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요양의 세계
아빠가 요양보호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원래는 내가 하려고 알아보다가 원장님의 권유로 아빠가 하기로 했다. 돈 때문이다. 딸인 내가 요양보호사를 하는 것보다 남편인 아빠가 하는 것이 돈을 더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가족요양보호란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사람을 가족이 집에서 직접 돌볼 때 현금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왜 자녀인 나보다 65세 이상의 나이든 배우자가 가족요양보호사가 되어 자신의 배우자를 돌볼 때 왜 더 많은 급여를 지급하는지 그 취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가족요양 제도가 있는 것을 대충 알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도 그런 제도가 있으니 알아보라고 했다. 하지만 당장 하지는 않았다. 돈이 아쉽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도 아빠도 모두 생업을 포기하고 엄마 옆에 붙어있는 상태라 돈은 늘 아쉽다. 하지만 당장은 얼마의 돈보다는 실질적인 돌봄과 재활에 매달리자는 마음이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려면 최소 3개월은 하루종일 학원에 다니고 시험도 봐야 한다. 그럴 시간에 엄마에게 열심히 하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믿음과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모래성처럼 계속되는 파도에 서서히 무너지고 이제는 흔적도없이 사라진 상태다.
엄마가 와상환자로 지낸 지 꼬박 1년, 더 나빠질 것이 있을까 싶은데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내가 겨우 따라잡으면 엄마의 몸은 저 멀리 달아나 있다. 엄마가 깨어있는 시간은 하루에 4~5시간이나 되려나. 아침에 일어나서 두어 시간, 저녁에 두어 시간, 이마저도 의식이 선명하지 않고 말도 한마디도 못 한다. 1년 동안 매달렸던 재활은 이제 포기하고 최소한의 돌봄을 하고 있다. 엄마가 살아있다고 느낄 때는 오직 밥 먹을 때고, 나는 엄마 삼시세끼 먹이는 데 온 신경을 다 쓰고 있다.
얼마 전 허리 통증이 시작되면서 엄마를 요양병원에 맡기는 것도 생각해 봤다. 엄마를 어디든 맡기고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엄마가 시각장애인만 아니라면, 최소한의 의사표현이라도 할 수 있었더라면 요양병원에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스스로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다. 그런 엄마를 낯선 곳으로 보낼 수가 없었다. 아무이 그래도 내가 아프다면, 그래서 아빠 혼자 엄마를 돌봐야 한다면 엄마를 보냈을 수도 있다. 다행인 건지 아닌 건지 허리는 좋아졌고, 그 사이 엄마를 보내려는 생각은 저 멀리 물러선 상태다.
아빠가 요양보호사학원에 다닌다는 건 지금처럼 앞으로 우리 가족이 엄마를 집에서 돌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은 선택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내가 좋아서, 엄마를 진심으로 내 손으로 보살피고 싶어서 이런 선택을 한 것도 아니다. 내 마음에 좋은 선택이라기보다 내 마음이 덜 불편한 선택을 한 것이다. 다행히 아빠는 학원 다니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것 같다. 처음엔 좀 저어하는 눈치더니 이제는 나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사람 좋아하는, 천상 외향적인 아빠, 뭐든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거 같다. 아침부터 말끔하게 차려입고, 번듯한 서류가방까지 들고, 엄마에게 나 갔다 올게, 인사하면서 출근하듯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