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프종 어원편 2
림프종을 이해하는 데 있어 또 하나 알아야 할 단어는 바로 “호지킨”이다. Hodgkin이라고 쓰고 [호지킨]이라고 읽는다. 이 단어에 대한 반응도 다양하다. ‘치킨’이 생각난다는 사람, (실제로 우리 동네에 ‘호치킨’이라는 소규모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있었음), ‘호지킨’의 ‘호’가 한자의 좋을 ‘호(好)’ 같아 느낌이 좋다는 사람... 언어학을 좋아하는 나는 Hodgkin의 d 가 묵음이라는 것, 한국어로 쓰면 [호지킨] 3음절이지만 영어로는 [häj-kin] 2음절로 구분될 것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다양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낯선 단어는 도대체 뭘까?
영국에 사는 의사 토마스 호지킨씨는 몸 생긴 정체 모를 종궤 때문에 사망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연구를 거듭하던 호지킨씨는 이 종궤들에서 공통적으로 리드 스텐버그세포(Reed sternberg cell)라는 올빼미 눈 모양의 특이한 세포들이 관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세포의 실체가 바로 림프종! 그렇게 림프종이라는 질환은 호지킨 박사에 의해 처음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림프계에 생기는 종궤와 관련된 질환을 Hodgkin lymphoma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후대 의과학자들이 연구를 이어간 결과 림프종에는 올빼미 눈 모양의 세포 말고도 다양한 종류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다른 종류의 림프종들을 비호지킨 림프종(Non Hodgkin lymphoma)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리나라 국가암통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2020년 호지킨, 비호치킨 림프종 조발생률*은 각각 0.6명, 11명으로 비호지킨 림프종의 발생률이 호지킨 림프종에 비해 현저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국가암통계, 2024).
나는 호지킨 림프종이 좋다. 가장 큰 이유는 호지킨 림프종은 예후가 비교적 좋은 암이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임상적으로, 나의 경험적으로 호지킨 림프종은 항암제 치료 효과가 좋아 재발 비율이 낮다. 환자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것이 예후에 관한 것인데, 그런 질문에 대해 자신 있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호지킨 림프종 진단명으로 입원한 이명훈님은 중년의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밝은 분이라 우리 병동의 “인싸”였다. 이명훈님이 지방에 거주하는 탓에 한번 입원하면 2주기 간격으로 진행되는 항암을 두 번 받고 퇴원했던 터라 재원기간이 다른 환자에 비해 비교적 길었다. 비슷한 주기로 입원 오는 다양한 환자분들과 병동 내에서 교류하며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20,30대 젊은 환자부터 고령 환자는 물론 병동 간호사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명훈님의 항암은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었고 어느덧 마지막 항암 차수가 되었다. 보통 항암을 하고 바로 퇴원을 하는데 이명훈님은 며칠 뒤에 있을 CT, PET-CT까지 촬영하고 가기로 해서 입원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열이 나는 것이었다. 그런 분이 아닌데 축 늘어진 컨디션에 밥도 마다하고 해열제, 항생제에도 반응하지 않는 고열이 지속되었다. “지금까지 항암 하던 기간 중에 이번이 제일 힘드네요. 정신을 못 차리겠어요.”라고 말씀하시며 식사까지 거르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자주 침상을 방문하여 침대에서 일으켜 앉혀놓고 우유나 뉴케어를 드시게 하거나 식사를 죽으로 바꿔드려도 몇 번 먹는 시늉을 하다 다시 침대에 누워버렸다. 시간이 지나도 열이 너무 안 떨어져서 다시 코로나 검사를 나갔는데 놀랍게도 양성판정을 받아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코로나 환자 병동으로 부랴부랴 이실을 가셨다.
다시 병원에서 이명훈님을 다시 만난 것은 그 후로 6개월 뒤, 완전 관해 판정을 받은 이명훈님이 항암관 제거를 위해 입원 오셨을 때였다. 오랜만에 얼굴을 봐서 반가웠고 무엇보다 암이 치료가 되어서 만나게 되어 더욱 반가웠다.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는 병원 아닌 곳에서 보게 되면 좋겠다고 덕담을 나누며 퇴원 보내드렸던 이명훈님과의 좋은 추억이다.
호지킨 림프종 환우들은 2주 만에 한 번씩 총 12번의 항암을 하게 된다. 다른 항암이 보통 3-4주 주기로 6번 하는 것에 반해 더 자주, 많은 횟수의 항암을 하게 되는 것인데 다행스럽게도 고생한 만큼 치료의 효과는 좋은 편이다. 주로 투약되는 항암 이름은 ABVD, AAVD로 항암제가 주사로 들어가는 것은 3~4시간 정도면 끝나기 때문에 입원이 어려운 환자분들은 외래에서 한나절 항암제 맞고 집에 가는 경우도 많다. 반면 시간적 여유가 있거나 고령의 환우들은 입원해서 항암을 진행한다.
호지킨 림프종이라고 해서 100% 재발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호지킨 림프종이 재발된 경우 환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절망감은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완치가 될 것이다.”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재발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에 방점을 두어 말하는 편이다.
호지킨 림프종 환자들은 자주 입원오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많이 든다. 이명훈님처럼 친했던 환자들이 치료를 마치고 가면 때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지금은 잘 지내는지 소식이 궁금할 때도 있다. 간호사로서 종종 아쉬움과 궁금한 마음이 있더라도 많은 환자들이 완치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림프종 환자를 간호하더라도 마음속에 완치의 희망을 안고 일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조발생률 : 인구 십만 명 당 발생한 환자 수
* 이미지 출처
1) 커버이미지 illustrated by @mumu_pattern
2) Reed Sternberg cell : Hodgkin Lymphoma Treatment (PDQ®) - PDQ Cancer Information Summaries - NCBI Bookshelf (nih.g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