아주고 고생 많죠? 한 마디하고, 30~1시간 안에 빠르게 끝낸다. 환자도 보호자도 손님을 맞이하고 설명하는데 쓸 에너지와 마음의 여유가 없다.
6. 꼭 마음을 전하고 싶다면 굳이 방문보다는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생각해본다. 건강보조식품이나 과일, 음료수는 환자가 못 먹는 것도 많다. 솔직히 돈이 여러모로 편리하고 도움이 된다. 거기에 대면하여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짧은 메모나 편지에 담아 전달하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