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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Dec 18. 2024

치매 아내를 둔 남편입니다 2

하라면 한다

"아빠가 요양보호사 자격증 따는 거 어때"


저녁밥을 먹던 영서가 말했다. 지난여름에 친구들이 가족 중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면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줘서 말을 꺼낸 적이 있다. 그때 영서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하긴 영서가 모르진 않겠지. 다 생각이 있겠지. 그때 우리는 아내 재활에 매달리고 있었다. 아내가 일어날 수 있다고, 걸을 수 있다고 믿고 둘이 힘을 합쳐 아내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몇 달 만에 영서의 입장이 바뀌었다. 누구 하나라도 몇 달 동안 학원에 다니면 지금처럼 아내를 일으켜 세우는 일은 어렵게 된다. 이 말은 이제 재활은 포기한다는 의미였다. 아내가 휠체어에서 떨어져 실려간 이후 사실상 우리는 그러고 있기도 했다.


"내가 다니려고 알아봤는데 원장님과 상담하다 보니 아빠가 하는 게 더 좋다고 하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딸보다 배우자가 요양보호사를 따서 간병하는 게 지원을 더 받을 수 있대. 많진 않지만 얼마라도 받는 게 좋잖아."


내 나이 73세에 자격증을 딸 수 있을까.

컴퓨터로 시험을 봐야 한다는데 잘할 수 있을까.

매일 7시간씩 학원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 따서 얼마나 써먹게 될까.


못할 것은 없지만 흔쾌한 마음도 아니었다. 요양보호사는 주로 여자들만 하는 걸로 알고 있어서 여자들 틈바구니에 섞여서 해야 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친구들과 만나는 일도 못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영서가 하라면 해야 한다. 나에겐 선택권이 없다. 아내가 수술할 때도 병원에서는 치료법이 없어 한의원을 전전하고 집에서의 간병을 선택할 때도나는 지켜보기만 했다. 딸 영서와의 관계에서 나는 늘 을이었다. 아내를 간병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수퍼을이다. 난 늘 영서 눈치를 본다. 한마디로 눈칫밥 신세다. 영서의 기분이 나쁘면 숨죽여 있어야 한다. 영서가 아프면 내가 아프게 만든 거 같아 고통스럽다. 영서가 와줘서 고맙기도 하고 영서와 살게 되면서 불편한 것도 많다. 집이 예전처럼 편하지가 않다. 아내와 둘이 살 때 그때가 그립다. 적당히 해 먹고 적당히 지저분하고 적당히 살았던 때가 그립다. 나이 드는 일은 서럽다. 누구라도 아파서 자식에게 걱정을 끼치고 신세를 지는 일은 서럽다 못해 괴롭다. 그러지 않으려 기를 썼지만 어쩔 수 없는 때가 온다. 노인들이 왜 빨리 죽어야 하는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는지 이해가 된다.  


영서가 시키는 대로 학원에 등록했다. 학원비로 거의 90만 원 돈을 냈다. 수강생 중에 내가 제일 연장자라고 했다. 작년에는 83세 할아버지도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50대가 가장 많은 것 같다. 다행히 남자가 네댓 명이 있다. 실질적으로 간병하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고 다들 만약을 대비하여 따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거기서 친구 아내도 만났다. 소문이 빠른 동네이니 내 소식도 빠르게 퍼져나갈 것이다. 친구 아내는 컴퓨터를 할 줄 몰라서 걱정을 한다. 나는 컴퓨터는 배웠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학원 다니는 것이 나쁘지 않다. 집에서 영서 눈칫밥만 먹고 있는 것보다 뭐라도 영서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사실이 나에게 안도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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