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돌아온 정문은 머리가 복잡해 도저히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하련, 그녀와 의논을 하고 싶었다. 그녀만은 왠지 이 상황을 정리해 줄 수 있을 것 가았다.
"웬일이야"
화장기 없는 그녀가 마주편에 다가와 앉는다. 맥주를 마시던 정문은 화들짝 놀란다.
잠시 망설이던 정문은 그녀에게 말한다.
"내 동생이 살아있어."
하련은 차분하게 그의 말을 듣는다.
"만나야겠어. 그 노인을, 만나서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알아야겠어."
"인더딥의 사람을 만나거나 치료하는 건 원칙적으로 불법이야. 설사 네 동생이 거기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네가 위험해지는 일이라고."
"그렇다고 모른 체할 수는 없어. 이제는 사실을 알아야만 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고"
정문은 굳은 얼굴로 맥주잔을 만지작 거린다.
사무실에서 의자에 깊게 앉아있는 늙은 노인의 주름이 깊다.
똑똑똑
문이 열리고 정문이 들어온다. 노인은 각오했다는 듯이 그를 맞이한다.
깊은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감싸 돈다.
"동생이 살아있어요.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노인은 뜨거운 찻잔을 집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그리곤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가 그러더냐? 네 동생을 그쪽에서 보살피고 있다고? 전염병을 일부러 퍼트리고 치료제는 주지 않더라고?" 노인이 먼저 말을 꺼내니 정문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왜 숨기신 거예요. 치료제 있으면서 왜 안 쓴 거죠? “
정문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단어를 씹고 있었다.
'아버지...'
SWEl이 존재하는 시티와 인더딥은 초기에 서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 SWEL은 카르텔시와 인더딥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더딥의 인구가 많아지고, 그곳의 통치자가 생기자 그들이 카르텔시를 넘보기 시작했다. 그때 생긴 전염병을 앓았던 환자의 항체가 카르텔시에서 유용한 약임을 확인 SWEL은 은밀이 인더딥의 수장에게 제안한다. 인더딥에 전염병을 앓은 사람의 항체를 SWEL에 제공하면 그것을 카르텔 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약으로 사용하고, 대신 인더딥의 수장에게 그곳을 다스리는 권한을 장기간 유지하더라도 모른 체하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비밀 유지 및 약속의 대가로 SWEL수장인 그는 딸이 그곳에 누워있던 것이었다. 각 세계의 지배층은 그들의 전염병과 전염병 치료제를 그들의 권력으로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던 것이었다. SWEL 지하의 치료제는 인더딥의 특권층만을 위해 필요한 소량만을 제공하였다. 그가 갑자기 급성 복통과 전염병에 동시에 걸리지만 않았어도, 혹은 정문이 그를 환자로 받아주지만 않았어도, 혹은 그가 정문에 대한 일말의 측은지심만 보이지 않았어도 깨지지 않을 균형이었다. 정문은 영원히 모를 거대한 사실이었다.
"나의 잘못을 추궁하러 왔겠지? 자네가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겠니? 누가 나를 나쁘다고 정죄할 수 있지? 그래 내가 카르텔시 사람들만을 위한 치료제를 제공하였어. 그리고 그들의 수술만을 줄곧 유지했지. 하지만 나와 인더딥의 수장의 행태가 과연 다를 거라고 생각해? 나를 나쁘다고 돌을 던질 수 있겠니? 인더딥의 그들은 선한 사람일까? 그들 또한 자신들의 사람을 이용해 그들만의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자신의 사람들을 이용해 자신의 뱃속을 채우는 똑같은 종족이라고... 그리고 우리로 인해 이 세계가 유지되는 것을 자네도 인정해야 될 거야.
너에게 어떤 것을 선택하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네가 우리를 악하다 선하다 평가할 수도 없단다. 다른 정부나 기관에 신고해도 소용없어 이미 수십 년간 이루어진 이 세계의 룰이니 말이야. 그저 나는 우리의 평화를 위해 누워있는 내 딸에게 미안해하지 않는다. 이 SWEL을 지키고, 카르텔시와 인더딥의 균형을 이루는 일이 나의 목적이야. 그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지. 물론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의 운명이라 생각한다. 이 전 우주를 생각한다면 그 정도 작은 희생은 먼지에 지나지 않아. 너의 선의지를 탓하거나, 바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미 있는 거대한 세계를 무너뜨리기에는 너는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해라."
그의 말에 한마디도 대꾸할 수도 없었다. 정문은 큰 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 두 행성이 하나가 된 어두운 하늘을 한없이 바라보았다.