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한 존재한다
유미 엄마가 엄마를 보러 집에 오고 싶다고 했다. 유미 엄마는 7촌인가, 8촌인가, 촌수 상으로도 남이나 다름없는 먼 친척분의 아내였던 분으로 오래전 사별하고 재혼을 하셨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 집안과는 인연이 끊어져 남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엄마는 유미 엄마와 계속 교류를 하는 모양이었다. 이따금씩 나에게 그녀의 소식을 전함으로써 내 기억 속에 그녀가 사라지지 않게 만들었다.
엄마를 돌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엄마의 사람들, 즉 엄마가 교류하고 관계하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다. 엄마가 아프고 내가 엄마 집에 와서 엄마를 간병하게 되면서 엄마를 대신해 엄마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내 몫이 되었고, 그 책임은 시간이 갈수록 내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엄마를 돌보는 일보다 더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 나도 그들을 알긴 안다. 하지만 엄마를 통해서 표면적으로 알 뿐 직접 소통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들은 엄마의 사람이지 내 사람의 범주에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아파서 누운 이후 그들은 내 삶의 반경으로 점점 밀려들어오게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유미 엄마는 가까운 친척보다도 거부감이 덜했다. 가까운 친척들이 온다고 하면 대접하고 엄마의 상황과 내 상황을 설명할 생각에 부담스러웠지만 유미 엄마에게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언제든 오시라고 했더니 문 앞에서 기다렸던 사람처럼 금방 왔다. 유미 엄마를 마지막 뵌 것이 장례식이었을 것이다. 꽤 오랜 세월이 흘러 만났는데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엄마에게 듣던 대로 재혼하고 형편이 좋아지고 아이들도 잘 돼서 그런지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갈비탕이라고 하면서 커다란 봉지를 나에게 안기고 거실에 앉아있는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형님'하면서 엄마 손을 덥석 잡았다. 저예요. 유미 엄마, 형님, 저 알죠? 엄마는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유미 엄마인지는 몰라도 누군가 왔다는 사실은 아는 듯했다. 다과를 준비하면서 엄마가 말을 잘 못한다, 바로바로 반응을 하지 못할 뿐 알아들으니까 말씀하시면 된다고 안내를 했다. 실제로 엄마가 알아듣는 건지, 얼마나 알아듣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둬야 온 사람이 뭐라도 할 일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하는데 그러면 다들 케케묵은 이야기부터 꺼내놓는다.
유미 엄마는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집에 먹을 게 없었다고 했다. 먹을 게 없었다는 말이 가난했다는 말이지 정말 먹을 게 없었을까 싶었는데 정말 그랬다고 했다. 없는 살림에 시부모들은 얼마나 사나운지 며느리를 쥐 잡듯 잡았다고 한다. 먹을 게 없는 것도 서러운데 혹독한 시집살이에 견딜 수 없어 유미 엄마는 도망가려고 집을 나왔다가 갈 데가 없어 엄마한테 왔다고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늘 꼭 손 잡아주고 없는 살림에도 시장에 가서 먹을 것을 사다가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엄마도 참,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재미없을까. 너무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다. 반전 매력이라고는 1도 없다. 유미 엄마의 이야기는 처음 듣지만 전혀 새로울 게 없어서 따분할 정도였다. 자신도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사돈의 팔촌에까지 인정스럽게 베풀며 살았다는 미담은 나를 기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생을 착하게만 살아왔던 엄마에게 왜 이런 병이 생겼는지, 엄마의 말로는 왜 이토록 가혹한지 알 길이 없어서 슬퍼진다. 이런 효용은 있다. 가끔 엄마를 보면서 내가 알던 우리 엄마가 맞는지 의심스럽고 혼란스러운데 그들에게 소환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알던 그 엄마가 맞구나, 확인하게 된다: 엄마는 존재한다. 엄마의 기억이 불완전하거나 통째로 사라졌다 할지라도 엄마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내가 알던 엄마는 온전히 존재한다. 엄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엄마를 기억하는 한 내가 알던 엄마는 존재한다. 오늘따라 내가 알던 엄마, 우리가 알던 엄마가 더 많이 그립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