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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내 Jul 17. 2024

전공 불문(不問)? 전공 불문(佛文)!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기

 대학 입시 원서 제출을 위해 담임 선생님의 도장을 받아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를 위해 수능이 끝나면 썰렁한 고3 교실에 담임선생님과의 임시 상담소가 설치되었다. 나도 그 상담소에 앉아 선생님께 호기롭게 “불어불문학과”에 가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중문과나 일본어과를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런 전공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불문과”에 가겠다고 했고 선생님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불문과가 있는 학교 중 내 수능 성적과 맞는 학교를 추천해 주셨다. 그렇게 나의 입학원서에는 담임 선생님, 내 도장이 나란히 찍혔다. 입시의 신(神)이라 불리던 우리 선생님의 명성답게 나는 무난하게 “불문과”학생이 되었다.


 내가 불문과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기 위해서였다. 외국어 공부가 좋았고 그중에서도 불어가 좋았다. 고등학교 때는 내가 싫어하는 공부도 많이 했어야 했는데 (특히 수학) 대학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공부할 수 있겠다 생각에서였다.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취업이라는 이슈나 사회에서 선호하는 전공 따위는 나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대학생활을 하며, 아니 지금까지도 내가 불문학을 전공한 것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많은 역경(?)을 거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주었던 것은 “나 불어 하는 여자야.”라는 부심, 그리고 언어와 문학이라는 인문학이 나에게 주었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불어불문학이라는 전공이 일반 취업 시장에서는 그렇게 환영받는 전공이 아니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았기에 졸업 이후의 나의 삶에 대해 조금씩 탐색하게 되었다.


 나의 첫 탐색은 통번역대학원 입학 세미나에 가본 것이었다. 당시에 우리 대학에 통번역 대학원이 생긴 지 오래되지 않아서 대학원 홍보 목적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했었다. 우리 학교 출신의 전문 통역사 한 분이 “꼭 해당 언어를 쓰는 국가에서 살다 와야만 통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초등학교 때 2년 정도 외국 살다 온 경험이 전부입니다. “라고 말해주었다.

 

 외국행 비행기에 아직 한 번도 몸을 실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그 말은 ”당신은 통번역사는 될 수 없습니다. “라고 들렸다.

 

 우리 과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불문과 선배들이 ㅇㅇ로펌에 많이 취업을 했으니 우리도 열심히 하면 그 로펌에 취업할 수 있다고 했다. 로펌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던 시절, 거기에 취업을 하면 뭔가 내가 싫어하는 일들을 잔뜩 해야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로펌 취업도 내 리스트에서 삭제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로펌은 정말 유명한 대형 로펌이고 내가 가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할지라도 취업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불문과 전공 수업에서 우리 학교에 교직이수 T/O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금만 학점관리를 하면 교직 이수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조금만 관리했고 다행히 교직이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교직 수업을 들으며 은연중에 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학생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프랑스어라는 과목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국어국문학을 복수 전공하여 국어 2급 정교사 자격증도 같이 따보겠노라는 원대한 포부를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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